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안녕하세요. 저는 최근에 제대를 한 23살 대학생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미치도록 좋은 감정이 들어요. 1살 많은 같은 과 누나에게서 5월 초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전 군인이었지만, 말년 휴가를 나와 있어서 만났어요. 그 뒤 4번 정도 더 만났고요. 저는 이 사람이 정말 좋아졌기에 만날 때마다 잘 챙겨줬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호감이 있다는 확신을 느끼지 못했어요. 메시지 보내면 보통 답장이 서너 시간 뒤 오곤 했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먼저 ‘주말에 뭐 하냐’ ‘영화 보러 가자’라며 연락이 와요. 저는 굉장히 헷갈렸고, 자존감이 낮아서 '이 누나가 나한테 호감이 있을까, 하긴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2주 전 밤 9시에 함께 영화를 보고, 새벽 4시까지 집 앞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서로 가정사, 미래, 성 평등 문제 등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 누나는 평소 생각이 깊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 했기에 제 생각들을 다 말했어요. 그런데 그 뒤 저를 멀리하는 게 느껴집니다. 메시지 속 말투도 바뀌었고요. 당연히 만나는 건 어렵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사람이 너무 좋고, 모든 일에 집중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제게 호감이 있는데 자신감이 없어서 붙잡았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친 건가요? 어떻게 하면 다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그녀를 붙잡고 싶은 남자
A1 미치도록 좋은 감정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이제 당신을 만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니 정말 상심이 크시겠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당신이 그녀에게 호감이라는 감정을 갖고 ‘만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 인간인 것과 같은 이치로, 당신이 좋아하는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잠깐 호기심을 가졌지만 조금 더 알아가다 보니 그 감정을 접고 ‘더는 만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이른바 ‘썸’이라는 단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 뭐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모든 단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요. 평생을 걸고 결혼을 했어도 한 사람은 그 관계를 끝내고 싶어하고 다른 한 사람은 유지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자꾸 ‘왜일까’를 고민하진 마세요. 그저 시간을 초반으로 돌려, 당신의 느낌을 잘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은 당신에게 먼저 연락해왔고 어느 정도의 호기심과 관심을 표현하긴 했지만,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느낌만은 주지 않았죠. 그 사람은 어쩌면 좀 외로웠을 수도 있고, 제대를 앞둔 당신과 좀 만나보고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 동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딱 거기까지였던 거죠. 살짝 관심은 있었지만 한 발 더 진전시키고 싶은 생각은 사라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느낄 수가 없었던 거죠. 호감이 있다는 확신을요. 여자는 그저 기다리고 눈치 보고 자신감 있게 다가와 주길 기다리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티를 내고, 고백도 합니다. 당신의 ‘그 누나’도 마찬가지였죠. 호감을 표현하려 데이트 신청도 먼저 했잖아요? 데이트 몇 번을 하고 나서도 당신이 좋았다면 당신에게 진지하게 사귀자고 했겠죠. 아쉽지만 당신은 그냥 그녀의 호감 리스트에 잠시 올랐다가 삭제된 것일 뿐입니다.
자존감이 높다는 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할 거라고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의 맘에 들지 않고 거절을 당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에 가깝죠. 나도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다 그 호감을 접을 수 있듯, 그 사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지시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호감이란 상대방을 조금 알고 나면 사라지는 경우가 아주 많으며, 둘 사이에 ‘회복될 관계’라는 건 애초에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는 걸 말씀드려야 할 것 같네요. 기억하세요, 모든 관계에서 나의 지분은 딱 50%뿐이라는 것을.
Q2 저는 혼자 관계에 마음 쏟고,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동안 저와 성격이 잘 맞거나 오랫동안 추억을 공유했던 십년지기 친구와의 마지막도 대부분 좋지 않았어요. 한 친구와 싸웠을 때입니다. 제 뒤에서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먼저 사과하면서 자존심 굽힐 친구 아니야.”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고 저를 희생양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어요. 계속 잘 지내고 싶었지만, 그 친구는 제게 열등감이 있었어요. 그게 이유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자꾸 저를 무시했죠. 친하게 지낸 친구 대부분이 그렇게 멀어졌어요. 제게 열등감을 가진 친구들이 항상 저를 무시한 적이 많았어요. 제게 큰 상처가 됐습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가 더는 진실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들에게 저는 필요할 때 써먹는 인맥유지용 친구였던 거죠. 진정한 친구 사이에선 ‘열등감’이라는 단어는 존재하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잘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그 친구들은 왜 제게 상처 주는 행동들만 할까요? 너무 배려만 하는 제 모습에 저를 만만하게 본 걸까요? 제 천성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무시한 걸까요? 다시 한 번 저의 단점을 찾아보고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생각해요. 하지만 잘못한 것은 없고, 친구한테 받은 상처만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런 인연들에게서 상처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
A2 늘 먼저 배려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마음도 많이 쏟았는데 내 주변에는 나를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친구, 열등감 때문에 나를 무시하는 친구, 필요할 때만 나를 써먹는 친구들만 가득하다고 생각하시네요. 마음의 상처가 깊게 느껴집니다. 분노도 느껴지고요.
그런데요, 당신의 이런 판단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라면, 지금 친구들과 모두 절교하고 지구 어딘가에 있을 좋은 인성의 친구, 열등감이 없고 자존감은 아주 높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나는 잘못이 하나도 없고 그 친구들이 잘못한 것이니까요. 인연을 싹 한 번 정리하고 아예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해결되는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나는 완전무결하고 좋은 사람이니까 언젠가 좋은 사람들이 당신 인생에 나타나겠죠. 참 쉽죠?
그러나 이 글을 여기에서 맺을 수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한 관계’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열심히 잘해주고 온 마음을 쏟으면 상대방도 나에게 똑같은 애정과 노력을 되돌려주는 관계가 진실한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맺는 관계가 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오해, 갈망, 언쟁, 상처 주고받기 같은 것은 관계가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더 많이 생겨날 수 있는 것들이에요. 당신이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도, 그 관계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신이 100이라는 마음으로 노력했어도, 상대방은 그걸 다 몰라주고 30만 돌려줄 수도 있죠.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았으니, 너도 돌려줘야지?’라는 생각으로 관계를 대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요? ‘관계란 이래야 한다’, ‘우정이란 이래야 한다’는 사고는 그저 ‘우정에 대한 굳건한 믿음’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인지행동치료에서 지적하는 대표적인 ‘인지적 왜곡’에 속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바로 ‘해야 한다’ 사고에 속하는 이야기죠. ‘진실한 친구가 아닌 것 같아요’, ‘열등감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라는 당신의 말은, 당신이 이러한 ‘해야 한다’사고에 깊이 빠진 상태는 아닐지 짐작하게 해요. 인간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감정이 왜 당신 주변에만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완벽주의와 강박적인 사고패턴은 쉽게 분노해 제풀에 지치게 하고 타인을 떠나가게 합니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열심히 노력하고 배려해서 좋은 친구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조금만 내려놓으세요. 정답을 정해놓고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을 멈추세요. 혼자서도 괜찮다는 느낌, 진짜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은 친구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다정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배려하되, 친구가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도 그 또한 이해하고 넘어가죠. 나도 단점이 있고, 친구 역시 단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요?
곽정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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