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4월11일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심상정(맨앞줄 오른쪽부터), 유시민, 이정희 공동대표와 이석기 비례대표 후보(이정희 대표 뒷줄 서 있는 이) 등이 투표가 끝난 뒤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 선거종합상황실에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서 기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심층 리포트] 진보정당 15년, 위기와 기회 ② 현재 - 혼돈과 재편의 과도기
진보정당 지지자 20~50대 7명 인터뷰
진보정당 지지자 20~50대 7명 인터뷰
한때 당 지지율 10%를 넘던 진보정당이 15년이 지난 지금 2~3%대로 쪼그라들었다. 분당과 합당, 이합집산을 거듭해온 진보정당의 어지러운 역사를 지지층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진보정당은 여전히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한겨레>는 2012년 총선 당시 정당 비례대표 투표에서 진보정당(당시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녹색당)을 지지했던 20~50대 유권자 7명(여성 2명, 남성 5명)을 인터뷰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진보정당의 역사를 지켜봐온 이들은 비교적 진보정당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진보정치를 향한 열망도 강한 편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29일부터 지난 2일 사이에 개별적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요청으로 기사에서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진보정당 지지 철회 이유
내 꿈을 실현해줄 정당 없어
사회 바꿀수 있을지 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국기 경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보수에 ‘종북론’ 먹잇감 줘 어디로 가야 하나
배타적 태도 안돼…유연해져야
세밀한 실행력 보여줘야 할때 ■ 진보정당, 지지와 철회 사이 인터뷰에 응한 7명 가운데 4명은 지난 총선 때 통합진보당을, 3명은 진보신당(현 노동당)을 지지했다. 이들 가운데 여전히 같은 당을 지지한다는 이는 1명(통합진보당 지지)뿐이었다. 3명은 정의당 지지로, 1명은 녹색당 지지로 돌아섰고,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이가 2명이었다. 2012년 총선 이후 진보정당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같은 정당을 계속 지지하거나, 반대로 지지정당이 바뀐 이유가 뭔가? 여자1 “노회찬·심상정 의원에 공감해 힘을 몰아주고 싶어 총선 때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 지금은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있는) 정의당을 찍을 거다. 하지만 정의당도 유명인사 몇명 위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별로 검증이 안 된 것 같고 딱히 어떤 정당인지 잘 모르겠다.” 남자1 “총선 때 진보신당을 찍었다. 하지만 패권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자주파(NL) 출신과 신뢰할 수 없는 유시민 계열이 손잡은 통합진보당 대신 (진보신당을) 지지한 것일 뿐, 흔쾌히 지지한 건 아니었다. 진보신당(노동당)은 여전히 정당이라기보다 대학 서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지 정당이 없다. 나의 열망과 꿈을 담을 내용과 실력을 갖춘 정당을 못 찾겠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다른 정당을 (찍으려도) 찍지 못하니, 어떨 때는 (내가) 진보정당에 인질로 잡힌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자4 “통합진보당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녹색당 지지로 바뀌었다. 원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도 했었고 2012년엔 통합진보당으로 진보 세력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진보정당 가운데) 어디를 지지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운동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그쪽(진보정당)을 강화한다고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이젠 (사회나 정치의) 의제가 생태, 환경, 근본적인 삶의 기반 문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5 “해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통합진보당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당원이다. 특별히 (내가) 뭘 하진 못해도,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매달 당비 정도 보태주는 건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 진보정당의 오류 -진보정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남자1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자주파와 평등파(PD)의 정파 싸움이다. 민주노동당 초기엔 당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을 얻자마자 온갖 파당과 분란이 일어나지 않았나.” 여자1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의견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게 달갑잖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문제만 해도,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보수 쪽의 정치 불신론, 정치 무용론에 꼬투리를 잡혀 지지기반 확산이 안 됐다.” 남자2 “통합진보당은 애국가,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문제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서 보수언론에 ‘종북’이라는 먹잇감을 줬다. 그들이 종북이라는 데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통합진보당은 스스로에게 빨간색을 칠한 측면이 있다.” 여자2 “언젠가부터 (진보정당은 선거 때마다 거대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계속해 왔는데, 이념이나 정책의 진보성, 공통점을 따른 게 아니라 선거 승리만을 보고 급하게 단일화를 했다. 당선을 위해서만 단일화하면 당선된 뒤에도 문제가 생긴다.” 남자3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 토론회 때 ‘박근혜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한 발언이나, 진보정당들의 총선 펼침막 같은 것을 보면 과격해 보이고, 30년 전 대학 다닐 때 봤던 운동권과 뭐가 다른가 싶다. 그런 모습은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역효과를 일으킨다.”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창당·분당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남자1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당이 유지될 수 없었으니 분당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결합일 뿐, 진보적으로는 별 의미 없다. 난 그걸 보면서, 아 그들도 ‘진보 정치인’이 아니라 그냥 ‘정치인’이구나 생각했다. 국민들의 희망과 변화의 욕구를 담아낼 그릇이 진보정치에 없다는 게 씁쓸했고,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됐다.” 남자3 “민주노동당 분당은 맞다고 봤다. 갑자기 자주파 쪽 당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노회찬·심상정 이런 사람들이 소수파가 됐고 당의 색깔도 다수 당원의 결정에 따라 퇴색되는 과정(노동 등의 문제보다 통일 문제가 더 부각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분당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남자4 “통합진보당 창당을 전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세력을 키우면 좀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선거에서 조금 더 유리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던 거다.” ■ 통합진보당이 남긴 것 인터뷰에 응한 진보적 유권자 7명은 모두 통합진보당 해산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스스로 북한의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등과 관련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스스로 ‘종북의 덫’에 갇혔다는 지적도 있었다. -평소 통합진보당을 어떻게 생각했나? 남자5 “너무 외골수였다. 종북 프레임은 보수 쪽에서 만든 건데 그걸 못 깨고 갇혔다. 잘못한 건 털고, 사과할 건 사과하면서 당당하게 나왔어야 했는데, (논란의 중심이 된 이석기 전 의원 등을) 감싸기만 했다. 더구나 노회찬, 심상정 의원은 그쪽에 과오를 넘기고 빠져나가버렸는데, 그때도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아쉽다.” 여자1 “노동운동 하는 사람, 학생운동 하는 사람, 최하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한 것처럼 통합진보당도 있어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통일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통합진보당은 거기에 초점을 맞춘 진보정당일 뿐이다.” 남자4 “솔직히 자주파(의 대북관)는 진보 진영 전체의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질 때 지지한 것도 시민들과 발을 맞춰 활동하는 모습 때문이지, 그들의 (대북 관련) 이론을 지지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리스크가 드러나 통합진보당 전체 활동에 영향을 미쳐 분당되고, 정부로부터 공격당한 것 아닌가.” ■ 진보정당은 어디로 가야 하나 진보정당에 기대했던 만큼 상처받고, 지금도 흔쾌히 지지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이들은 “진보정당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각각의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통합의 길을 가야 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진보정당이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여자1 “복지에 특히 집중해야 한다. 새누리당엔 기대할 수가 없고, 새정치민주연합도 반쯤은 새누리당화됐기 때문에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진보정당밖에 없다. 또한 우리 생활에 가까운 진보정당, 지역주민들 가까이에서 생활 정치를 하는 진보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 (실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거대담론이나 운동권식 표현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다. 노동자 아니면 노동당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고, 채식주의자 아니면 녹색당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준다. 이런 벽을 좀 허무는 활동을 많이 하면 좋겠다.” 여자2 “옛날 민주노동당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이나 복지 같은 가치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신의 이념과 가치, 색깔을 뚜렷이 보여주면서도 ‘나는 진보고, 너는 다르다’는 식으로 배타적이어선 안 된다. 많은 지지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진보가 돼야 한다.” 남자1 “당연히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단 지금까지와 달리 구호가 아니라 실제 보수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촘촘하고 원대한 설계도와 실행력을 보여줘야 된다. 사실 노동, 환경, 여성 등 좋은 이야기는 다 나왔다. 이젠 어떤 가치냐보다 태도와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정치 세력의 재편 방향은 어떤 것이 옳을까? 남자1 “그런 이야기 자체가 방향이 틀렸다. 어떤 가치와 지향, 철학을 꾸준히 실천할 것인지는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술적인 얘기만 하는 거다. 지난 15년 동안 진보정당들이 어떤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고 지켜왔나. 탈당, 합당, 분당, 연대 이런 것만 거듭했을 뿐이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노만 젓는데, 사람들이 그 배를 왜 타겠나. 이미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도, 지지도 충분히 해줬다. 이젠 진보정당이 그야말로 원칙과 소신, 가치를 보여줘야 할 때다.” 여자1 “각 정당이 특화된 부분이 있으니 독자 노선을 걷되 선거 때 후보 단일화 정도 하는 건 괜찮다. 다만 평소 의정활동을 할 때 교류를 더 많이 해야 선거연대가 ‘표만 합치겠다는 속셈’으로 비치지 않는다.” 남자2 “선거 때 야권연대를 해야 한다.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새누리당을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통합진보당 세력을 빼고 (야권연대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남자3 “각자 자기 정치활동을 제대로 하고 자기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 연대를 하더라도 지지를 더 받을 수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엔 당원들이나 활동가들은 각자 원하는 정치활동을 하면 되겠지만, 지도부는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당을 만들거나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남자4 “녹색당을 중심으로 합당해야 한다. 녹색당이 노동이나 다른 분야에서 다른 진보정당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게 아니고, 오히려 강령이나 노선이 더 선명하기 때문에 (진보 진영의) 마케팅 전략으로서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도 녹색당을 중심으로 삶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지 않나.” 남자5 “지금은 새누리당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일대일 구도로 가는 게 제일 좋다. 통합진보당 세력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까지 추구하는 건 다 비슷하니까 합치는 게 맞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내 꿈을 실현해줄 정당 없어
사회 바꿀수 있을지 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국기 경례 같은 사소한 문제로
보수에 ‘종북론’ 먹잇감 줘 어디로 가야 하나
배타적 태도 안돼…유연해져야
세밀한 실행력 보여줘야 할때 ■ 진보정당, 지지와 철회 사이 인터뷰에 응한 7명 가운데 4명은 지난 총선 때 통합진보당을, 3명은 진보신당(현 노동당)을 지지했다. 이들 가운데 여전히 같은 당을 지지한다는 이는 1명(통합진보당 지지)뿐이었다. 3명은 정의당 지지로, 1명은 녹색당 지지로 돌아섰고,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이가 2명이었다. 2012년 총선 이후 진보정당에서 벌어진 일들이 그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같은 정당을 계속 지지하거나, 반대로 지지정당이 바뀐 이유가 뭔가? 여자1 “노회찬·심상정 의원에 공감해 힘을 몰아주고 싶어 총선 때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 지금은 (노회찬·심상정 의원이 있는) 정의당을 찍을 거다. 하지만 정의당도 유명인사 몇명 위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별로 검증이 안 된 것 같고 딱히 어떤 정당인지 잘 모르겠다.” 남자1 “총선 때 진보신당을 찍었다. 하지만 패권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자주파(NL) 출신과 신뢰할 수 없는 유시민 계열이 손잡은 통합진보당 대신 (진보신당을) 지지한 것일 뿐, 흔쾌히 지지한 건 아니었다. 진보신당(노동당)은 여전히 정당이라기보다 대학 서클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지 정당이 없다. 나의 열망과 꿈을 담을 내용과 실력을 갖춘 정당을 못 찾겠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다른 정당을 (찍으려도) 찍지 못하니, 어떨 때는 (내가) 진보정당에 인질로 잡힌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남자4 “통합진보당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녹색당 지지로 바뀌었다. 원래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기도 했었고 2012년엔 통합진보당으로 진보 세력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진보정당 가운데) 어디를 지지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운동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그쪽(진보정당)을 강화한다고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이젠 (사회나 정치의) 의제가 생태, 환경, 근본적인 삶의 기반 문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5 “해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통합진보당을 지지한다. 민주노동당 때부터 당원이다. 특별히 (내가) 뭘 하진 못해도, 진보정치의 성장을 위해 매달 당비 정도 보태주는 건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 진보정당의 오류 -진보정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남자1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자주파와 평등파(PD)의 정파 싸움이다. 민주노동당 초기엔 당 안에서 서로 존중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을 얻자마자 온갖 파당과 분란이 일어나지 않았나.” 여자1 “내부에서 조율되지 않은 의견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게 달갑잖다.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문제만 해도, 자기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보수 쪽의 정치 불신론, 정치 무용론에 꼬투리를 잡혀 지지기반 확산이 안 됐다.” 남자2 “통합진보당은 애국가,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문제에도 자신들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면서 보수언론에 ‘종북’이라는 먹잇감을 줬다. 그들이 종북이라는 데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통합진보당은 스스로에게 빨간색을 칠한 측면이 있다.” 여자2 “언젠가부터 (진보정당은 선거 때마다 거대 야당과) 후보 단일화를 계속해 왔는데, 이념이나 정책의 진보성, 공통점을 따른 게 아니라 선거 승리만을 보고 급하게 단일화를 했다. 당선을 위해서만 단일화하면 당선된 뒤에도 문제가 생긴다.” 남자3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 토론회 때 ‘박근혜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한 발언이나, 진보정당들의 총선 펼침막 같은 것을 보면 과격해 보이고, 30년 전 대학 다닐 때 봤던 운동권과 뭐가 다른가 싶다. 그런 모습은 평범한 유권자들에게 역효과를 일으킨다.” -민주노동당 분당과 통합진보당 창당·분당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남자1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당이 유지될 수 없었으니 분당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창당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결합일 뿐, 진보적으로는 별 의미 없다. 난 그걸 보면서, 아 그들도 ‘진보 정치인’이 아니라 그냥 ‘정치인’이구나 생각했다. 국민들의 희망과 변화의 욕구를 담아낼 그릇이 진보정치에 없다는 게 씁쓸했고,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됐다.” 남자3 “민주노동당 분당은 맞다고 봤다. 갑자기 자주파 쪽 당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노회찬·심상정 이런 사람들이 소수파가 됐고 당의 색깔도 다수 당원의 결정에 따라 퇴색되는 과정(노동 등의 문제보다 통일 문제가 더 부각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분당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남자4 “통합진보당 창당을 전적으로 지지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세력을 키우면 좀더 나을 것이라 판단했다. (선거에서 조금 더 유리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던 거다.” ■ 통합진보당이 남긴 것 인터뷰에 응한 진보적 유권자 7명은 모두 통합진보당 해산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스스로 북한의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등과 관련해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스스로 ‘종북의 덫’에 갇혔다는 지적도 있었다. -평소 통합진보당을 어떻게 생각했나? 남자5 “너무 외골수였다. 종북 프레임은 보수 쪽에서 만든 건데 그걸 못 깨고 갇혔다. 잘못한 건 털고, 사과할 건 사과하면서 당당하게 나왔어야 했는데, (논란의 중심이 된 이석기 전 의원 등을) 감싸기만 했다. 더구나 노회찬, 심상정 의원은 그쪽에 과오를 넘기고 빠져나가버렸는데, 그때도 (통합진보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게 아쉽다.” 여자1 “노동운동 하는 사람, 학생운동 하는 사람, 최하위층을 대변하는 정당이 필요한 것처럼 통합진보당도 있어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통일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통합진보당은 거기에 초점을 맞춘 진보정당일 뿐이다.” 남자4 “솔직히 자주파(의 대북관)는 진보 진영 전체의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질 때 지지한 것도 시민들과 발을 맞춰 활동하는 모습 때문이지, 그들의 (대북 관련) 이론을 지지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리스크가 드러나 통합진보당 전체 활동에 영향을 미쳐 분당되고, 정부로부터 공격당한 것 아닌가.” ■ 진보정당은 어디로 가야 하나 진보정당에 기대했던 만큼 상처받고, 지금도 흔쾌히 지지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이들은 “진보정당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각각의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활동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통합의 길을 가야 하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진보정당이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여자1 “복지에 특히 집중해야 한다. 새누리당엔 기대할 수가 없고, 새정치민주연합도 반쯤은 새누리당화됐기 때문에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진보정당밖에 없다. 또한 우리 생활에 가까운 진보정당, 지역주민들 가까이에서 생활 정치를 하는 진보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 (실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거대담론이나 운동권식 표현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들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다. 노동자 아니면 노동당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고, 채식주의자 아니면 녹색당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를 준다. 이런 벽을 좀 허무는 활동을 많이 하면 좋겠다.” 여자2 “옛날 민주노동당처럼, 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이나 복지 같은 가치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신의 이념과 가치, 색깔을 뚜렷이 보여주면서도 ‘나는 진보고, 너는 다르다’는 식으로 배타적이어선 안 된다. 많은 지지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한 진보가 돼야 한다.” 남자1 “당연히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단 지금까지와 달리 구호가 아니라 실제 보수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촘촘하고 원대한 설계도와 실행력을 보여줘야 된다. 사실 노동, 환경, 여성 등 좋은 이야기는 다 나왔다. 이젠 어떤 가치냐보다 태도와 자세가 훨씬 중요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정치 세력의 재편 방향은 어떤 것이 옳을까? 남자1 “그런 이야기 자체가 방향이 틀렸다. 어떤 가치와 지향, 철학을 꾸준히 실천할 것인지는 보여주지 못하면서 기술적인 얘기만 하는 거다. 지난 15년 동안 진보정당들이 어떤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고 지켜왔나. 탈당, 합당, 분당, 연대 이런 것만 거듭했을 뿐이다.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노만 젓는데, 사람들이 그 배를 왜 타겠나. 이미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도, 지지도 충분히 해줬다. 이젠 진보정당이 그야말로 원칙과 소신, 가치를 보여줘야 할 때다.” 여자1 “각 정당이 특화된 부분이 있으니 독자 노선을 걷되 선거 때 후보 단일화 정도 하는 건 괜찮다. 다만 평소 의정활동을 할 때 교류를 더 많이 해야 선거연대가 ‘표만 합치겠다는 속셈’으로 비치지 않는다.” 남자2 “선거 때 야권연대를 해야 한다.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새누리당을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통합진보당 세력을 빼고 (야권연대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남자3 “각자 자기 정치활동을 제대로 하고 자기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 연대를 하더라도 지지를 더 받을 수 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엔 당원들이나 활동가들은 각자 원하는 정치활동을 하면 되겠지만, 지도부는 이번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당을 만들거나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남자4 “녹색당을 중심으로 합당해야 한다. 녹색당이 노동이나 다른 분야에서 다른 진보정당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게 아니고, 오히려 강령이나 노선이 더 선명하기 때문에 (진보 진영의) 마케팅 전략으로서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도 녹색당을 중심으로 삶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지 않나.” 남자5 “지금은 새누리당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일대일 구도로 가는 게 제일 좋다. 통합진보당 세력과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까지 추구하는 건 다 비슷하니까 합치는 게 맞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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