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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외교에 대한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한국갤럽이 2023년 3월24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에 대한 직무 긍정 평가는 34%, 부정 평가는 58%로 나타났다.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3월21일부터 23일까지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다. 부정 평가 이유는 ‘일본 관계/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외교’가 각각 23%, 25%를 차지했다. 부정 평가자 가운데 48%가 이번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실망했다고 한 셈이다.

반면 대통령실은 “방일 외교는 커다란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호텔과 공항 등에서 일본 시민들의 박수를 받는 등 이 정도면 일본인의 마음을 얻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그런 분위기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3월18∼19일 일본 유권자 1304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 의견이 63%로 부정 의견(21%)을 크게 웃돌았다. 기시다 후미오 내각 지지율 또한 2월 조사보다 5%포인트 오른 40%로 집계됐다.[%%IMAGE2%%]

그가 외국만 갔다 오면 불안해진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일본이 원했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을 확인해주고, 오므라이스를 잘 먹고 왔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환대한 일본은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독도 문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2018년 해상자위대 초계기 갈등 등 청구서를 계속 찌르고 있다. ‘굴욕 외교’ 비판이 쏟아지자, 윤 대통령은 3월21일 국무회의 발언을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해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며 이를 ‘정치 공세’로 몰아붙였다. 평소 짧은 연설을 즐겨 하는 윤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7500자 분량의 연설문을 23분 동안 읽었다.

대통령이 외국에만 나갔다 오면 지지율이 흔들리는 외교. ‘미래’를 향한 결단이라고 주장하지만 ‘퍼주기 논란’에 휩싸인 외교. 대한민국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최종건(49) 전 외교부 차관을 3월20일 만나 1시간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최 전 차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평화군비통제비서관·평화기획비서관을 지냈고, 2020년 8월14일 외교부 1차관에 임명돼 남북문제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에 깊숙이 관여했다. 학교(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돌아간 그의 연구실엔 ‘Peace, Please’(제발, 평화)라고 쓰인 액자가 놓여 있었다. 그는 최근 상황이 평화롭지 않아 괴롭다고 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미숙한 모습만 보이는 한국 외교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이 원하는 ‘대승적 결단’을 한 것에 ‘도대체 왜 그랬을까’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이성적으로 설명한다면 미국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 정부 사람들이 한·미·일 협력을 하고 싶다 혹은 한·일 협력 레벨을 한층 더 올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일본의 주장이 정말 타당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즉 1965년 대일 청구권 합의로 끝난 것인데 (2018년)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을 어겼다고 믿는 것이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의 주장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서 그것이 묻어난다.”

‘대통령 입으로 말해보라’는 외교적 모욕

-윤 대통령이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사이에 “모순되거나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며 일본 쪽 논리를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대법원이 낸 판결을 한-일 관계의 걸림돌이라고 인정해버린 거다. 그걸 받은 일본 총리는 윤석열 정부의 해법으로 양국 관계가 건전한 관계가 됐다고 했다. 그럼 그동안은 불건전한 관계였나. 그리고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이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 문제가 아직 남아 있지 않냐’였다. 이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구상권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다시 한번 현장 중계할 테니 한국 대통령 입으로 얘기해보라 한 거다.”

-우리나라 외교사에 모욕적인 장면이라 볼 수 있겠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래서 괴롭다.”

‘이번 외교에서 우리가 얻은 건 없냐’는 질문에 최종건 전 차관은 벌떡 일어나 벗어둔 재킷에 있던 종이를 찾았다. 그가 3월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공동기자회견을 보며 적은 메모였다. 최 전 차관이 보여준 ‘스코어 보드’ 메모를 보면, 한국이 얻은 것은 ‘반도체 수출 규제 철회’ 하나였다. 일본 밑에 적어둔 점수는 여러 개였다.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철회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구상권 청구 없다는 윤 대통령의 구두 공약 △납북자 문제 협조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 △독도 관련 발언. 최 전 차관은 “공동선언이 없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미국의 압박이 이유일 수도 있다고 했다. 중국을 견제한다는 목적으로 한·일 협력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건가.

“우리 때도 그랬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이에 대해) ‘알았다’였다. 우리는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 과거사 문제는 이른바 투 트랙으로 대응했다. 그런데 일본은 과거사 문제 때문에 안 된다며 원 트랙을 주장했다. 우리는 피해국이고 인권에 관한 문제이고 대법원 판결이 난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원칙인 삼권분립을 거스를 수 있냐고 (미국에) 말했다.”

전 정부 때도 미국 압박 버텼다

-미국은 이해했나.

“이런저런 협상과 협의를 일본 정부와 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과 늘 공유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3년, 이후 조 바이든 정부 2년일 때였다. 트럼프 정부 때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있어서 이것은 큰 이슈가 아니었다. 바이든 정부는 아무래도 한·미·일 협력을 상당히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래서 한·미·일 외교차관 회담, 안보실장 회담, 외교장관 회담에 응했다.”

-미국의 압박이 우리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야 할 상황은 아니라는 건가.

“버텨야 했다. 버텼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 우리 때문에 한·미·일 협력이 안 이뤄진다는 생각에 동의한 것처럼 행동하나.”

-이번 지소미아 정상화가 한-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종국에는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으로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것은 좀 두고 봐야 한다. 일본은 평화헌법과 전수방위 체계에 있기 때문에 수동적이거나 반사적 군사활동밖에 할 수 없다. 한·미·일이 합동훈련을 더 적극적으로 하려면 내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미온적이거나 반대 입장이던 한국이 괜찮다고 하면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에 더 힘을 실을 수 있게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은 늘 한-미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한다. 한-미 연합훈련을 할 때 한국전쟁 참전국인 유엔사 회원국만 참관한다. 일본도 자국이 유엔사 후방기지를 가진 나라라고 주장하며 유엔사에 참여하고 싶다거나 연합훈련을 참관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결국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던 건가.

“그렇다. 자기들도 지분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확인한 ‘제3자 변제안’은 일본 전범기업의 사과가 없는, 한국 피해자들이 지난한 소송으로 얻어낸 것을 무력화하는 해법이었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런 과정에 대해 “우리가 이렇게 결정하려 한다고 했을 때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본이)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이라고 일본 정부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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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권리는 투쟁으로 획득한 것

-김태효 1차장이 ‘한-일 관계를 이렇게 방치해서 어떻게 할 거냐’고 ‘제3자 변제안’이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동안 한-일 관계가 방치됐다는 현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외교라인은 한-일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여러 물밑 협상과 협의를 했다. 더군다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건으로 대한민국에 보복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은 국내 정치상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더욱 경직돼 우리 쪽의 절충안을 거부했다. 그들의 협상안이 사실상 윤 정부의 해법이다. 일본을 탓해야지 왜 전 정부를 탓하는가.”

-우리가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방안은 대법원 판결을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이 따르는 것인가.

“가장 이상적인 안은 대법원 판결의 원안을 피고들이 충실히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일본 기업이었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을 경우 자산을 현금화하는 조치로 이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외교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일 관계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테니 절충안을 만드는 것, 절충안의 기본 골격은 대법원 판단의 골자와 취지를 이행하면 되는 것이다. 즉 전범기업의 참여와 사과가 있는 형태의 배상 조치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전제는 우리 원고 쪽 피해자분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들의 법적 권리는 오랜 법적 투쟁으로 획득한 것이기 때문에 행정부가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 뒤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의 행동에) 호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강조했다. 뒤늦게 ‘왜 안 해줘’ 요구하는 외교로 보였다.

“미숙하다. 또 (정상외교) 출발 전에 과도한 메시지를 늘 냈기 때문에 돌아와서 수습해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행태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해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본을 방문해야 하는 중요성이 있다면 매우 드라이한 일정을 가졌어야 한다. 도착해서 회담하고 만찬하고 (한국으로) 컴백했어야 한다. 국민이 이 해법과 한-일 관계에 대해 분노하는 상황에서 1차, 2차 만찬을 하고 건배할 필요가 있었을까.”

윤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뒤 기시다 총리로부터 2023년 5월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회의에 초대받았다. 4월 말에는 미국을 국빈 방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미국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를 수출하는 것을 막는 데 이어 ‘반도체법’을 통해 사실상 중국에 신규 투자를 하는 것도 봉쇄했다. 중국에 수십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만든 삼성과 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에 사실상 ‘중국이냐 미국이냐’ 선택하라고 한 셈이다.

스스로 프레임 만들어 선택하려는

-한·미·일과 중국 가운데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하는,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고 진영 보호무역 시대로 간다고 볼 수 있나.

“정확한 용어는 미국발 선별적 진영이다. 거기에 우리가 가장 적합한 대상자로 등장했다. 전세계에서 4대 핵심 품목을 생산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자동차에 이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바이오까지 4대 핵심 품목이 됐다. 지금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1천조에 육박하는 돈을 들여 하고 싶은 건 4대 품목을 자기 나라 산업 생태계에 안착시키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도체 기업에) 영업비밀을 까라, 중국에 투자하지 말라 하는 건 상당히 곤란하다. 두 번째는 중국이 우리에게 공급하는 필수 원자재가 많다. 30대 핵심 원자재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가 82%다. 상위 10개 품목은 90%가 넘는다. 이미 (중국에서 수입이 끊어지는 바람에 겪은) 요소수 문제도 있었지만, 이 부분도 큰일 날 문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프레임은 틀렸다.”

-어느 한쪽 손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우리가 스스로 프레임을 구축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겠나. 담론은 담론인데 현실 세계는 다르다. 대한민국 외교정책은 중산층 이익을 대변하고 확대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우선해 그들(중산층)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그들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외교정책은 말이 안 된다.”

-미국이 선택하라고 하지 않나.

“미국은 우리한테 선택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건 확실히 내가 경험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 국내 담론이고 미국 전문가들 담론이지, (외교) 현장에서는 중국이냐 미국이냐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얻는 한국의) 경제적 이익 구조를 이해한다고 이야기한다.”

-윤석열 정부가 일본 과거사 문제 등을 이렇게 봉합하고 달려가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교적 행위는 국민의 이익과 절연되면 지속가능성이 없다. 또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외교 활동은 오히려 상대국에 악용당한다. 결국은 국민 외교가 중요하다. ‘우리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때문에 이거는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외교가 가장 정상적인 외교이고, 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한다. 대승적 결단으로 이번에 내가 양보했으니 너희의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는 건 매우 프로답지 않은, 이익에 기반한 양국 관계가 마치 (상대방의 호의에 기대는) 인간관계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외교는 선수들의 게임이다.”

이완 <한겨레>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