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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일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비대면으로 진행된 기조강연에서 모더나와 화이자 같은 공공투자로 개발된 백신의 특허권 보호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샌델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 8월25일 사전 녹화됐다. 모더나와 화이자는 지난 8월 백신 공급 가격을 인상해 백신을 구입하지 못한 나라들을 애태우고 있다.

샌델 교수는 “미국 정부가 백신 개발을 위해 모더나에 총 25억달러(약 2조9700억원)를 지출했다. 하지만 국가 간 백신 불평등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며 백신 특허권 중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막대한 공공기금이 투입돼 개발된 백신의 과실을 민간 제약사가 독식하도록 내버려두면 코로나 같은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신 불평등은 ‘능력주의의 함정’이 국가 간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잘 보여준다.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선진국이 그 결실을 독식하게 되면 인류의 공동선은 붕괴되고 공공의 이익은 쉽게 무시된다. 이런 상황은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백신 불평등이 연구개발 능력에 따른 결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샌델은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은미 이화여대 총장의 “교육과 연구개발에도 능력주의의 함정이 작동한다”는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연구개발에 대한 공공투자를 더욱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혁신과 연구개발이 민간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시장의 우선 과제가 혁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나 월가의 큰손들에게 시민의 운명을 맡기면 안 된다”고 했다. 공동선과 세계적 공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샌델은 “연구개발과 혁신에 공공투자가 강조되면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어떤 종류의 혁신과 기술적 진보가 공동선에 잘 부합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샌델은 세계의 공동선을 위해 선진국이 좀 더 겸손해질 것을 제안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겸손의 교훈을 배워야 하는 사례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탈레반을 상대로 1조달러가 넘는 돈을 썼지만 더욱 혼란스러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미국 외교 정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만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엘리트 대물림’ 현상에 대한 김선욱 숭실대 부총장의 질문에 “토지와 같은 막대한 부를 물려받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문화·교육적 혜택의 형태를 취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샌델은 상속세나 ‘평준화’ 같은 강제적인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칫 “부모들에 의한 자녀의 교육적, 지적, 문화적 발달 함양이 금지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인생의 성공이 한국의 유명 대학이나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 여부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샌델은 그 해법으로 노동의 존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종종 무시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깨닫게 했다. 택배 노동자, 식료품 점원, 간호조무사, 아동돌봄 노동자, 트럭 운전사, 쓰레기 수집상 등은 우리 사회에서 높은 보수를 받거나 존경을 받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하지만 팬데믹을 겪는 동안 그들은 ‘필수 노동자’라고 불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샌델은 “그들이 받는 보수와 존재감을 그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중요성과 더욱 잘 부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