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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3’ 여검객, 세계를 찌른다

등록 :2016-01-11 18:57수정 :2016-01-11 23:15

한국 여자펜싱 사브르 대표팀의 윤지수가 지난 6일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연습 복장을 한 채 밝게 웃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한국 여자펜싱 사브르 대표팀의 윤지수가 지난 6일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연습 복장을 한 채 밝게 웃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16 Rio 우리가 간다
펜싱 사브르 윤지수


“넘버 스리요? (웃음) 그럼요, 넘버 스리죠.”

한국 여자펜싱 사브르 대표팀의 윤지수(23·안산시청)는 웃어넘긴다. 국제펜싱연맹 2015~2016 여자 사브르 세계순위 19위로 선배인 김지연(8위), 황선아(16위)의 뒤를 잇고 있다. 아직 리우올림픽 대표팀(4명)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자 사브르 팀에서는 확고하게 자기의 위치를 챙겼다. “사실 넘버 스리도 아니죠. 세계 19위일 뿐이에요. 다만 언니들과 힘을 합치면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랭킹은 그냥 숫자일 뿐이에요.”

빈말은 아니다. 사브르는 에페와 플뢰레와 달리 눈 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갈린다. 허리 윗부분이 공격 부위인데, 에페와 플뢰레와 달리 벨 때도 득점이 인정된다. 번개 같은 동작으로 우위를 가르는 예민한 종목이어서 격차가 벌어져도 순식간에 뒤집힌다. 공격권이 있는 선수의 득점만 인정되기에 선공이 중요하다. 김지연, 이라진, 윤지수, 황선아가 나선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결승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자 사브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도 그랬다. 한국 팀은 중국에 14-20으로 뒤졌다가 40-33으로 앞서갔고, 막판 41-41로 동점을 허용했다가 기어코 45-41로 이겼다.

윤지수는 “사브르는 상대를 속이는 경기다”라고 정의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지만, 생각이 복잡하면 오히려 당할 때가 많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야 전광석화의 싸움에서 유효타를 날릴 수 있다. 윤지수는 “겨룰 때 특별하게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강행군은 단 1포인트라도 더 얻기 위한 투자다. 새벽별을 보며 하는 조조훈련에 이어 오전·오후 준비운동, 실전 기술훈련, 체력단련이 반복되지만 꾹 참는다. 일주일에 사흘은 저녁 7시30분부터 9시까지 복근과 어깨 강화를 위한 근력운동이 추가된다. 윤지수는 “중학교 때부터 해오던 것이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했다.

세계랭킹 19위이자 국내선 3인자
2년전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투수 윤학길 딸로 승부욕 빼닮아
폭발적 스피드·근성 갖춘 ‘싸움꾼’

과감한 공격뒤 방어 뛰어나지만
경기 도중 흥분 자제하는 게 과제
“20위권까지는실력차 크지 않아
리우서 반드시 이변 일으킬게요”

윤지수의 장점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근성. 종목의 성격이 에페와 플뢰레에 비해 과격하고 공격적인데, 윤지수는 타고난 싸움꾼 기질이 있다. 손잡이를 뺀 칼의 길이도 88㎝로 에페와 플뢰레(90㎝)보다 짧다. 무게는 대개 500~550g 정도로 에페(최대 무게 770g)보다 가벼운데, 빠르게 이동하는 데 유리하다. 윤지수는 적당한 거리를 두며 야금야금 다가가다가,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한순간에 몰아치는 치타처럼 폭발적으로 튀어오른다. 서성준 코치는 “과감한 공격 뒤 방어할 때 자세가 무너지는 선수가 많다. 하지만 지수는 방어 동작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14m 길이의 무대인 피스트에서 ‘앙 가르드’ 자세를 취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교환해야 하는 선수들한테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동작이 크기 때문에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거나 발목에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다. 또 장타 공격을 했을 때 상대가 받아넘겨 역공을 가할 땐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윤지수는 “동작의 효율성을 위해 주로 실전 비디오를 다시 돌려 보면서 내 플레이의 잘못된 점을 찾아낸다”고 했다. 군데군데 아픈 곳이 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프로야구 롯데의 전설적인 투수 윤학길의 딸이라 그런지 아버지의 승부욕을 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경기 중 흥분하는 것은 약점이다. 윤지수는 “경기 중에는 몰입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경기 뒤에 비디오를 보면 여유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서성준 코치도 그런 점을 꼬집었다. 그는 “결국 자기 컨트롤이 승패를 가른다. 흥분해 실수하면 순식간에 2~3점을 까먹는다. 맏언니 김지연이 너무 부드럽다면 지수는 너무 강하다”고 했다.

8월 리우올림픽을 앞둔 대표팀은 이달 26일 그리스월드컵, 다음달 벨기에 겐트월드컵, 이후 3월 서울 그랑프리에 이어 5월 베이징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리우 결전에 대비한다. 현재 세계 1위는 러시아의 소피야 벨리카야. 윤지수는 “몇 번 소피야와 대결해 봤다. 처음에는 거대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은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의 선전을 기대하고 있다. 나라별 3명의 선수가 나오는데 랭킹만으로 따져도 한국팀이 결코 약하지 않다. 윤지수는 “여자 사브르에서는 20위권까지 실력 차가 크지 않다. 언제든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 언니들과 함께 일을 내고 싶다”며 레이저 같은 눈빛을 발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