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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샀는데 충전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감축’되는 느낌입니다. 충전할 때마다 전쟁을 치르다 보니 요즘은 차를 끌고 나올 생각도 못 한 채 집에 곱게 모셔두고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경아무개(42)씨는 지난해 6월 수소차를 산 뒤 ‘충전 스트레스’ 탓에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다. 평소 수소차에 관심은 있었지만 언론에서 충전소 부족으로 운전자들이 곤욕을 치른다는 소식에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해 1월에 이어 6월 등 춘천에만 충전소가 2곳이나 생기자 구매를 결정했다.

하지만 실상은 기대와 달랐다. 춘천에 충전소가 없을 당시 시청에서 79㎞나 떨어진 경기도 하남까지 ‘원정 충전’을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사라졌지만 ‘긴 기다림과 원하는 만큼’ 충전하지 못하는 불편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시간 20분이면 짧게 기다린 편”

일요일인 지난달 14일에도 경씨는 아침잠까지 포기하고 충전소로 향했다. 일어나자마자 충전소 대기 차량의 수와 재고 여부 등 현황을 알려주는 단톡방부터 확인했더니 웬일로 대기 차량이 4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씻지도 않고 부리나케 준비해 오전 8시50분까지 충전소에 도착했지만 경씨 앞에는 이미 7대의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대기 줄이 길지 않다는 소식에 너도나도 충전소로 몰린 탓이다. 결국 경씨는 이날 충전소에서만 1시간20분을 기다렸다. 경씨는 “수소차는 1대당 충전 시간이 10분 정도 걸리는데 보통 적게는 6대, 많게는 12대까지 차량 행렬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충전 한번 하는 데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기다리기 일쑤다. 1시간20분이면 짧게 기다린 편에 속한다”고 하소연했다.

충전소 부족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수소차 운전자의 ‘뻗치기 충전’은 일상이다. 그나마 기다렸다가 충전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인 편에 속한다. 오전 8시부터 충전소 운영이 시작되지만 밀려드는 차에 3시간도 되지 않은 오전 10시40분께 보유하고 있던 수소가 동나 충전소를 찾은 차주들이 헛걸음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소차를 팔려는 운전자까지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소차는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보조금 3550만원(올해 춘천 기준)을 받아 현재 7000만원 수준인 차를 절반 가격에 살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은 뒤 2년 안에 타 시·도에 차를 팔면 기간에 따라 최대 1300만원(지방비 지원금액)을 토해내야 한다.

경씨는 “수소차를 산 뒤 아내에게 ‘괜히 샀다’는 핀잔을 많이 듣고 있다. 팔아버리고 싶지만 받은 보조금을 토해내야 한다고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수소차 사라고 보조금까지 줬으면, 기본적인 충전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충전 대란에 강원·경기·충북 등 충전량 제한 

이처럼 수소충전 대란이 빚어지면서 춘천에는 지난 7월25일부터 충전 제한 조처까지 내려졌다. 가득 충전하려면 6㎏ 정도 넣어야 하는데 절반인 하루 3㎏만 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수소유통전담기관인 한국가스공사가 확인해보니, 이런 충전 제한 조처는 춘천뿐 아니라 도내 6곳과 경기, 충북 등 중부권 충전소 25곳으로 확대된 상태다. 충청도 일부 충전소는 충전량을 1㎏으로 제한하는 곳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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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충전 대란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수소는 석유 화합물에서 나오는 찌꺼기 가운데 부생수소를 주로 활용해 만드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해 수소를 생산하는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률이 낮아졌다.

수요가 급증한 탓도 있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과 충전소 설치 확대 등의 바람을 타고 수소차가 폭증했다. 강원도 사례만 봐도 강원지역 수소차는 7월 말 현재 2443대에 이른다. 2019년 284대에 불과했던 강원지역 수소차는 2020년 917대, 2021년 1877대로 불과 3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9배 이상 폭증했다.

강원도 내 수소차 충전소는 춘천과 원주에 각 2곳 등 9곳에 그친다. 이마저도 인제에 있는 충전소는 지난 7월부터 영업이 중단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제 등 춘천 인근 수소차 운전자까지 춘천으로 원정 충전에 나서면서 충전 부족 문제를 부추기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 누리집을 보면, 7월 현재 국내 수소차 등록 대수는 2만4687대로 지난해 7월(1만5765대)에 견줘 8922대(56.5%)나 늘었다. 여기에 최근 기름값이 급등하면서 보조 차량으로만 활용했던 수소차를 많이 몰게 되면서 수소 이용량도 함께 늘었다.

정부 “연내 수소생산기지 3곳 추가…수급여건 개선”

수소충전 대란에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5일 에너지산업실장 주관으로 수소 생산·유통업체, 수소차 제조사, 수소유통전담기관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수소수급 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수소 공급 확대를 위해 생산·유통업체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수소유통전담기관인 한국가스공사엔 수소수급 대책반을 꾸려 수소 출하시설 가동 현황과 유통 상황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 대응하도록 했다.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현재 부생수소 공급사들의 수소공급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8월 말 여수에 이어 10월 평택과 삼척에 새 수소생산기지가 생기면 수급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