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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탁금을 받을 생각이 전혀 없고 (형량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강남 스쿨존 사고’로 아들을 잃은 ㄱ씨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가 가해자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하자 이렇게 말했다.

ㄱ씨는 가해자가 1심 선고 2주 전 납부한 공탁금 3억5천만원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이) 3억5천만원을 공탁한 점, 암 투병 중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가해자에겐 최대 45년형까지 선고가 가능했다.
#2. 무등록 마사지 업체 직원 ㄴ씨는 사장으로부터 “불법 마사지업소에서 일한다고 소문내겠다”는 협박을 당하며 2016년부터 1년3개월 동안 300차례 넘게 성폭행을 당했다. 1심 재판부는 사장에게 징역 7년형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징역 4년으로 감형했다. 사장이 낸 공탁금 4천만원이 “피해 회복을 위해 한 노력”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공탁’이 꼼수 감경 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전·유가증권 등을 국가기관에 맡기는 행위를 뜻하는 공탁은 빚을 갚고 싶은데 채권자가 행방불명인 경우 등일 때 ‘빚을 갚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데 활용되던 제도다.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피해 회복에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데 활용한다. 지난해 12월 피해자 인적 정보를 몰라도 피고인이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피고인들의 감경 방안으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용서하지 않았는데도 감경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판사들은 공탁을 감경 요소로 본다. ‘실질적 피해 회복’에 노력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성범죄·살인 등 재산피해가 아닌 범죄에서도 피고인의 공탁이 재판에서 유리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피해자 인적 사항을 몰라도 공탁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됐다. 법원통계월보를 보면, 개정 공탁법 시행 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피고인이 공탁금을 납부한 사건은 6만389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1324건)보다 늘었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공탁금이 피해 보전 의미가 있기 때문에 판사가 유리한 요소로 참작을 안 하기도 모호하다”면서도 “성범죄나 폭력범죄는 재산범죄와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젠더법연구회 소속의 한 판사는 “사건의 성격,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는 이유 등 공탁금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판결문에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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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공탁이 ‘손쉬운 감경 팁’으로 악용되자 피해자들은 공탁금을 받지 않겠으니 되찾아가라는 ‘공탁금회수동의서’까지 제출하며 감경에 맞서고 있다.

성범죄 수사 관련 정보 공유 카페에선 ‘공탁금회수동의서’ 양식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공탁’ 제도 자체가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 법원에 돈을 납부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부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이 회수 거부 의사를 밝히지도 못하도록 선고 직전에 이른바 ‘기습공탁’을 하기도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2일 논평을 내어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2차 피해 방지와 피해 회복이 형사공탁특례제도의 목표라면, ‘기습 공탁’ 시 선고를 연기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과 같이 피해자의 의사를 살피고 반대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채윤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