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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일이 더 있다.”(We have more work to do)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정책금리 인상을 결정한 뒤 이같이 말했다. 내년 경기 침체를 우려한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하던 시장의 기대감은 단박에 꺾였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연준은 금리가 예상보다 높고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더 많은 ‘고통’이 (실물 경제에) 닥칠 것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고 짚었다. 경기가 가라앉아도 물가를 잡기 전까진 금리를 더 올릴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한국 사정도 미국과 판박이다. 올해 1월 1.25%에서 11월 3.25%로 뛴 기준금리가 내년 소비·투자·고용 등 실물 경제 전반을 짓누르는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실물 경제 전반에 나타나는 시차는 보통 6개월∼1년”이라고 했다. 최대 고비는 내년 상반기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가 함께 들이닥치며 실물 경제 ‘혹한’을 예고하고 있다. 내수 소비는 벌써 냉각 조짐이 뚜렷하다. 한국에선 고소득층부터 지갑을 닫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11월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 올해 10월보다는 10.5% 감소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11월 따뜻한 날씨 탓에 고가의 겨울옷이 덜 팔린 데다 금리 인상, 주택 거래 절벽 등으로 소비 심리도 꽁꽁 얼어붙고 있다”며 “유통 업계가 지난해까진 코로나19 반사 이익 덕분에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재부 집계를 보면 지난달 롯데·현대·신세계 등 ‘빅3’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증가율이 한 달 전 7%에서 곤두박질했다. 고가 내구재인 승용차의 10월 내수 판매액도 전월보다 7.8% 줄며 큰 폭의 감소세로 돌아섰다. [%%IMAGE2%%] 한국을 비롯한 미국·유럽 등 주요국의 소비 둔화는 국내 주력 제조업 생산과 수출에도 대형 악재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의 지난달 소매 판매는 블랙프라이데이 등 ‘쇼핑 대목’에도 전달 대비 0.6% 줄며 11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이처럼 주요국 소비가 뒷걸음질하며 반도체 등 국내 제조업 재고율(제조업 재고지수를 공장 출하지수로 나눈 비율)은 지난 6월부터 다섯 달 내리 120%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2020년 5월(12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공장 밖으로 내어보내는 출하 물량보다 공장 안에 쌓이는 재고가 더 빨리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내년 상반기 한국의 상품 수출이 올해 상반기에 견줘 3.7% 줄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영업자 식당 등 내수 서비스업도 타격을 받으리라는 염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3분기(7∼9월)에 전기 대비 7.7%나 늘었던 국내 숙박·음식점업 생산은 경기 하강으로 소비 심리가 부쩍 어두워지며 10월 들어 이미 감소세로 전환했다. 한은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서 “가계의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75% 수준일 때 집값이 20% 하락하면 같은 기간 소비는 최대 4% 감소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한국처럼 가계 빚이 많을수록 소비·고용 등 실물 경제가 받는 충격도 커진다는 의미다. 이런 사정 탓에 주요 기관들이 발표하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2%로 제시한 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1.8%,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달 중순 1.5%를 점쳤다. 1%대 성장률은 코로나19 위기 때인 2020년(-0.7%)을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과거와 같은 위기는 아닐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현재 한국의 잠재 성장률(노동과 자본을 충분히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 2% 남짓으로 낮아진 만큼, 1%대 성장률 전망이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의 실물 경제 충격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다주택자 규제 완화 등 고강도 부동산 대책에 견줘 눈에 띄는 서민 지원 정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의 조세와 재정의 경기 대응 능력은 오이시디 국가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며 “정부가 기존 제도에만 기대지 말고 조세의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 그 재원으로 사회·노동 안전망을 촘촘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