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출신 스롱 피아비는 여자 프로당구의 최강자다. 올 시즌 본격적으로 프로당구 무대에 뛰어든 그는 벌써 2승을 챙겼다. 그냥 된 것은 아니다. 프로당구협회(PBA) 관계자는 “128명의 예선 참가 프로 가운데, 파이팅 측면에서 단연 1위가 스롱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스롱 선수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빈말이 아니다. 공을 칠 때마다 간절함과 열의가 표정에서 드러난다. 올 시즌 5개 대회에서 모두 톱 5에 들어간 것은 ‘승리에 대한 배고픔’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스롱 선수는 10대 시절엔 당구를 접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국제결혼을 했고, 한국에서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재능을 발견한 늦깎이다. 캄보디아 신문 <크메르 타임스> 인터뷰를 보면, “당구를 접한 뒤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시즌 상금·랭킹 1위 스롱 선수는 소속팀과 후원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여자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이 연습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열린 대회에서는 한국어와 캄보디아어로 “나 챔피언 먹었다”는 우승 소감을 말해 감동을 자아냈다.
국내 외국인 체류자가 250만명을 넘으면서 한국도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는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이 많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이주민들도 꽤 있다. 학계에서는 다문화 시대에 스포츠가 사회 통합의 구실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주민의 경우 낯선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자기 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주류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편으로 스포츠가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스롱 선수를 보면서 캄보디아 이주민들이 갖게 될 자긍심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스롱 선수는 캄보디아와 한국 두 나라의 정상회담에 초대받고, 캄보디아 어린이를 위한 교육사업에 나서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경기에 몰입하면 민족이나 인종, 종교가 개입할 틈이 없다. 스롱 선수를 통해 다문화 시대의 ‘열린 마음’을 느껴본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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