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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2%%]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가 공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공약한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행보처럼 보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약속은 청년세대의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정규직)을 남발하는 것은 공정의 가치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공정을 외쳐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은 큰 힘을 받지 못했다. ‘인국공 사태’라 불린 이 사건을 계기로 공정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됐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다. 포문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열었다. 그는 지난 6월 당 대표 선거에서 “여성 비례대표 50% 할당제는 실패했다”고 선언하고 ‘여가부 폐지’를 주장했다. 또 청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할당제를 반대하고 대신 ‘능력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는 엘리트주의를 주창했다. 앞서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시절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남녀성비 5:5 비율의 비례대표 공천을 7:3이나 8:2로 맞추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비상위권 대학이나 지방대 학생들은 대기업의 인턴 기회조차도 얻을 수 없는 현실’에 함께 분노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그의 변신은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대남’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사회의 ‘20대 남성’ 집단의 일부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남성 역차별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이를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의 비뚤어진 인식은 공론의 장에서 논쟁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는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표로 계산하기만 바쁘다.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게 한국 사회의 공정을 둘러싼 논쟁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국내 한 학술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경제성장을 이뤄낸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서 공정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를 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샌델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더욱 확대된 격차의 원인으로 ‘공정을 가장한 능력주의’를 꼽았다. 2020년 12월 출간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그는 ‘승자와 패자가 능력주의를 당연시하는 것’이 불평등을 고착시킨다고 경고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망이나 격차를 해소하려는 복지정책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문제는 앞으로의 경제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이 지난 7월 발표한 통계를 보면, 미국은 현재 1년 6개월 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있지만 취업은 그때와 견줘 600만명이 부족하다. 이는 첨단기술이 도입된 업종의 노동생산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한 반면 다른 수많은 전통적인 일자리는 파괴됐기 때문이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다.(한국도 2020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신입생 55%가 소득분위 9~10분위 고소득 가구에 속해 있다) 능력주의는 이들이 누리는 혜택을 공정한 경쟁의 결과로 포장한다. 부모의 경제적 배경이 주요하게 작동한 것은 못 본 체한다. 하지만 출발선의 격차를 외면한 능력주의는 심각한 사회 분열을 일으켜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샌델은 경고한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열성팬인 그는 이 작품이 묘사한 특권층의 불안감에도 주목한다. 이른바 ‘금수저’라고 불리는 아이들도 명문대 진학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은 경쟁적인 능력주의의 폐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소수의 사람들이 성공의 사다리를 타는 것보다 한번 떨어졌을 때 다시 올라오는 게 더 힘들게 보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샌델은 능력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노동의 존엄성’을 되찾을 것을 제안한다. 노동의 존엄성에 집중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존중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돌봄과 청소, 배달, 보건, 위생 등 그동안 경시됐던 직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이런 일들은 사회가 작동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시장주도적 사회에서 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중요한 것은)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그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은 한국 사회에서 역으로 비판도 받았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강력한 능력주의 선발 시스템이 없었다면 한국의 고위 공직은 혈연·지연으로 얽힌 부패하고 무능한 사람들이 차지했을 것”이라며 능력주의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했다(<경향신문> 6월10일치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그는 능력주의가 “대중의 집단적 절망에 의해 강화됐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화두가 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어떤 정권이 집권해도 양극화를 줄이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한 대중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으로 (기업) 채용이나 (대학) 입학 여부가 결정”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는 “공정이 ‘시대정신’으로 등극한 것은 사람들이 시험에 중독되었거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정희원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샌델이 제시한 ‘개인주의적 해법’의 한계를 지적했다(<프레시안> 3월9일치 ‘마이클 샌델이 진보라는 착각’). 그는 “샌델이 강조하는 것처럼 자신의 행운을 인정하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남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한다고 해서 능력주의의 본질적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는다”며 개인화된 해법이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샌델에 대한 비판은 그가 ‘한국형 능력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수렴한다. 10월20일 열리는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서는 샌델이 이런 지적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IMAG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