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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짜판]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방 가열…왜?

등록 2017-04-17 11:37수정 2017-04-18 10:07

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한겨레 선임기자
한겨레 선임기자
“요즘 이동전화 요금제에는 ‘기본료’란 항목이 없다.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란 명목으로 가입자당 월 1만1천원씩 요금을 덜 받게 하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모두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창출할 생각은 안하고 배당·성과급 잔치만 확대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비싼 요금 내서 해마다 수조원씩 이익을 내게 할 필요가 있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11일 발표한 ‘가계통신비 부담 절감 8대 정책’ 공약 가운데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를 두고, 이동통신 사업자 쪽과 시민단체 사이에 날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유독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만을 갖고 난리를 치고 있고, 공방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거꾸로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같은 파격적인 요금인하 조처가 왜 시급한지가 선명해지고 있어 주목된다.

문재인 후보 공약 두고 물밑 설전
이통사 “요즘 요금제엔 기본료 없다”
“가입자당 월 1만1천원씩 사업자 모두 적자”
시민단체 “이통사들이 자처했다”
“비싼 요금 받아 투자는 안하고 배당만 늘리니…”
공방 과정서 기본료 폐지 명분 뚜렷해져 눈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이틀 뒤인 13일 ‘통신비 걱정없이 누리는 세상’을 목표로 삼은 통신비 부담 완화 공약을 내놨다. 문 후보 공약과 달리 실효성 논란만 일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처럼, 가입자 쪽에서는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동통신 사업자 쪽에서는 그만큼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파격적인 사안을 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후보 자신도 “기업과 산업의 현실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게 아닌, 민간 중심의 현실성 있는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그래픽_김지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에 대해 “요즘 이동전화 요금제에는 ‘기본료’란 항목이 없다. 없는 걸 어찌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회사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본료는 원가를 따져 이동전화 요금을 정하던 시절 쓰던 용어일뿐 지금은 사라졌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딱하다”고 말했다.

사업자들은 이와 더불어 “문 후보의 공약대로 가입자당 월 1만1천원을 기본료로 간주해 일괄적으로 덜 받게 한다고 가정하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이 7조원 이상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 총액이 3조6천여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모두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들어 “현실적으로 실현성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한다.

알뜰폰 사업자들과 이동통신 유통점들도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문 후보 공약대로 이동전화 기본료가 폐지돼 이동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중소 유통점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통사 마케팅비가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도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제4차 산업혁명과 5세대 이동통신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래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이런 논리로 공약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증권사들의 전망도 회의적이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가입자당매출 3만5447원을 기준으로 월 요금 1만원씩을 인하하면 통신 3사의 순이익은 4조3927억원이 감소한다. 기본료 인하에 따른 손익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 5세대 통신망 등 네트워크 고도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 알뜰폰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실행이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참여연대와 녹색소비자연대 등 오랜 기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를 해온 시민단체들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장 실효성 있고 실현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환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동통신 요금이 기본료, 정액요금, 초과 이용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기본료 폐지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마치 이익이 그만큼 감소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고, 일부 언론이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_김지야(※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SKT)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 등 후발 사업자들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 알뜰폰과 최근 들어 빠르게 비중이 커지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가입자도 제외된다. 여기에 이통사들의 자구책까지 보태지면, 매출은 좀 줄지 몰라도 영업이익 등의 감소 폭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학계 쪽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같은 공약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통신 쪽 정책연구원을 거친 한 대학교수는 “현재 사용 중인 통신망은 이미 감가상각이 끝났거나 마무리 상태라서 이론적으로 원가가 제로(0원)에 가깝다. 통신사들이 국민 호주머니에 기대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도,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낼 생각은 않고 배당·성과급 잔치만 확대하고 있으니 이런 공약이 나오고, 먹히는 것 아니냐. 지난 대선 때의 문 후보 공약에는 이런 파격적인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동안 전·후방 산업 육성이란 명분을 앞세워 이동통신 사업자들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놓은 요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수준의 파격적인 요금인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정보통신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담당해온 부처들은 그동안 전·후방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이동통신 요금이 비싸게 책정되는 것을 사실상 방조해왔다. 요금 10% 내려봤자 가입자 한명한테는 다달이 자장면 한 그릇밖에 안되지만 모아서 투자하면 산업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요금인하 요구를 가로막기까지 했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이런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둬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이동통신 보급률과 품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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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통사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이런 선순환 효과가 반감되기 시작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더는 투자할 곳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비싼 요금으로 엄청나게 남겨지는 이익은 계열사와 자회사를 지원하거나 배당 잔치를 확대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 실제로 2014년과 2016년 사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 총액은 1조6108억원에서 3조5976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투자는 6조8710억원에서 5조5788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대신 배당은 늘었다. 한 소비자단체 활동가는 “이동통신 가입자 쪽에서 보면, 비싼 요금 내서 투자자들 배불리는 꼴이다. 게다가 이통사 주주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이다. 통신비 인하 공약이 먹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1위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은 “우리가 요금을 내리면 후발·알뜰폰 사업자들이 죽는다”는 주장을 펴며, 이동통신 사업으로 ‘황금알’을 챙기고 있다.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평균 영업이익률(단독 기준)은 8.8%였던 데 비해, 에스케이텔레콤의 영업이익률은 14.4%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부의 요금 규제를 받는 사업자이자, 매출의 100%를 국민 호주머니에서 올리는 사업자의 영업이익률 치고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시민단체들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른바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의 컨트롤타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돈줄 묻어두기’ 차원”이라고 지적한다. ‘제4차 산업혁명과 5세대 이동통신을 선도해 국가경쟁력을 한차원 높이자’ 식의 밑그림을 그려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동통신사들의 투자 여력을 떨어트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진걸 처장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등은 가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는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반대 주장의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내용의 성명을 준비하고 있다. 문 후보 쪽에도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배경과 근거, 일정과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달라고 요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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