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박용현
정치 에디터
탄핵심판 선고 날, 만약 다수의 예상대로 인용 결정이 내려지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보일지, 우리 사회에는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우리 각자의 감정은 어떻게 격동할지 궁금하다. 탄핵 절차를 통해 물러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닉슨(비록 탄핵소추된 뒤 스스로 퇴진했지만)은 어땠을까.
“그는 비록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들이 있었다고 인정하며 상처받은 이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했다.”
닉슨은 평소 “성공은 싸움에 있다”는 신념을 지닌 공격적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위해 물러난다고 밝히는 퇴임연설은 평소의 어투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체념의 결과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로서 마지막 지닌 양심과 품격을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나라가 위기 상황일 때는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그는 대외적으로 평화, 국내적으로 경제 번영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국가의 역량을 집중할 시기에 대통령과 국회의 시간과 관심을 탄핵 공방에 빼앗겨선 안되겠기에 사임한다고 밝혔다.”
한-중 간 사드 갈등, 북한의 미사일 도발, ‘절대위기’라는 경보음이 울리는 경제…. 지금의 우리도 다를 바 없다. 닉슨은 그나마 외교정책에선 성공한 대통령이었다. 단호한 반공주의자였음에도 소련·중국과의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1973년에는 지지율이 68%까지 올랐다. 초당적인 대외정책을 편 결과였다.
박근혜 정부는 국내 정치권은 물론 상대국을 설득하는 노력도 없이 일방적이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외교·안보의 실패를 불렀다. 오죽하면 최순실씨가 외교·안보 정책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겠나. 이미 신뢰를 상실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모아 안팎의 위기를 헤쳐갈 도리는 없는 일이다.
“정책적 성공과 실패는 그의 정치역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중요한 건 그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실패였다.”
강직과 청렴의 본보기로 받아들여졌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닉슨이었지만 국민이 준 권력을 남용함으로써 파국을 맞았다. 사임 직전 지지율은 24%까지 하락했다. 그의 퇴출은 지지자들에겐 애통한 일일지언정 “미국 국민 전체의 승리”였다. 닉슨의 참모나 지지자들도 그런 상식은 있었다.
“사임을 강력히 요구한 것은 그의 정적들이 아니라 친구들이었다. 사임하던 날, 참모진 사이에 슬픔은 있었지만 눈물은 없었다.”
퇴진 이틀 전까지도 버티던 닉슨에게 참모들은 사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끝까지 그를 지지한 건 아주 소수에 그쳤다. 그의 막판 지지율과 견줘보면 박 대통령에게는 더 소수의 지지자만 남은 셈이다. 다만 그들 중 일부의 유별난 행동이 탄핵심판 이후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하는 듯하다. 테러 협박, 자해 선동이 난무한다. 그렇다고 탄핵 찬반 집회를 막아버리자는 발상은 안된다.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는 우리가 지키려는 헌법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표현 방식을 어디까지 감내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풀어가면 된다.
탄핵심판도, 이후 벌어질 정치적 격동도 헌법이 예정해놓은 정상적 과정이다. 거기에 과거회귀의 파괴성을 담을 것이냐, 새로운 미래의 모색을 담을 것이냐가 문제일 뿐이다. 탄핵심판 선고 날, 떠들썩한 하루는 격정과 성찰이 뒤엉켰다 저물고 또 다른 하루로 이어질 것이다. 닉슨의 심정도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비통함 대신, 자신이 물러남으로써 미국 사회에 그토록 절실한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떠났다.”
*인용한 부분은 <뉴욕 타임스> 1974년 8월9일치 기사와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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