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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25일 취임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24일로 마무리됐다. 대법원장과 대통령 간 ‘재판 거래’라는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직후 취임한 그의 앞에는 사법부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놓여 있었다. “사법농단의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들의 해결책은 다 내놨다”(김명수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했던 전직 판사)는 평가는 대체로 수긍할 만하다. 하지만 새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에서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재판 지연’ 등 사법부 내 해묵은 과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대법원장 권한 분산

‘김명수 대법원’은 취임 직후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는 조처를 잇따라 시행했다. 대법원장의 강력한 인사권과 사법행정권이 판사들을 통제하는 데 쓰이고, 이것이 사법농단의 배경이 됐다는 진단에서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2020년)가 대표적이다. 과거 판사들은 임용 뒤 지방법원 배석판사·부장판사 등을 거쳐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로 승진하는 피라미드형 인사구조 안에 놓여 있었다. 고법 부장판사 자리는 소수였고, ‘승진’을 빌미로 판사들을 순치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고법 부장판사가 맡던 지방법원장 자리도 판사들이 추천한 후보군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2019년)로 바뀌었다. 2019년 대구·의정부지법에서 시범 실시해 올해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확대됐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지방법원장들이 자신을 임명했고, 자신을 대법관으로 제청할 권한도 가진 대법원장의 요구를 일선 판사들에게 전달하던 흐름을 김 대법원장이 끊었다”고 평가했다.

기존에는 법원장과 수석부장이 도맡았던 사무 분담 결정 과정에 일선 판사들을 참여시키기도 했다. 사무 분담이란 판사들을 영장전담·형사부·민사부 등 각 분야 재판에 배치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주로 맡는 영장전담 판사나 형사합의부 재판장 자리에 법원장이 선호하는 판사를 앉혀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재판과 행정의 분리’ 원칙에 따라 김명수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 수도 대폭 줄였다. 법원행정처 상근 판사는 2018년 33명에서 2023년 12명으로 대폭 줄었다. 사법농단 사태에서 법원행정처 판사를 통한 각종 개입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뤄진 조처다.

사법행정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견제기구인 사법행정자문회의도 만들었다. 외부위원이 포함되고, 회의록도 공개한다. 다만 대법원장이 부의하는 사항만 논의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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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묵은 과제엔 손 못 대

상대적으로 법원 내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많다. ‘재판 지연’ 문제가 대표적이다. 재판 기간이 2년을 초과하는 장기 미제 사건이 2017년에 견줘 2021년 민사(합의부 1심 기준)는 109.4%, 형사는 84.7% 늘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김명수 대법원 시절 시행된 일련의 ‘개혁’ 조처들이 일선 판사들의 자율성을 확대했고, 이 때문에 판사들이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라는 인센티브를 없애 열심히 일할 동기를 없앴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일선 판사들은 ‘과거보다 사건이 대폭 늘었고, 사건 구조도 복잡해졌다’며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예영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8월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토론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이 내놓은 일련의 조처들은) 비록 향후 보완이 필요하더라도 독립된 사법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며 “재판 지연 등 법원에 산적한 문제들이 사법의 본질에 맞지 않는 수직적 관료 시스템으로 퇴행하는 것으로 해결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개인으로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결정적 오점은 사법농단 핵심 인물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표 수리 관련 ‘거짓말’이다. 이 사건으로 김명수 대법원이 추진해오던 각종 개혁 조처들이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임 부장판사에게 “지금 탄핵하자고 (국회가) 저렇게 설치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고 말하며 반려했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 처분(견책)으로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상황에서, 김 대법원장은 탄핵 논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사표 수리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자체는 적절한 판단이라 볼 수 있지만, 문제는 그가 해당 발언 자체를 부인했다는 점이다. 나중에 녹취록이 공개돼 거짓말로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김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그를 수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그가 추진한 개혁을 야당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빌미를 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