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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90년대생의 결혼법

등록 2021-06-23 14:43수정 2021-06-24 02:37

[숨&결] 이길보라ㅣ영화감독·작가

“아이를 가질 거야. 다음 세대에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거든.”

새롬이 결혼을 선언했다. 아이를 낳으려면 꼭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꽤나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은 유전자를 찾고 고르는 일에는 시간이 걸리니 지금 연애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했다. 새롬은 그길로 예식장을 예약하고 프러포즈를 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에게 결혼 자문위원이 되어줄 것을 청했다. 마른 꽃으로 만든 부케를 높이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과 함께였다. 그 모습에는 응당 있어야 할 파트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요청을 수락했지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청첩장에 실릴 자문위원 약력과 사진, 각오 한마디를 보내달라는 말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결혼식을 하겠다는 건지 궁금했고 초조했다. 직책을 맡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얼마 후 새롬이 직접 만들었다며 웹사이트 주소 하나를 보냈다. 첫 페이지에는 자전거 헬멧을 쓴 두 사람의 사진이 박혀 있었다. 프러포즈에 성공한 것이다.

사이트는 스크롤을 내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모바일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두 명의 비혼주의자가 어떻게 만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기후위기 시대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이라는 포부가 적혀 있었다. ‘지속가능성’과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수록 이게 청첩장인지 미술관에서 열리는 행사 안내인지 헷갈렸다. 지속가능한 결혼식은 서울시가 무상 대여하는 공원에서 열리며 두 사람은 빈티지 의류를 입을 예정이다. 여기까지는 ‘스몰 웨딩’이라 부르는 작은 결혼식의 형태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식 전에 두 사람이 전세계에서 모았던 물건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을 열고, 드레스를 경매하며, 직접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거라는 대목에서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결혼식이야? 축의금을 어떻게 쓸지도 선택할 수 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두 사람의 혼수와 주거환경 개선, 아이를 위해 쓸 것 등의 항목을 선택하면 내역을 공개하고 그에 맞게 사용한다. 계좌이체는 물론 미국의 온라인 지불 시스템인 페이팔로도 지급할 수 있다.

국민의힘 새 당대표에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선출되자 기성 언론은 ‘청년’을 분석하느라 난리다. 엠제트(MZ)세대, 90년대생, 2030청년과 같은 단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과연 출생연도에 따른 세대 구분과 그에 따른 특성이라는 건 존재하는 걸까. 나는 1990년에 태어났고 새롬은 1992년에 태어났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90년대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90년대생이라 호명되지만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 말은 누군가를 대상화할 때만 적극적으로 호출된다. 또한 ‘공정을 부르짖는 청년’ 담론에 새롬과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없다.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쓰레기를 덜 배출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언론은 왜 청년을 호명하는가? 누구에게 마이크를 주고 있는가? 어떤 이들이 과다 대표되고 있는가? 그래서 이득을 얻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끝내 분석하지 못할 것을 분석하려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미안하지만 ‘청년’으로 불리는 우리는 그렇게 호명되고 분석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웃음으로, 중고로, 스탠드업 코미디로, 사랑으로, 지속가능한 결혼으로, 비혼 선언으로,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출산과 양육으로 헤쳐 나갈 것이다. 이들이 바로 새로운 물결이다. 그 물결을 기꺼이 만들겠다고 선언한 새롬의 친구이자 자문위원으로서 세상을 좀 더 그와 그의 아이를 위한 쪽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너의 선택을 지지해, 새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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