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비공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탈북자 ㄱ씨가 “내가 증언한 사실이 북한에 유출됐다”며 증언 유출자를 처벌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언유출 피해 탈북자 인터뷰
“국정원서 동아일보 인터뷰 종용…기자 만났지만 인터뷰는 거부”
“증언유출로 북 가족 위험 몰려…소송 내겠다니 국정원서 말려”
“증언유출 공무원 확인되면 용서하지 않을 거다”
“국정원서 동아일보 인터뷰 종용…기자 만났지만 인터뷰는 거부”
“증언유출로 북 가족 위험 몰려…소송 내겠다니 국정원서 말려”
“증언유출 공무원 확인되면 용서하지 않을 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비공개 재판 증인으로 나왔다가 증언 내용과 탄원서가 언론에 유출돼 북한의 가족이 큰 위험에 처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유출 의심자를 고소한 탈북자 ㄱ씨가 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국가정보원에 대한 강한 불만과 의심을 나타냈다.
ㄱ씨는 간첩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34)씨 사건 증거로 제출된 중국 공문서가 위조됐다는 폭로가 나온 뒤 국정원이 자신에게 언론 인터뷰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증거조작을 한 데 이어, 불리한 국면을 뒤집으려고 탈북자를 이용하며 북한에 있는 그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ㄱ씨는 국정원과 일부 언론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탈북자 가족을 죽음의 위기로 내몰았다며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ㄱ씨와의 일문일답.
-탄원서 제출 경위를 설명해달라.
“지난해 12월6일 국정원 요청으로 유우성씨 재판에 나갔다. 나는 유씨를 모르고, 본 적도 없다. (유씨가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했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도강하는 방식 등을 진술했다. 그 뒤 올해 1월6일 북한에 있는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흘 전 보위부에 끌려가 ‘아빠가 남한 가서 이름을 ○○○로 바꾸고 남한 재판소(법원) 가서 공화국 위신을 훼손하는 증언을 했느냐’고 묻더라. 딸은 모른다고 했고 보위부가 3시간 조사를 한 뒤 ‘니들도 조심해라’라고 경고하고 돌려보냈다. 딸은 내게 ‘아빠가 우리 버리고 달아났으면 남아 있는 우리라도 편히 살게 해줘야지 않느냐’고 말했다. 충격받았다. 국정원에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졌다. 자기들은 모른다고 하더라. 증언 유출에 대해 법원에 탄원서를 내겠다고 (국정원에) 말했다.”
-탄원서 제출 후 국정원이 몇몇 언론사와 인터뷰를 주선했다는데.
“(유우성씨 관련 문서 조작이 밝혀진 뒤인) 2월 중순 국정원에서 연락 와서 탄원서 제출 경위에 대해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해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가족이 위험한 상황이어서 안 된다고 했는데, 이미 다 세팅이 돼 있었다. 나는 약속 장소에 나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북한 가족들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살자고 새끼들을 죽일 수 없다’며 인터뷰를 못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사는 못 나갔다. 하지만 동아일보 인터뷰가 실패하니 국정원이 다른 언론사 두 곳과 더 인터뷰하라고 요구했다. 언론사 이름은 아직 밝힐 수 없다. 탄원서 유출자를 고소했으니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4월1일 <문화일보>의 탄원서 내용 보도 후 어떻게 대처했나?
“일단 수습하려고 문화일보 기자에게 기사 내리라고 사정도 하고 욕도 했다. 사회부장이 내 기사 써도 된다고, 승인했다고 알려준 신문사 외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국정원에 연락해 ‘당신들이 탄원서 유출했냐, 문화일보 상대로 소송 내겠다’고 했더니, 국정원은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소송하지 말라고 말렸다.”
-고소는 어떻게 하게 됐나?
“일단 내 새끼부터 찾았는데 아이들을 도저히 못 찾았다. 여러 브로커들한테 다 연락했는데 집에 사람이 없다. 1일 저녁 또는 2일 아침 보위부가 아이들을 데려갔을 것이다. 탈북자들은 이렇게 뉴스가 터지면 북한이 어떤 상황인지 다 안다. 처음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찾아갈까 하다가, 일단 수사가 되면 탄원서 원본 유출자가 나오게 될 테니 고소했다. 누가 봐도 답이 나오는 그림이다. 자기들 이득을 위해서는 북한에 있는 사람은 목숨도 아니냐? 파리 목숨이냐?”
-이번 사건 외에도 국정원이 도움 요청한 적 있나?
“다른 간첩 사건에 두번 증인으로 나갔다. 그것 외에는 국정원이 요구한 게 없었다. 2003년 탈북해 합동신문센터 2평짜리 독방에서 1년4개월 있었다. 거기서도 (위장 탈북자가 아니냐는 추궁에) 안 굽히고 나온 사람이다. 나는 국정원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1년4개월을 있었겠나.”
-지금 심경이 어떤가?
“국정원이 나한테 해준 게 있으면 뒤통수쳐도 할 말 없다. 하지만 난 그들한테 받은 것 하나도 없다. 이번 일 터지고 나서 국정원도, 문화일보도 사과 한마디 안 했다. 내가 북에서 와서 비빌 언덕이 없고 비참하게 산다고 사람을 개같이 취급하는 거다. 국가가 원해서 증언 나갔는데 국가가 못 지켜줬다. 간첩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안 되는 건 안 된다. 사람 생명이 중요한 거다. 사람이 힘없다고 무참히 밟아버리는 정보기관이 어디 있나. 2차 유출자 관련자가 국가공무원으로 확인되면 문화일보와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하겠다. 용서 안 할 거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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