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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로 가라앉으며 경기 둔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 등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며 한국 수출도 직격탄을 맞으리라는 것이다. 이달 말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이 경기 둔화 가능성을 고려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케이디아이는 1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내년 우리 경제는 수출과 투자 부진으로 경기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기관은 내년 한국의 실질 경제 성장률(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 전망치를 지난 5월 제시한 2.3%에서 1.8%로 0.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한국의 성장률이 지난해 4.1%에서 올해 2.7%, 내년엔 1.8%로 가라앉으리라는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이 내년 한국 경제의 1%대 저성장을 점친 건 처음이다. 이는 현재 시점에서 기획재정부(2.5%)와 한국은행(2.1%)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 국제통화기금(IMF, 2.0%) 등 국제기구 전망치보다도 낮다. 추후 정부와 한은도 전망치 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음 달 내년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둔 기재부도 기존 전망치(2.5%)를 끌어내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가 노동·자본 등 보유 자원을 사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잠재 성장률은 2% 남짓으로 추산된다.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돈다는 건 내년 경기가 우리 경제의 잠재력에도 못 미칠 만큼 부진할 것이라는 의미다. 내년 성장률이 실제 1%대로 내려가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0.7%)를 제외하고 세계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셈이다.

정규철 케이디아이 경제전망실장은 “우리 경제는 내년 1∼2분기에 상당히 낮은 성장률을 보이며 내년 전체 경기는 ‘상저 하고’(상반기 낮고 하반기 높음)의 모습을 띌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전망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수출 둔화다. 케이디아이는 한국의 수출 증가율(전년 대비)이 지난해 10.8%에서 올해 4.3%로 반 토막 나고 내년에는 1.6%에 그칠 것으로 봤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과 달러 초강세 여파로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고 중국 경기마저 꺼지며 반도체 등 한국 수출도 타격을 입으리라는 것이다.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앞서 올해 1분기 1.7%포인트, 2분기 -1%포인트, 3분기 -1.8%포인트로 악화하는 추세다. 수출 부진과 수입 증가가 성장률을 1%포인트 넘게 갉아먹고 있다는 의미다.

또 시장 금리 상승과 반도체 경기 악화 등으로 투자 부진이 이어지고 그나마 경기를 떠받치던 민간 소비도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성장세가 올해 4.7%에서 내년 3.1%로 주춤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전년 대비)은 올해 5.1%에서 내년에도 3.2%에 머무르며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정책금리가 5% 초중반까지 오르며 원-달러 환율(교역 상대국의 물가 등을 반영한 실질 실효 환율 기준)도 올해에 견줘 4% 남짓 상승할 것으로 봤다.

내년 한국 경제는 안팎이 지뢰밭인 상황이다. 대외적으론 미국 정책금리 인상 가속화, 중국 경기 급락,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 등이 한국의 경기 침체를 부르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날 발표한 ‘2023년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1, 2위 수출 상대국인 중국과 미국의 내년 성장률이 각각 4.8%, 0.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러시아와 경제적으로 깊게 얽힌 유럽의 경우 많은 나라에서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국내 사정도 나쁘다. 시장 금리가 뛰며 이자 부담이 소비를 짓누르고 최근 회사채 시장 불안 여파로 기업의 자금 조달마저 위협받고 있다.

정 실장은 “한은이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지속하면 경기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금리 인상은 필요하지만 내년 경기 둔화가 예상되고 물가 상승률도 조금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리를 가파르게 올릴 필요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당분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둔화하면 이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생긴다”면서 “이들을 위한 정부 지원을 현실화하되 통화 긴축 정책을 고려해 전체 수요를 자극하진 않도록 재정 지출을 제약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