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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23년 11월27일 소집됐다. 한·미·일이 비난 대열의 맨 앞에 섰고, 북·중·러가 반박하려 줄을 맞췄다. 비난과 반박, 재비난과 재반박이 이어졌다. 이날 회의에서 안보리는 아무 결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의 안보리 결의 위반을 제어할 국제사회의 ‘브레이크’가 더는 작동하지 않음이 새삼 분명해졌다.

■ 러시아, 북이 아닌 남 겨냥해 비판

그럼에도 11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인 중국과 최근 북한과 군사·안보 분야 협력을 대폭 강화한 러시아 쪽 반응은 눈겨여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일본만 곁에 두고는, 한반도 정세가 다시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때 한국이 움직일 외교 공간을 확보할 수 없어서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외교’에 시동을 걸려면 중·러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날 회의에서 겅솽 주유엔 중국 차석대사는 “어떤 국가도 자국 안보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안보를 침해해선 안 된다. 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는 안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쪽은 2017년 한반도가 ‘전쟁위기설’에 휩싸였을 때 내걸었던 ‘쌍궤병진’(비핵화·평화협상 동시 진행)을 최근 다시 강조하고 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 정부가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을 일부 중단시킨 것에 “북한의 대응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관 당사국은 대규모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이 아닌 남을 겨냥한 비판인 셈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비교적 일관적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미·일 편향 외교가 고착화하면서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섣부르게 내세운 ‘가치외교’가 중·러 양국을 ‘적’으로 내몰고 있어서다. 다자외교 무대는 외교적 난맥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11월15~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되짚어보자.

대통령실 발표를 종합하면,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찾은 윤 대통령은 회의 기간에 모두 세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11월16일 오전에 한-칠레·한-일 회담이, 오후엔 한-페루 회담이 각각 열렸다. 한-중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3분간 조우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함께 10분간 약식으로 만나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눴다.

■ 중-일 “중동, 우크라이나, 북한 문제도 논의”

바이든 대통령은 어땠을까? 그는 11월15일 시 주석과 오찬을 겸해 4시간가량 회담했다. 이튿날 오전엔 기시다 총리와 15분간 만났다. 이어 17일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 없이 따로 만난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백악관 쪽은 11월16일 보도자료를 내어 “세계와 지역 안보 문제, 양자 안보와 경제협력 진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며 “대만해협, 한반도, 동·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했고 각자의 대중국 외교정책과 관련해 긴밀한 논의와 공조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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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도 같은 날 내놓은 자료에서 “기시다 총리는 가자지구 등 중동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중국·북한 등 인도태평양 문제와 관련해 양국 간 협의가 갈수록 중요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두 정상은 전날(11월15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 관련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긴밀한 협력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한국과는 다른 예우다.

시 주석도 바삐 움직였다. 11월15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16일 오전엔 멕시코·페루·피지 정상과 만났다. 같은 날 오후엔 브루나이·일본과도 정상회담을 했다. 특히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문제로 정면충돌하는 상황임에도 중-일 정상회담이 65분간 진행된 게 눈길을 끈다.

중국 외교부 자료를 종합하면,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역사와 대만 등 중요한 원칙적 문제는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초와 관련됐다. 일본 쪽은 반드시 신의를 지키고, 중-일 관계의 기초가 손상되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방류는 인류의 건강, 세계의 해양환경, 국제적 공공이익과 직결됐다. 일본 쪽은 국내외의 합리적 우려를 엄중하게 여기고, 책임 있고 건설적인 태도로 적절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외무성 쪽은 “두 정상은 공통의 전략적 이해에 기반한 호혜적 관계를 포괄적으로 촉진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 주석과 기시다 총리가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 현안과 함께 북한 문제도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백악관 쪽도 11월15일 낸 자료에서 미-중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도 논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이 배제된 채, 미·중·일이 한반도 문제를 논의한 꼴이다.

■ 강제동원 이어 ‘위안부’ 피해자 배상도 정부가?

심상찮은 분위기는 11월26일 부산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 때도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 쪽은 한국의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난 왕이 외교부장이 “양국 관계가 좋으면 양쪽에 이익이 되고, 그 반대면 양쪽에 손해다. 경제를 정치화하고, 과학기술을 압박 수단으로 삼고, 무역을 안보와 결부하는 경향에 공통으로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편향외교’에 대한 경고다.

2023년 3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책임을 한국 정부가 사실상 떠안으며 회복된 한-일 관계도 다시 삐걱댄다. 같은 날 박 장관을 만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판결(11월23일)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 항의했다. 이에 박 장관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존중한다”고 답했단다. 강제동원에 이어 ‘위안부’ 피해자 배상 책임도 정부가 질 텐가? ‘글로벌 중추국가’를 내세운 윤석열식 외교가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