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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2027명만 누린다…천의 목소리로 만든 ‘무협 대작’, 대체 뭐길래

등록 :2022-01-28 04:59수정 :2022-01-28 09:32

웹소설 ‘화산귀환’ 오디오 드라마로
프로젝트 진행·연출 맡은 성우 홍시호
최근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네이버웹툰 사무실에서 만난 성우 홍시호. 그는 인기 웹소설 <화산귀환>을 오디오 드라마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정민 기자
최근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네이버웹툰 사무실에서 만난 성우 홍시호. 그는 인기 웹소설 <화산귀환>을 오디오 드라마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정민 기자

<영웅문> <소오강호> 같은 제목에 귀가 번뜩 뜨인다면, 당신은 1980~90년대 대본소에서 무협지깨나 빌려 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젠 한물갔을 법도 하지만, 무협지는 2020년대에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웹소설·웹툰은 물론 오디오 드라마로도 확장돼 10~20대 젊은층과 여성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신 무협지 열풍’을 선봉에서 이끄는 작품이 <화산귀환>이다. 비가 작가가 2019년부터 네이버시리즈에 연재해온 웹소설로, 총 누적 다운로드 2억2600만회 이상, 총 누적 매출액 150억원을 달성한 메가히트작이다.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3월부터 네이버웹툰으로도 연재 중이다. 화산파의 절대고수 청명이 세상을 혼란으로 빠뜨린 악당 천마를 물리치고 자신도 숨을 거뒀으나, 100년 뒤 아이의 몸으로 빙의해 사라진 화산파를 일으켜 세우는 이야기를 담았다.

웹소설 &lt;화산귀환&gt; 포스터. 네이버웹툰 제공
웹소설 <화산귀환> 포스터. 네이버웹툰 제공

이 <화산귀환>이 오디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리 돈을 내고 펀딩에 참여한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프리미엄 콘텐츠’다. 이는 성우 홍시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홍쇼’와 네이버웹툰이 협업한 프로젝트다. 지난해 7~8월 진행한 텀블벅 펀딩에는 2027명이 참여해 목표액 8천만원의 3배가 넘는 2억4330만원을 달성했다. 펀딩 참여자들에겐 2월3일부터 오디오 드라마 파일을 담은 유에스비(USB)와 책갈피, 술잔 등 굿즈를 배송한다.

프로젝트 진행과 드라마 연출까지 맡은 홍시호는 <한국방송>(KBS) 공채 출신의 스타 성우다. 1986년 데뷔 이래 굵직한 주인공 역을 수없이 맡았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 판교 네이버웹툰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상파 외화 더빙에서 톰 크루즈, 성룡(청룽), 유덕화(류더화) 등 연기를 많이 해 명절 때면 제 목소리가 하루 종일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며 “마블의 아이언맨, <슬램덩크>의 강백호, <이누야샤>의 나라쿠로 제 목소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웹툰 &lt;화산귀환&gt; 포스터. 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화산귀환> 포스터. 네이버웹툰 제공

하지만 외화 더빙이 점차 사라지면서 성우들의 일자리가 줄기 시작했다. 그도 한때 케이블 홈쇼핑 광고에서 “이 모든 것이 3만9800원”이라고 외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침체된 성우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2018년 유튜브 채널 ‘홍쇼’를 개설하고 동료·후배 성우들을 초청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웹툰에 목소리를 입히면 재밌겠다’는 발상을 하고 네이버웹툰에 협업을 제안했다. 그 결과물이 2019년 나온 <가담항설>이다. 랑또 작가의 인기 웹툰에 목소리를 입힌 오디오 웹툰 드라마를 만든다는 소식에 5500여명이 펀딩에 참여해 6억원 가까운 돈이 모였다. 반응이 좋아 현재 시즌3 제작을 준비 중이다.

<가담항설>의 성공을 맛본 네이버웹툰은 이번에는 인기 웹소설 <화산귀환>을 오디오 드라마로 만들 것을 거꾸로 ‘홍쇼’ 쪽에 제안했다. 대하소설처럼 방대한데다 웹툰과 달리 그림 없이 순전히 오디오로만 내용을 전해야 하기에 만만찮은 도전이었지만, 홍시호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봤다. <가담항설> 때는 출연만 했지만, 이번엔 총연출을 맡아 더 많은 공을 들였다. 1화부터 334화까지 소설을 100편 분량으로 각색한 뒤, 성우 30명을 캐스팅해 러닝타임 17시간30분에 이르는 대작 오디오 드라마를 완성해냈다.

성우들이 오디오 드라마 &lt;화산귀환&gt;을 녹음하는 장면. 텀블벅 갈무리
성우들이 오디오 드라마 <화산귀환>을 녹음하는 장면. 텀블벅 갈무리

지난해 11월 ‘홍쇼’에 미리 듣기로 올려놓은 9분짜리 영상에는 “웹소설(웹툰)과 찰떡처럼 잘 붙는다” “펀딩이 끝난 다음에야 알게 돼 너무 아쉽다. 다음 펀딩에는 꼭 참여하고 싶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네이버웹툰 쪽은 “<화산귀환>은 무협물인데도 남녀에게 두루 사랑받는 작품”이라며 “일반적인 오디오 드라마 청취자는 여성이 80~90%인 데 견줘, <화산귀환> 오디오 드라마 펀딩 참여자는 여성 60%, 남성 40%이며, 연령대도 25~34살, 10대~24살 차례로 많았다”고 전했다. 과거의 무협지와는 다른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펀딩 참여자 외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서비스할 계획은 없을까? 홍시호는 “작품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이들의 소장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프로젝트인 만큼 당장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쪽은 “지금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단계”라며 “추후 이용자들의 더 많은 요구가 잇따르고 그에 걸맞은 플랫폼이 마련되면 이 같은 프로젝트를 확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