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한겨레 선임기자
이통사 “요즘 요금제엔 기본료 없다”
“가입자당 월 1만1천원씩 사업자 모두 적자”
시민단체 “이통사들이 자처했다”
“비싼 요금 받아 투자는 안하고 배당만 늘리니…”
공방 과정서 기본료 폐지 명분 뚜렷해져 눈길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도 이틀 뒤인 13일 ‘통신비 걱정없이 누리는 세상’을 목표로 삼은 통신비 부담 완화 공약을 내놨다. 문 후보 공약과 달리 실효성 논란만 일고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처럼, 가입자 쪽에서는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이동통신 사업자 쪽에서는 그만큼 매출 감소가 예상되는 파격적인 사안을 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후보 자신도 “기업과 산업의 현실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게 아닌, 민간 중심의 현실성 있는 대책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에 대해 “요즘 이동전화 요금제에는 ‘기본료’란 항목이 없다. 없는 걸 어찌 폐지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회사 이름조차 거론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본료는 원가를 따져 이동전화 요금을 정하던 시절 쓰던 용어일뿐 지금은 사라졌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딱하다”고 말했다. 사업자들은 이와 더불어 “문 후보의 공약대로 가입자당 월 1만1천원을 기본료로 간주해 일괄적으로 덜 받게 한다고 가정하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이 7조원 이상 사라진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 총액이 3조6천여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모두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들어 “현실적으로 실현성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한다. 알뜰폰 사업자들과 이동통신 유통점들도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문 후보 공약대로 이동전화 기본료가 폐지돼 이동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중소 유통점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이통사 마케팅비가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도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제4차 산업혁명과 5세대 이동통신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래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이런 논리로 공약 이행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증권사들의 전망도 회의적이다.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가입자당매출 3만5447원을 기준으로 월 요금 1만원씩을 인하하면 통신 3사의 순이익은 4조3927억원이 감소한다. 기본료 인하에 따른 손익 영향이 너무 크다는 점, 5세대 통신망 등 네트워크 고도화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 알뜰폰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실행이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참여연대와 녹색소비자연대 등 오랜 기간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를 해온 시민단체들은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장 실효성 있고 실현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환영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동통신 요금이 기본료, 정액요금, 초과 이용료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게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기본료 폐지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마치 이익이 그만큼 감소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고, 일부 언론이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공약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에스케이텔레콤(SKT)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케이티(KT)와 엘지유플러스(LGU+) 등 후발 사업자들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 알뜰폰과 최근 들어 빠르게 비중이 커지고 있는 사물인터넷(IoT) 가입자도 제외된다. 여기에 이통사들의 자구책까지 보태지면, 매출은 좀 줄지 몰라도 영업이익 등의 감소 폭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학계 쪽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같은 공약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통신 쪽 정책연구원을 거친 한 대학교수는 “현재 사용 중인 통신망은 이미 감가상각이 끝났거나 마무리 상태라서 이론적으로 원가가 제로(0원)에 가깝다. 통신사들이 국민 호주머니에 기대 해마다 엄청난 이익을 내면서도,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어낼 생각은 않고 배당·성과급 잔치만 확대하고 있으니 이런 공약이 나오고, 먹히는 것 아니냐. 지난 대선 때의 문 후보 공약에는 이런 파격적인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그동안 전·후방 산업 육성이란 명분을 앞세워 이동통신 사업자들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놓은 요금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도 이동전화 기본료 폐지 수준의 파격적인 요금인하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정보통신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담당해온 부처들은 그동안 전·후방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재원 마련을 명분으로 이동통신 요금이 비싸게 책정되는 것을 사실상 방조해왔다. 요금 10% 내려봤자 가입자 한명한테는 다달이 자장면 한 그릇밖에 안되지만 모아서 투자하면 산업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로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의 요금인하 요구를 가로막기까지 했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이런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둬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이동통신 보급률과 품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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