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8시10분께 경기 의왕시 청계톨게이트에서 판교 방향으로 달리던 베엠베(BMW) 차량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하고 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리콜 조처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베엠베(BMW) 차량에서 다시 화재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수도권에서만 일주일 새 6대에서 불이 났다. 리콜을 받은 차량뿐 아니라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불이 나면서 화재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3일 밤 9시께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서 도로를 달리던 베엠베 스포츠실용차(SUV) ‘X6’에 불이 나 차량이 전소됐다. 지난 1일 새벽에도 서울 상암동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베엠베 ‘320d’ 승용차에 불이 났다. 화재가 난 차량은 리콜 대상 차종으로 수리까지 받았다. 지난달 말부터 신고된 베엠베 화재 차량 6대 중 3대는 리콜 조처를 받은 차량이다.
앞서 베엠베코리아는 지난해 화재 사고가 잇따르자 10만대가 넘는 차를 리콜했다. 당시 베엠베가 차량 화재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엔진에 장착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모듈의 결함이다. ‘이지아르’는 디젤차량의 매연을 줄이기 위해 엔진에서 나온 배기가스를 다시 순환시켜 오염물질을 줄이는 장치이다. 배기가스를 식혀 주는 이지아르 쿨러에서 새어나온 냉각수가 모듈 안에 쌓이고 이 침전물이 고온의 배기가스를 만나 불이 붙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논리에 기반한 베엠베 쪽의 리콜 계획을 승인했다.
그럼에도 최근 화재 사고가 재발하자 베엠베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회사 쪽은 “이번 화재 원인은 침수 이력에 따른 외부 수리, 정품 미사용 등 다른 요인으로 추정돼 이지아르와는 관련 없는 것으로 본다”고 했지만, 화재 원인을 둘러싼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엠베 화재를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리콜의 적절성 문제다. 베엠베 차량의 잇단 화재가 하드웨어 요소인 이지아르 부품 결함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설계 결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지아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요인에 의한 화재 가능성이다. 예컨대, 리콜 대상에서 제외된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는 원인이 이지아르 모듈이 아닌 다른 데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앞서 미국과 영국에선 베엠베 화재 원인을 전기배선과 전기적 과부하 등 전기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리콜한 전례가 있다. 이지아르 부품 문제로 국한한 지금의 리콜 처방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베엠베가 주장하는 ‘이지아르 모듈’ 문제보다 결함 범위가 훨씬 광범위하다면 이번 리콜은 미봉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리콜을 통해 부품을 교체해도 화재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 차량 소송을 대리해온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설계 결함이 근본적인 문제라면 단순히 이지아르 부품을 교체하고 파이프에 쌓인 침전물을 청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화재 사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다시 조사에 착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추가 정밀조사를 통해 화재 사안별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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