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의 김기동 감독이 24일(한국시각)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 알 힐랄과 경기에서 지휘하고 있다. 리야드/AFP 연합뉴스
주축 선수들이 떠난 최악의 시즌. 하지만 감독의 리더십은 어둠 속에서 더 빛났다.
포항 스틸러스의 김기동(49) 감독은 24일(한국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202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단판 결승전에서 사우디의 알 힐랄에 패(0-2)했다. 우승 문턱에서 멈춘 김기동 감독은 경기 뒤 “준비한 것의 50%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우승컵을 가져가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항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감독이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어 보인다.
포항은 올 시즌을 앞두고 일류첸코, 팔로셰비치, 최영준 등 공수의 주축들이 떠났고, 공격수 송민규도 시즌 중 이적했다. 주전 골키퍼 강현무는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태이고, 주포 이승모는 병역특례 봉사활동 시간부족으로 이번 챔피언전 결승전이 열리는 해외로 나갈 수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선수들을 묶어낸 것은 김 감독의 리더십이다. 강성도, 그렇다고 연성도 아닌 김 감독은 선수단이 똘똘 뭉치도록 투혼을 끌어냈고, 후보 선수라도 늘 기대감을 갖고 경기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비록 이날 경기 시작 16초 만에 실점해 기선을 빼앗겼고, 후반 공격적으로 운영하다가 18분 만에 추가골을 내줘 완패했지만 포항은 나름대로 최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전반 12분 신진호의 슈팅은 골대를 맞히기도 했다.
김 감독은 “이른 시간 실점으로 심리적으로 조급해지고 실수가 잦았다. 신진호의 골이 터졌다면 경기가 더 재미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5만여 관중이 들어찼는데, 김 감독은 “축구는 팬들이 있어야 한다. 선수들이 즐기면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일(한국시각)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꺾고 우승한 알 힐랄 선수들. 전 한국 국가대표 장현수(왼쪽)도 수비수로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리야드/로이터 연합뉴스
김 감독은 상대 알 힐랄에 대해서는 “조직적인 축구보다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들을 활용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국가대표 출신의 장현수도 탄탄한 수비로 알 힐랄의 우승에 힘을 보탰다.
김기동 감독은 이날 준우승으로 250만달러(약 30억원)의 상금을 챙겼다.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쌓은 출전료 등 적립금도 꽤 된다. 주력 선수들이 많이 빠져나간 어려운 상황에서도 구단 수입에 큰 도움을 주었다. 김 감독은 “한국에서 많은 팬이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 어린 선수들이 긴장한 것 같은데, 이번 경기를 통해 많이 성장하면 좋겠다”고 했다.
포항 선수단은 25일 귀국 뒤 28일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 12월4일 FC서울과 안방 경기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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