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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기원전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에 엄청난 전염병이 돌았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전염병, ‘아테네 역병’이다. 당시 지도자가 유명한 페리클레스다. 그의 치세에 아테네는 예술, 건축, 문학, 철학 등 찬란한 문화와 함께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다. 그러나 역병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쓰러지자 철학을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위대한 정치가도 민심의 이반을 막지 못했다. 큰 재난이 닥치면 대중은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보다 희생양을 원하게 마련이다. 페리클레스는 탄핵당해 실각하고,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무릎을 꿇었으며, 결국 그리스 문명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선이 여당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온갖 분석과 전망이 난무한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는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눈여겨볼 것이 있다. 주요 패인으로 꼽히는 부동산 가격과 소상공인 지원 문제가 코로나라는 역병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차기 정부 또한 코로나 대처에 따라, 어쩌면 조기에, 성패가 갈릴 수 있다.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고 예민하기 때문이다. 오미크론은 전염력이 높은 대신 치명률이 낮다. ‘위드 코로나’로 전략을 바꾼 이유다. 사실 기존 전략을 유지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전염력이 워낙 높아 차단하기 어려운데다, 사람들이 계속되는 비상사태에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경제적 피해도 감당하기 어려울뿐더러 모든 면에서 일상 회복의 열망이 간절하다.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그간 너무 잘 막아왔다. 확진자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연일 확진자가 30만명을 넘으면서 전세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 병원체는 아르엔에이(RNA) 바이러스다. 돌연변이가 아주 쉽게 일어난다. 변종이 쉽게 생긴다는 뜻이다. 2년 조금 넘는 동안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변종만 다섯번째다. 돌연변이는 인간의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마다 일어난다. 병에 걸린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돌연변이도 많다. 알파, 델타, 오미크론 모두 당시 환자수가 가장 많았던 나라에서 생겨났다. 그렇다면 지금 변종이 출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그렇다, 우리나라다. 병원체는 진화할수록 독성이 약해진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숙주가 죽으면 병원체도 갈 곳이 없으므로, 살리는 쪽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결핵이나 홍역은 대략 1만년 전에 동물에서 인간에게 넘어왔다. 말라리아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인간을 감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공진화하며 서로 적응했지만 결핵균, 홍역바이러스, 말라리아 원충의 치명력이 약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벌써 60년간 계속 팬데믹 상태인 에이즈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은 코로나가 인간 병원체로 확고히 자리잡아 함께 사는 상황을 뜻한다. 감기나 독감처럼 항상 일정 수의 환자가 발생하며, 간혹 중한 상태에 이르더라도 치료제나 백신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함께 살 수 있다. 이를 토착병화(endemization)라 한다. 홍역, 볼거리, 풍진 등 익숙한 감염병은 모두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와 토착병이 되었다. 어떤 병원체가 토착병화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대략 150년, 짧아도 수십년이다. 코로나는? 이제 2년 되었다. 앞으로 수십년간 언제든 예측불허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새 정부의 성공을 바란다. 정부의 실패는 곧 국민의 고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지금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비상상황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질병청은 아주 잘해왔지만, 정부가 바뀌면 논공행상의 변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때가 위험하다. 다시 한번, 우리는 당분간 세계에서 변종이 발생할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다. 백신과 치료약을 비축하고, 병상을 확보하고, 감염병 진료체계를 정비하고, 국민에게 마스크와 거리두기 등 예방 조치에 대한 경각심을 유지해달라고 홍보해야 한다. 물론 상황은 좋은 쪽으로 풀릴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수습보다 예방이 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