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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 문을 세차례 두드린 끝에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을 받아냈다.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할 때 증거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는 한 장관 특유의 방식은 유지됐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이 계속되지만 한 장관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피의사실 공표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되어 있다.
한 장관은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하 의원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7천만원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하 의원 목소리가 그대로 녹음된 녹음파일, 쇼핑백을 든 채 브로커와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서는 모습이 찍힌 영상 등이 있다”고 말했다. 하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취지의 증거 내용을 낱낱이 공개한 것이다. 하 의원은 공천 대가로 1억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다. 체포동의안은 찬성 160표, 반대 99표, 기권 22표로 통과됐다.
증거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세세히 설명하는 한 장관식 제안 설명은 이미 한 차례 ‘피의사실공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할 때 한 장관은 “(노 의원이 돈을 받을 때) 돈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한 장관은 “체포동의안 내용에 들어 있는 구속영장 사유에 그 내용이 대부분 기재돼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회에 낸 체포동의안 어디에도 ‘돈 봉투 부스럭’ 등의 내용은 없었다. 당시 상황이 녹음된 파일이 있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었을 뿐이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할 때는 세부적인 증거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장관은 수사업무를 감독하는 자이기 때문에 한 장관의 행위는 피의사실 공표죄에 해당할 수 있다. 남은 쟁점은 위법성이 조각되느냐 여부다. 즉 형식상 불법 행위일 수 있지만 위법행위는 아니라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이 남은 쟁점이다. 이 경우 한 장관의 행위가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에 해당하면 피의사실공표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법무부는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표결의 근거자료로서 범죄혐의와 증거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국회법 제93조에 따른 법무부장관의 당연한 임무”라는 입장이다. 위법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도 “선입견을 주는 것은 문제지만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피의사실공표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문제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구체적 증거 관계 등을 밝힌 한 장관의 발언은 원칙적으로 피의사실공표죄 요건에 부합한다”며 “공표 목적의 공익성 등 위법성 조각 사유는 법무부가 밝혀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도 “법무부 장관이 기본적인 혐의와 구속 필요성을 설명하는 정도를 넘어 자세한 증거 내용까지 설명하는 게 국회법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라며 “피의사실공표의 위험성이 있는 건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반하는 처사”라고 짚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행위가 허용되기 위한 요건을 따져본 판결에서 “공표 목적의 공익성, 공표의 필요성, 공표된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공표의 절차와 형식, 표현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야 한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표현 방법에 대하여도 유념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밝힌 바 있다.
한 장관은 전날 하 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뒤 기자들을 만나 “최근 3번의 체포동의안 설명을 똑같은 기준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에는 “증거자료 없이 어떻게 체포동의 여부를 판단하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의사실공표’ 선을 넘나드는 한 장관의 설명 방식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