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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재명의 민주당, 기회일까 위기일까 [성한용 칼럼]

등록 :2022-08-22 15:18수정 :2022-08-23 02:43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숙의민주주의는 약화한다. 민주당은 당원들의 뜻에 따라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당원들의 뜻에 따라 2021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에 공천했다. 집단지성을 믿었다가 정권을 빼앗겼다.
지난 20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전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박용진 후보, 이재명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최고위원 후보 전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박용진 후보, 이재명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가 마무리 국면이다. 경기·서울 권리당원 투표, 2차 여론조사(일반 국민과 일반 당원), 대의원 투표가 남았다.

지난 21일 전남·광주 순회 경선까지 이재명 후보가 확보한 득표율은 78.35%였다. 이번 전당대회 선거인단 비중은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25%, 일반 당원 여론조사 5%다. 박용진 후보가 승부를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70%대 득표는 오래전, 이른바 제왕적 총재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97년 5월19일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77.5%를 득표한 일이 있다. 상대는 정대철 후보였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5년 정계에 복귀하며 새로 만든 정당이었다. 정치인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의 ‘오너’요, ‘제왕적 총재’였다. 그때는 다 그랬다.

어쨌든 이재명 후보가 지금과 같은 득표율로 당선되면 제왕적 총재를 뛰어넘는 기록을 세우는 것이다. 득표율이 높은 이유가 뭘까?

첫째, 대선 효과다. 이재명 후보는 5개월 전 대선에서 1600만표를 받았다. 1600만은 엄청난 숫자다. 출마 선언과 동시에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둘째, 윤석열 효과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는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추락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8월28일 민주당 전당대회 뒤에는 ‘이재명의 시대’가 활짝 열릴까?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2024년 총선을 이기고, 2026년 지방선거를 이기고, 2027년 대선을 이기는 것일까? 이재명 의원은 대통령이 되는 것일까? 정치가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편할까?

이재명 후보의 높은 득표율 이면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21일 발표된 호남 지역 권리당원 투표율은 35.49%였다. 1주일 전 충청 지역 경선 때까지 투표율이 37.69%에 불과해 비상이 걸렸는데, 호남 투표율이 더 낮아진 것이다.

호남은 민주당의 심장이다. 호남 지역 투표율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것은 민주당의 흉조다. 민주당이 참패한 6·1 지방선거에서 광주는 37.7%로 전국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앞으로 남은 경기·서울 권리당원 투표율도 그리 높을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럴까? 바닥 민심과 당심에 두루 밝은 민주당 의원에게 물었다.

“대선 전후에 새로 입당한 당원들은 이재명 후보를 많이 지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고참 당원이나 전통적인 지지자들은 이번 전당대회 자체를 외면하는 분위기다. 판세가 이미 기운데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 어디 한번 잘해 봐’라는 자조적 분위기가 읽힌다.”

현재 169명인 민주당 의원들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정서도 복잡하다. 대선 때는 열심히 뛰었지만 이번 전당대회는 뒷짐을 진 의원들이 꽤 많다.

이재명 후보도 의원들의 분위기를 안다. 7월17일 대표 출마 선언에서 “국민의 집단지성에 저의 정치적 미래를 모두 맡기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많은 분들이 여의도의 정서를 말하는 ‘여심’(여의도 국회의원), 당심, 민심의 괴리를 걱정한다. 국회의원과 당원, 지지자 간 차이를 좁히는 방법은 민주주의 강화뿐이다.”

“국민 속에서 여남노소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하는 소통 정당으로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전자민주주의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당원의 지위를 대폭 강화하겠다.”

그런가?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숙의민주주의는 약화한다. 민주당은 당원들의 뜻에 따라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당원들의 뜻에 따라 2021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에 공천했다. 집단지성을 믿었다가 정권을 빼앗긴 것이다. 집단지성에 맡기면 이번에는 성공할까?

이재명의 민주당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단언하기 어렵다.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총재는 1.53%포인트, 39만표 차로 석패했다. 5년 내내 ‘차기 대통령’처럼 행세했지만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떠오른 노무현 후보에게 졌다.

한나라당은 2007년 이명박-박근혜 후보 경선 이후 당내 갈등으로 망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내 갈등이 외연 확장 효과로 이어지며 2012년 대선에서 재집권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앞날이 어떻게 될까? 아무도 모른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정치, 참 어렵다.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