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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해 업종별로 세면·목욕 시설이나 화장실 설치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 규정 없는 ‘권고’에 머문 지침이라, 건설 현장 등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고용노동부가 2019년 발표한 ‘사업장 세면·목욕시설 및 화장실 설치·운영 가이드’(가이드라인)를 보면, 건설·청소 등 야외 사업장은 세면·목욕 시설을 갖추고 비누·샴푸 등을 구비해야 하며, 사용 빈도에 따라 청소를 실시해야 한다. 화장실은 이동거리 300m 이내에 설치해야 하고, 변기는 하루 1회 이상 청소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온종일 흙먼지 등을 뒤집어쓰는 건설 현장은 별도의 세면·목욕 시설이 필요한 대표적인 사업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신축 아파트 천장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쓴 인분 봉투가 발견돼 논란이 된 것처럼 건설 현장에선 용변을 볼 화장실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있는데, 노동자들은 목욕 시설은 ‘꿈같은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2일 한겨레와 만난 4년차 배관공 김재근(37)씨는 “화장실 만드는 일을 하지만, 정작 건설 현장에서 여태껏 제대로 된 화장실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장 최근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기도의 366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김씨는 “노동자 200여명이 일을 하는데 간이 화장실은 2곳밖에 없었고, 상수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바로 앞 한강에서 끌어온 오염된 물을 썼다”고 했다. 냄새 나는 갈색물을 본 김씨는 도저히 씻을 엄두가 나지 않아, 점심시간 때마다 인근 식당에서 화장실을 겨우 이용했다.

그는 “엄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직장이지 않나. 손도 제대로 못 씻고 용변도 못 보는 현실 속에서 항상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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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권리’는 하청업체 소속일수록, 여성 노동자일수록 더 멀리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해체한 거푸집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는 하청업체 소속 여성 노동자 김은희(52)씨가 그런 경우다.

김씨가 일하는 현장에는 간이 여성 화장실이 3곳 있지만, 2곳은 아예 물이 나오지 않고 1곳 역시 더러운 물이 나와 손조차 씻을 수 없다. 김씨는 집에서 챙겨온 물티슈를 이용해 손과 얼굴을 닦는다.

실제 7월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자체 실시한 공공기관 건설 현장 대상 ‘폭염기 건설 현장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전용 화장실이 없는 곳은 전체 14곳 중 4곳이었고, 샤워실이 없는 곳은 14곳 중 13곳이었다.

김씨는 원청 소속 관리자 직원들이 쓰는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려 했지만 그마저 가로막혔다고 했다. 김씨는 “원청 직원이 ‘여기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쓸 수 없었다”며 “여성 노동자들 대부분 방광염, 오줌소태 같은 병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직고용 관계에 있지 않은 노동자도 세척 시설이나 화장실 시설을 함께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문장은 가이드라인에 적힌 ‘이상’일 뿐이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