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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선출된 허상수 ‘재경 제주4·3 희생자 및 피해자 유족회’ 공동대표를 대통령실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억지스러운 법 적용으로 탈락시키려 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가공무원법상 결격 사유를 들어 허 대표를 임명에서 배제하겠다고 조만간 국회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내세우는 논리는 합리적인 법 해석과 상식에 배치된다.

허 대표는 1980년 중앙국제법률특허사무소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다 군사정권 시절 악법인 국가보위법 위반으로 기소돼 1983년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됐다. 이후 국가보위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정됐고, 허 대표는 재심을 청구해 2021년 8월 국가보위법 위반 부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허 대표가 해고된 뒤 사무실에 개인 물건을 가지러 간 것을 건조물 침입으로 기소하는 등 일반 형법을 적용한 부분은 재심 사유가 되지 않았다. 법원은 유죄를 유지하되 형량을 선고유예로 낮췄다.

대통령실은 이 선고유예를 꼬투리 잡아 허 대표가 ‘선고유예 기간(선고일로부터 2년간) 중에는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는 국가공무원법상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심에서 나온 선고는 새로운 죄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선고를 대체하는 데 불과하다. 예를 들어 과거에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는데 재심에서 징역 1년으로 형량이 낮춰진 경우 이 징역 1년은 과거에 복역한 10년 안에 포함되므로 당연히 새로 집행되지 않는다. 나머지 9년의 복역이 부당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의미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허 대표는 이번 재심으로 40년 전에 집행유예 대신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셈이 된다. 선고유예 기간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으니 공무원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과거의 부당한 처벌을 바로잡기 위한 재심 제도를 당사자에게 새로운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를 뿐 아니라 위헌적인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더구나 과거의 국가폭력을 규명하고 피해자를 신원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인 진실화해위 인사 과정에서 군사정권 시절 악법의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행태야말로 법을 이용해 농간을 부리는 ‘법 기술’이 아니고 뭔가. 야당 추천 진실화해위원을 배척하기 위해 꼼수를 쓴다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은 허 대표를 지체 없이 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