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새벽 4시17분. 할머니와 이모가 함께 숨을 거둔 죽음의 시간. 튀르키예 안타키아의 지진 생존자인 28살의 투으체 세렌 귈은 매일 새벽 이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다. “그 시간에 또 다른 재난이 닥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트라우마 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 싶지만 당장은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그에게 우선순위라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이번 지진 희생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에서 이미 5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진이 일어난 지 6일로 꼭 한달이 되지만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득하다. 여전히 많은 이재민이 임시 거처에 머무르면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의 시간은 규모 7.8 대지진이 일어났던 2월6일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귈처럼 생존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다. 가족·친지를 눈앞에서 한꺼번에 잃은 슬픔, 무너진 삶을 처음부터 다시 일으켜야 하는 상황 등이 이들을 전방위로 압박한다. 지진 당시 어머니와 함께 맨발로 겨우 몸을 피한 귈은 이웃들의 주검도 모두 목격했다. 전문가들은 많은 이들이 지진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아동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약 540만명의 어린이가 불안,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튀르키예 정부가 사회복지사를 파견하고 자원봉사자들도 있지만, 상황이 순탄하지는 않다. 자원봉사자들과 놀던 어린이들이 프로그램 도중 여진이 발생해 두려움을 느끼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IMAGE2%%] ■ “시리아 복구, 최대 10년 걸릴 것” 튀르키예 정부는 복구 ‘속도전’에 나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1년 안에 재건을 완료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미 본격적인 주택 재건 작업이 시작됐다. 150억달러(약 19조원)를 들여 아파트 20만개와 주택 7만개 등을 짓겠다는 게 튀르키예 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실제로 복구 작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엔개발계획은 이번 지진으로 많게는 2억1천만톤의 잔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규모 7.6의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 잔해가 1300만톤이었다. 이처럼 무너진 건물의 잔해도 상당할뿐더러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건물들도 기울거나 금이 가 원래 기능을 하기 어렵다.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은 튀르키예 정부가 추산한 150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250억달러(약 32조원)가 집과 기반시설 복구에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너무 급하게 재건 작업에 나설 경우 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던 집들처럼 부실한 건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이즈미트 대지진 때 튀르키예 정부는 군대의 도움을 받아 재건에 속도를 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세계은행 튀르키예 담당 국장이었던 경제학자 아자이 치베르는 북서부 이즈미트는 “튀르키예의 심장부”였지만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곳은 쿠르드족이 많이 살고 있어 군대 동원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시엔엔>(CNN)에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2003년 집권한 뒤 군부의 규모가 줄고 역할도 달라져 과거 대지진 수습의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의 외즈귀르 외즈칸 연구원은 <포린 폴리시> 기고에서 “1999년 지진 때 군부는 48시간 만에 6만5천명의 병력을 투입했지만 이번에 배치된 인력은 7500명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대 초부터 군부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자연재해 훈련이 종료됐고, 군부의 현장 의료 능력은 2016년 군부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진행한 개혁으로 의료사령부와 군병원을 포기하면서 사라졌다”며 현재 총지휘 역할을 하는 “재난위기관리청(AFAD)의 지도부는 전문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이들로 채워져 있다”고 주장했다. [%%IMAGE3%%] 수천명의 사망자가 나온 시리아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대지진 이전에 국제단체들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경 단 한곳을 통해서만 구호물자를 보낼 수 있었다. 지진 이후 유엔의 요청으로 시리아는 국경을 추가 개방하기로 했지만, 튀르키예와 비교하면 도움의 손길이 제한된 상태다.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부에선 지진 이후 구조나 복구 작업이 반군 쪽 단체로 ‘하얀 헬멧’이라 불리는 시리아민간방위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제적십자사의 캐럴라인 홀트 재난기후위기국장은 “튀르키예의 복구 작업은 2~3년 안에 끝나겠지만 시리아에서는 5년에서 1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시엔엔>에 말했다. 지난해부터 콜레라가 발생했던 시리아 북부에선 지진 이후 위생 환경이 나빠지면서 세명이 콜레라로 숨지기도 했다. ‘하얀 헬멧’은 “지진으로 기반시설과 상하수도가 심각하게 망가져 질병 발생 위험이 커졌다”고 전했다. 유럽연합 질병예방통제센터도 시리아 북부의 임시 거주지역에서 다양한 바이러스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접경 지역 ‘조용한 공존’ 깨질까 대형 참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관계에도 새로운 균열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에는 예전부터 오랜 내전과 빈곤을 피해 탈출한 시리아 난민들이 많이 정착해 있었다. 튀르키예 전역의 시리아 난민은 약 400만명으로 추정된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지역의 등록된 신분증을 가진 자국 내 시리아 난민들이 시리아와의 국경인 밥알하와 지역을 통해 일시적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있게 허용했다고 <뉴욕 타임스> 등이 지난달 23일 전했다. 시리아 상황이 더 나을 것도 없지만, 낯선 곳에서 집을 잃은 뒤 고국행을 택하는 시리아인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튀르키예는 난민들이 최대 6개월까지 시리아에서 머물다 이후 돌아올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믿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가족들과 시리아로 돌아가는 난민 유니스 알사이드는 “시리아에 가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 물론 튀르키예가 돌아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진앙 가지안테프의 남쪽에 있는 시리아와의 접경 도시 킬리스는 시리아 난민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양쪽 모두 조용한 공존을 추구해왔다. 이곳의 튀르키예인들은 난민들에 대한 적대감을 비교적 덜 드러냈고 난민 유입에 힘입어 지역도 성장했지만, 지진 이후로는 부족한 구호물자 등이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발사인 아브뒬카디르 찰르쿠슈는 “튀르키예인과 시리아인은 이웃이다. 이 마을엔 시리아 상점과 식당이 많아서 그들이 떠난다면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시리아인들이 남든 떠나든 상관없다. 이 마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MAGE4%%]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