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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경

바다 쓰레기를 쫓는 사람들…시민과학으로 정책 바꾼다

등록 :2018-12-01 10:20수정 :2018-12-10 17:46

지난달 21일 경남 통영의 바다 쓰레기 연구 엔지오 ’오션’의 사람들이 통영 해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호 교사(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박신영·이종수 연구원, 이종명 한국해양쓰레기연구소장, 홍선욱 오션 대표, 김정아 예술감독(거제대 강사), 도파라·이미정 연구원. 이날 찾은 통영 덕포리 해안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널려 있었다. 심지어 비데 쓰레기도 떠다녔다.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달 21일 경남 통영의 바다 쓰레기 연구 엔지오 ’오션’의 사람들이 통영 해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호 교사(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박신영·이종수 연구원, 이종명 한국해양쓰레기연구소장, 홍선욱 오션 대표, 김정아 예술감독(거제대 강사), 도파라·이미정 연구원. 이날 찾은 통영 덕포리 해안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널려 있었다. 심지어 비데 쓰레기도 떠다녔다.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시민·연구자 손잡고 환경 지키는
경남 통영의 엔지오 ‘오션’ 이야기
▶ 올해 48회를 맞은 세계 ‘지구의 날‘(4월22일)의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에 맞추어졌다. 바다 쓰레기,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의 위협은 이제 바다 생태계를 넘어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쉽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바다 쓰레기 문제에 대해 9년째 조사하고 연구하며 개선방안을 제기하며 변화를 모색해온 경남 통영의 엔지오(NGO) ’오션‘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늘어나는 바다 쓰레기 문제는 오래됐지만, 그 실태가 충격으로 전해진 건 최근 몇년이다. 먼저 찾아온 충격은 미국의 선장 찰스 무어가 우연히 평소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하다가 태평양에서 발견한 한반도 크기 7배의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다. 바다에 흘러든 쓰레기들이 해류를 타고 떠다니다가 휘돌아 모여드는 ‘환류’ 지대에서 쓰레기 지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더 큰 시각적 충격은 바다 생물의 몸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들이었다. 지난 4월 숨진 향고래의 뱃속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던 비닐봉지, 노끈 등이었다. 이 익숙한 쓰레기들을 고래 뱃속에서 보게 될 줄이야. ‘고래 뱃속의 쓰레기’는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거대한 바다를 거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위협이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난달 21일 경남 통영 시내 사무실에서 바다 쓰레기 문제에 매달려온 엔지오 ‘동아시아 바다공동체 오션’의 사람들을 만났다. 연구기관과 환경단체 관계자가 “바다 쓰레기 문제에 관해선 아마 그곳에 아주 많은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준 터였다. ‘바다 환경 지킴이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학술논문을 내는 연구자’라는 점이 독특했다.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세태와 달리 남도 통영에 둥지를 틀고 9년째 ‘연구하며 논문을 내는 환경 엔지오’의 자리를 굳히고 있으니 그 활동이 더욱 궁금했다. 오션 사람들은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속수무책으로 늘어나는 우울한 시대에도 모두 활기찬 표정이었다.

지난 2016년 9월 태풍 ‘차바’가 휩쓸고 지나간 뒤, 경남 거제 해안에 밀려든 바다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지난 2016년 9월 태풍 ‘차바’가 휩쓸고 지나간 뒤, 경남 거제 해안에 밀려든 바다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시민과 연구자 결합한 ‘시민과학’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과학도 이렇게 멋진 논문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네요.”

인터뷰 취재 전날인 지난 11월20일 오전, 오션이 주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웹을 이용하는 이들의 온라인 세미나 ‘웨비나’는 2010년 1월부터 정기적으로 열려 이제는 300회를 훌쩍 넘겼다. 310회째인 이날 웨비나에선 지난 12년 동안 시민 6만여명과 함께 대만 해안에서 수집한 쓰레기 정보를 분석한 대만 연구자들의 최근 논문이 다뤄졌다. 오션 연구원들과 해군사관학교 교수, 각지의 환경단체 활동가 등 6명이 참여해 논문을 읽고 토론했다.

2009년 통영서 시민·연구자 의기투합
‘바다 쓰레기 전문 엔지오’로 성 장
꼼꼼한 모니터링으로 실태 드러내
24편 논문 내며 정책 변화도 이끌어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 문제 처음 제기
최근엔 납 등 낚시쓰레기 새 이슈로
“당장 해결 안돼도 조금씩 나아갈 것”

대만 연구진이 논문에서 보고한 대만 해안의 오염 실태는 바다가 플라스틱 몸살을 앓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연구진은 2004년부터 12년 동안 대만 해안에서 쓰레기 청소에 나선 자원봉사자 6만1639명(누적)이 531차례에 걸쳐 해안에서 수거한 무게 131톤, 90만4302개 쓰레기의 유형을 분석했다. 쓰레기의 대부분은 플라스틱이었다. 전체 쓰레기의 63.6%가 플라스틱, 27.2%는 플라스틱 재료가 섞인 쓰레기인 것으로 분류됐다. 가장 많은 건 비닐봉지, 병뚜껑, 수저와 젓가락 같은 식탁용품, 어구와 빨대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기법을 써서 환산해보니, 대만의 해안 1338㎞에선 해마다 560~1110톤 무게의 쓰레기 370만~790만개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플라스틱 비율이 매우 높은데 사실 우리나라에선 더 높아요. 우리 조사 결과에선 70%에 달하죠.”

“바로 치우는 태풍 쓰레기나 물속에 가라앉은 쓰레기도 있으니 전체 바다 쓰레기는 훨씬 더 많고요. 바닷가로 밀려드는 쓰레기의 대부분이 플라스틱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쓰레기 청소와 분류 작업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과학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더 잘 활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청소 활동을 재미있게 하면서도 정확하게 기록하는 방법을 개선하면 많은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시민과학 논문을 더 많이 낼 수 있을 겁니다.” 웨비나는 한 시간을 넘겨 끝났다.

‘시민과학’은 이들에게 중요한 열쇳말이다. 사실 ‘과학’에 기반한 활동을 강조하는 그린피스를 비롯해 국내외 여러 환경단체와 연구자들은 시민들이 참여해 기록하고 분류해 만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쓰레기 현황이나 발생원을 추적하는 시민과학 활동을 벌여왔다. 시민들이 천체 관측에서 얻은 영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항성이나 행성을 발견하거나, 누리꾼(네티즌)이 단백질 구조를 밝히거나 양자이론의 문제를 푸는 온라인 게임에 참여해 과학적 성과를 내는 시민과학의 사례는 과학계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시민과학이 바다 쓰레기 문제에 대응하는 환경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오션 사람들도 시민들이 참여하는 바다 쓰레기 모니터링 활동을 벌이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바다 쓰레기 분석 논문을 국내외에 여럿 발표했다. “시민과학이란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참여하며 스스로 환경 의식을 높이고 함께 노력한 결과물로 과학 논문이 만들어질 때 보람도 느낍니다. 논문은 정책을 바꾸는 데 중요하게 쓰이니, 결국 시민과학의 결과물은 시민을 위해 쓰이는 거죠.”(홍선욱 대표)

바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연구 엔지오 ‘오션'의 홍선욱 대표가 11월21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덕포리 해안에서 쓰고 버려진 양식장의 플라스틱 끈 쓰레기 더미를 살펴보고 있다.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바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연구 엔지오 ‘오션'의 홍선욱 대표가 11월21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덕포리 해안에서 쓰고 버려진 양식장의 플라스틱 끈 쓰레기 더미를 살펴보고 있다.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니터링의 힘” 스티로폼 문제 드러내

시민들이 참여해 만들어낸 모니터링 데이터는 한국의 바다 쓰레기 실태를 새롭게 드러냈다. 홍 대표는 시민과학에서 “모니터링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다 쓰레기 모니터링에 대한 오션의 관심은 2001년께 시작됐다. “2001년 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해양쓰레기 종합처리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에 참여했어요. 해마다 9월이면 세계 각지 사람들이 해안 쓰레기를 치우는 ‘국제 연안 정화’(ICC) 행사가 열리는데, 마침 그때 국내 환경·시민단체들과 함께 이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툴게 시작한 바다 쓰레기 행사는 홍선욱 대표에게 큰 보람이 되었고 해양구조단으로 직장을 옮긴 뒤에도 사업을 계속 주관할 수 있었다. 함께 활동했던 이종명 전 사천환경연합 사무국장과 2009년에 ‘바다 쓰레기 전문단체’를 만드는 일에 의기투합했다. 이종명 전 사무국장은 현재 오션 부설 한국해양쓰레기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오션은 국제 연안 정화 활동과 더불어 2008년 시작된 해양수산부와 해양환경공단의 국가해양쓰레기 모니터링 사업을 주관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이종명 소장은 “환경단체에서 일할 때와 달리 지금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쓰레기의 발생원을 찾아 없애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며 “환경 엔지오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전과 달리 ‘과학’ 활동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오션 사람들은 이 때문에 자신들을 ‘연구하는 환경 엔지오’라 소개한다.

시민들의 모니터링 데이터가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들이 양식장의 스티로폼 부표가 쓰레기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모니터링 덕분이었다. 이들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지금처럼 부각되기 이전인 2010년에 2년간의 바다 쓰레기 모니터링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플라스틱 바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가장 큰 요인이 양식장에서 쓰는 하얀 스티로폼 부표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쉽게 부서지는 스티로폼 부표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버려지거나 양식 과정에서 떨어져 나가 연안에 많은 미세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냈다.

홍 대표는 “이때부터 정책 담당자와 스티로폼 부표 업체, 양식업자들을 찾아다니며 문제를 알리고 해마다 토론회를 열어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제는 좀 더 견고한 친환경 부표들이 개발돼 출시될 정도로 여건이 조금 나아졌다. 이종명 소장은 “2008~2017년의 모니터링 자료를 보면 부실한 스티로폼 부표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실태와 개선 효과를 데이터로 확인하는 게 이들에게는 큰 보람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선 부산대 오정은 교수 연구진이 국내 굴 양식장 부근 바다에서 오염물질인 난연재 성분(HBCD)이 많이 검출되는데, 이는 폐기된 건축자재용 스티로폼을 재활용해 스티로폼 부표를 만들기 때문임을 밝히는 논문을 내어 스티로폼 부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하며 논문 쓰는 엔지오

오션이 통영에 자리를 잡은 건 2009년 10월이었다. 2001년부터 환경단체와 시민이 참여한 바닷가 쓰레기 수거와 조사 활동이 큰 밑천이 되었다. ‘과학에 기반을 둔 환경 엔지오’를 표방한 단체답게, 이곳에선 지금까지 바다 쓰레기 실태 조사와 정책 방향을 다룬 논문 24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단체 설립 이후엔 홍선욱 대표, 이종명 소장을 비롯해 모두 4명의 박사 학위자가 배출됐다.(이후 2명은 이직)

지역 시민단체인 어린이책시민연대에서 일하다 2010년 오션에 들어와 이제는 국제 학술논문의 공저자가 된 이종수 연구원은 연구하며 논문을 쓰는 엔지오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논문은 우리 연구와 활동 결과를 세계에 알리는 통로가 돼요. 또 바다 쓰레기에 대한 세계의 연구와 활동을 아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도 얻고, 또 조사와 연구 활동을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하게 해줍니다.”

‘동아시아 바다공동체’라는 이름처럼, 오션은 아시아 여러 나라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인 ‘아시아태평양 해양 쓰레기 시민포럼’에서 사무국 구실도 하고 있다. 바다 쓰레기 문제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이종명 소장은 “우리 쓰레기가 일본 해안으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중국 쓰레기가 우리 해안으로 흘러들어 오기도 한다”며 “서로 상대 탓을 하기보다 자기 지역의 바다 쓰레기 문제를 먼저 살피고 해결하려 노력하면서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션이 한해에 두번씩 발행하는 영문 소식지 <바다 쓰레기 레터>는 이런 국제 시민포럼의 토대가 되고 있다. 홍 대표가 편집장을 맡아 여러 나라의 현안과 활동 사례, 소식을 담아 국제기구뿐 아니라 국내외 바다 쓰레기 관계자 1000여명한테 온라인으로 배포한다. 다달이 중국, 대만, 베트남 활동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웨비나 세미나도 열린다. 올해 6월엔 국내에서 국제 시민포럼의 오프라인 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상근 연구원 6명이 꾸린 오션과 해양쓰레기연구소는 국제 무대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얻고 있다고 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16년 펴낸 보고서 <해양 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에서 오션의 활동은 국가 간 협력연구의 좋은 사례로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소개됐다. 홍 대표는 유엔환경계획이 낸 해양환경 보호 전문가 그룹의 보고서에 집필 전문위원 자격으로 참여했고, 바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학술지인 <바다 오염 불리틴>의 특집호 에디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바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연구 엔지오 ‘오션’의 활동에 참여한 이종호 교사(통영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왼쪽)와 김정아 예술감독(거제대 강사)이 바다 쓰레기 관련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작품은 바다 쓰레기를 이용한 김정아 작 ‘디너 2011’(63×63×16㎝, 한지에 캐스팅).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바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는 연구 엔지오 ‘오션’의 활동에 참여한 이종호 교사(통영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 왼쪽)와 김정아 예술감독(거제대 강사)이 바다 쓰레기 관련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작품은 바다 쓰레기를 이용한 김정아 작 ‘디너 2011’(63×63×16㎝, 한지에 캐스팅). 통영/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예술감독과 교사의 참여

바다 쓰레기와 거울을 이용해 만든 김정아 작 ‘빈자리’(53×45.5㎝, 캔버스에 아크릴릭) 작가의 한마디. “쓰레기 때문에 살 곳을 잃어 사라진 새의 빈자리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바다 쓰레기와 거울을 이용해 만든 김정아 작 ‘빈자리’(53×45.5㎝, 캔버스에 아크릴릭) 작가의 한마디. “쓰레기 때문에 살 곳을 잃어 사라진 새의 빈자리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오션 사람들 중에는 상근자 못지않게 바다 쓰레기 문제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션의 예술감독인 김정아 거제대 강사(미술사)는 2010년 무렵부터 해안에서 주운 플라스틱 쓰레기를 이용해 바다 쓰레기 문제를 알리는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2011년에 네덜란드에서 온 한 생태학자가 하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바닷새 몸속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실태를 알려주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에 쓰레기로 인한 생물 피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죠.”

그의 작품 ‘디너 2011’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널리 알려지기 훨씬 전인 2011년에 만들어졌다. 식탁에 오른 고등어의 몸속에서 갖가지 플라스틱 조각이 쏟아져 나오는 형상을 보여준다. 섬뜩한 느낌도 들지만 이제 바다 생물의 플라스틱 피해는 현실이 됐다. “강조하다 보니 조금 과장한 면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서 바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말을 해줄 땐 뿌듯해요.”

바다 쓰레기 문제를 알리는 교육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이종호 교사(통영 산양초등학교 곤리분교장)는 2010년 이래 바다 쓰레기 치우기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16년 전 초등학교 교사가 된 그는 “그 전에는 바닷가에 쓰레기가 있게 마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션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심해지는 바다 쓰레기 문제가 걱정돼 주민들과 함께 쓰레기 치우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은 깨끗한 바다”라는 뜻에서 2015년 12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엄마아빠의 선물’이라는 작은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다. 많아야 6명 정도 참여하는 작은 행사이지만 통영 해안을 돌며 쓰레기 치우는 활동을 벌인다. 곤리도의 분교장인 이 교사는 “유인도의 쓰레기 문제가 골칫거리로 떠오르지만 치우는 사람이 없는 무인도의 쓰레기가 정말 큰 문제”라며 “차곡차곡 쌓였다가 태풍 때 다시 흩어졌다 모이곤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장 되돌릴 수 없다 해도

플라스틱 쓰레기는 극지에도 스며들어 있다. 지난 4월 독일 연구진은 북극해 5곳에서 바다얼음을 채집해 조사해보니, 50㎛(0.05㎜) 이하 미세플라스틱이 1리터당 1만2000개나 들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얼음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중에서 5㎜ 이하가 67%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미세플라스틱은 바다 생물의 먹이가 된다. 플라스틱은 바다를 타고 흘러다녀 남극에도 북극에도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쓰레기 문제에서 왜 바다가 중요하게 떠오를까? 미세플라스틱을 연구하는 김용진 목포해양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쓰레기 문제를 다루면서 바다에 관심을 갖는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바다가 최종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도로변 미세플라스틱, 하수처리시설 방류수 등이 다 바다로 들어갑니다. 둘째는 바다 쓰레기들이 여러 물리화학적 요인으로 잘게 쪼개져 바다에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생성된 미세플라스틱이 바다 생태계에 영향을 주고 다시 사람이 섭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연구자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이제 돌이키기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당장 플라스틱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더라도 이미 바다에 들어가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계속 잘게 쪼개져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지만 오션 연구자들이 시민과학과 모니터링 활동에 주력하는 것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조사 활동과 그 결과물로 얻어지는 모니터링 데이터가 지금의 문제를 더 널리 인식시키고 조금이라도 오늘의 쓰레기 정책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싸고 오래가고, 그래서 점점 더 많이 써왔는데, 바로 그런 장점이 이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역습이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50년의 플라스틱 역사를 통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그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미세플라스틱이 당장 심각한 문제가 되진 않더라도 점점 많아진다면 앞으로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요. 교통사고 환자의 응급처치와 달리 만성적인 성인병 환자처럼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홍선욱 대표)

요즘 오션은 새롭게 ‘낚시 쓰레기’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엔 파타고니아 기업의 지원으로 부산과 경남의 해안과 섬을 돌며 낚시객들이 남긴 쓰레기의 종류와 실태를 조사했다. 낚싯대를 붙박아두려고 갯바위 틈에다 박은 납덩어리가 많이 발견됐다. 납이 낚시터 쓰레기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월22일 오션은 부산에서 낚시 쓰레기 대책 토론회를 처음 열었다. 홍선욱 대표는 “스티로폼 부표에 이어 앞으로 10년이 걸리더라도 낚시 쓰레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조금씩 문제를 공유하면서 낚시객들 스스로 쓰레기 문제를 인식하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영/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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