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이달 10일 서울 송파구에서 성폭력 신고 뒤 신변보호를 받던 피해자의 어머니가 피신고자인 이석준(25)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에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 끝에 김병찬(35)씨의 손에 살해당한 지 22일 만이다. 피해자가 신변보호 당사자였는지, 그 가족이었는지가 다를 뿐, 두 사건은 모두 여성에 대한 보복 범죄였다.

피해 발생→혐의자 귀가 조치→보복 살인. 패턴이다. 두 사건에서 경찰은 가해자를 대면했는데도 별도의 조치 없이 이들을 귀가시켰다. 경찰은 가해자를 ‘입건’하지도,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도 않았다. 사건이 수일 방치된 사이 가해자는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이 가해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아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법 절차를 따랐다”고 말한다. 지난 13일 신변보호자 가족 살해 사건과 관련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은 “가해자의 범행을 현장에서 목격한 게 아니어서 현행범 체포가 불가능했고, 가해자가 경찰의 요구(휴대전화 제출, 임의동행 등)에 순순히 응해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형사소송법을 보면 틀린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발생한 신변보호자 살해 사건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경찰은 한 말은 달랐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해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임의동행을) 거부하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피해자 보호에 주력했다”고 답변했다. 정리하면, 가해자가 임의동행에 응했다는 이유로, 동시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신병 확보를 하지 않았던 셈이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 우려가 있을 때 긴급체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이 법을 각기 다른 사건에 적용하고 내린 결론은 모두 ‘귀가 조치’였다.

‘입건’도 마찬가지다. 입건은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 수사를 개시하는 절차다. 이달 신변보호자 가족 살해 사건의 경우, 경찰이 피해자 얼굴에 든 멍을 직접 목격하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들었는데도 입건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6차례(사건 당일 포함) 신고했는데도 가해자는 입건되지 않았다. 경찰은 신변보호자 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지 못해서 입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설명에 비춰보면, 피의자신문조서는 입건에 필수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반드시 피의자신문조서가 있어야만 입건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범죄 혐의를 인지하면 먼저 입건부터 하고 피의자·피해자 조사를 진행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서울경찰청은 스토킹범죄 대응개선 티에프(TF) 회의에서 피해자의 신고 내용 등을 바탕으로 피신고자에게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이면 피해자 조사 전이라도 바로 입건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입건이 됐다고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상당한 범죄 의도와 정황이 읽히는데도 입건하지 않은 점은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입건은 수사를 개시한다는 행정 절차다. 절차보다 긴급한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사를 했는지 여부일 것”이라며 “(신변보호자 가족 살해 사건 전) 실질적으로 4개 경찰서가 공조수사를 하고, 신변보호도 하지 않았느냐. 입건 여부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입건’은 경찰이 인지 보고서를 쓰는 절차로, 이 여부만으로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조치가 적절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입건을 하지 않은 경찰의 판단을 두고 다른 지적도 여럿 나온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사법대학)는 “일선 경찰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입건되면 사건번호가 정식으로 부여되고 혐의자도 피의자로 전환된다. 이는 평생 가해자나 피해자 입장이 되어보는 경우가 드문 일반인에게는 상당히 무겁게 다가올 것”이라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입건되면 혐의자에게 피의자로 전환됐다고 통보하는데, 이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범죄 심각성을 인지하는 가해자도 많다는 의견이 있었다.

피해자에게도 입건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입건이 돼 사건번호가 부여됐다는 의미는 경찰 개인이 임의로 수사를 종결할 수 없고, 정식으로 수사해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하는 것으로 사건 성격이 변화했다는 것”이라며 “20년 넘게 피해자 곁에서 지원 활동을 해왔는데, 젠더 폭력의 경우 입건은 이례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드물다”고 했다. 송 대표는 이어 “경찰이 피해자의 단 한 번의 신고라도 사소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 전에 다수의 사전 범죄 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