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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그물장에서 가쁜 숨 몰아쉬던 ‘식용개’, 너의 이름은 올리버

등록 2021-11-25 17:22수정 2021-12-07 17:37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지난 8월 불법도살장에서 구조된 개 진도믹스 올리버
달리기와 사람 좋아하는 올리버와 반려견은 다른 개일까
진도믹스견 올리버는 지난 8월 경기도 여주시 왕대리 불법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뒤 현재 카라 더봄센터에서 보호받고 있다.
진도믹스견 올리버는 지난 8월 경기도 여주시 왕대리 불법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뒤 현재 카라 더봄센터에서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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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는 지난 8월, 경기도 여주시 왕대리 불법 개도살장에서 구조된 진도믹스 개다. 올리버는 그물장에 구겨지듯 수납돼 경매장에서부터 트럭에 실려 도살장까지 왔다. 카라 활동가들이 현장을 급습했을 때 올리버는 패닉 상태로 다른 개들 위에 모로 누워 있었다. 그 목에는 언제 매었는지도 모를 낡고 더러운 목줄이 채워져 있었다. 언젠가 가족이 있었던 개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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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쏟아지던 불법도살의 흔적들

올리버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얌전했다. 활동가들이 도살자와 다투고,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에 신고하고, 현장에서 불법 행위에 사용된 증거물을 채취하는 시끄러운 과정 속에서도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납작한 그물장 속에서 활동가들이 내민 물그릇의 물을 간신히 마시고, 자세를 조금 고쳐 앉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대로 죽임을 당하느냐, 구조되어 반려견으로서의 삶을 사느냐의 기로에서 이따금 순한 눈망울로 활동가들에게 시선을 던질뿐이었다.

올리버는 그물장에 구겨지듯 수납돼 경매장에서부터 트럭에 실려 도살장까지 왔다.
올리버는 그물장에 구겨지듯 수납돼 경매장에서부터 트럭에 실려 도살장까지 왔다.

‘왕대리 도살장’은 일종의 공유 오피스처럼 여러 도살자들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이날 적발된 도살자 ㄱ씨는 지난해에도 불법 도살로 기소된 인물이었다. 그는 2020년 12월 경기도 고양시 설문동에서 도살장을 운영해 카라가 현장을 덮친 적이 있다. 당시 현장을 적발한 카라와 고양시, 경찰의 협조로 현장의 개들은 전원 구조됐고 소유권도 받아낸 적이 있다.

이미 학대동물에 대한 소유권 분쟁을 겪은 바 있고, 2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는 도살자는 이번엔 순순히 현장에서 개들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모두 34마리의 개가 구조됐다. 도살장 인근에서는 불법 투견장으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설도 발견됐다. 망가진 러닝머신과 미처 쓰이지 못하고 방치된 주사바늘이 무더기로 버려져 있었다.

한 불법 개도살장 잠입취재에서 촬영된 장면.
한 불법 개도살장 잠입취재에서 촬영된 장면.

입구 냉장고에는 정체 모를 까만 대형 비닐봉투가 잔뜩 쌓여있었다. 봉투를 열어본 활동가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봉투를 열자 개의 발목과 머리, 염소 사체가 우르르 쏟아졌다. 비현실적으로 참혹한 광경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그곳에서 죽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당일, 카라 활동가들이 현장을 덮치지 않았더라면 올리버와 다른 개들의 발목도 잘려 그곳에 쌓였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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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뒤 3개월…사람 품 찾는 올리버

왕대리 도살장을 습격하고 개들을 구한 지도 이제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도살장 개들은 모두 중성화 수술을 했고, 예방접종을 했다. 입양을 위해 카라 누리집에 프로필도 등록했다. 대형견의 입양이 여의치 않은 국내 사정상 해외 입양을 위한 이동봉사자도 꾸준히 구하는 중이다.

요새 올리버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사람 품에 몸을 기대어 쓰러지는 법도 배웠다.
요새 올리버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사람 품에 몸을 기대어 쓰러지는 법도 배웠다.

올리버는 경기도 파주시의 카라 더봄센터에 입소했다. 1층 D120 견사가 현재 올리버의 보금자리다. 올리버는 대체로 잘 지낸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지만 보일러 튼 견사에서 이불을 깔고 잠들고, 아침이면 활동가들을 만난다. 식사 시간이 되면 깨끗하고 질 좋은 사료를 먹는다. 견사 테라스로 나가 바람을 쐬기도 하고 넓은 중앙정원이나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요새 올리버는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사람 품에 몸을 기대어 쓰러지는 법도 배웠다. 친구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활기가 넘치지만, 사람의 손길을 받으며 올리버는 한층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 올리버에게 남은 건 좋은 가족을 찾는 일 뿐이다.

‘식용개는 반려견과 다르다’는 말은 올리버만 봐도 말도 안되는 억측이란 걸 알 수 있다. 올리버는 그냥 견종이 ‘진도믹스’일 뿐인 여느 개들과 다를 바 없는 그냥 개다. 특이할 점이라면 한해 100만 마리 개들이 불법으로 도살되는 대한민국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것 정도일까. 국내 개농장만 2000여개로 추정되고 한해 100만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개들이 몰래 죽어나가는 현실을 헤어릴 때, 사실 올리버의 생환은 기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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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100만 마리…삶의 기회조차 없었다

‘식용개’를 사육하고 도축하는 사람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육견협회’는 개 식용 금지는 인간의 기본권인 먹거리 자유와 직업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법행위 속에서나 존속 가능한 개농장과 도살장은 이미 사양산업으로 들어섰다. 개들을 기르는 환경, 방식, 그리고 도살 과정, 유통 방식이 모두 불법이다. 그 결과물인 ‘개 식용’ 또한 기본권의 범주에 들 수 없다. 여전히 생존권의 형평성을 논하고 싶다면 다른 시민들과 같이 불법이 아닌 합법 안에서 투명하고 정직하게 일했어야 한다.

한해 100만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개들이 개식용 산업 안으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다.
한해 100만 마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개들이 개식용 산업 안으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다.

개농장 개들에게 삶은 기회조차 없다. 어미 개가 낳은 새끼가 뜬장 사이로 빠져서 땅에 쌓인 대소변에 질식해 죽는 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개농장 개들에게 삶은 기회조차 없다. 어미 개가 낳은 새끼가 뜬장 사이로 빠져서 땅에 쌓인 대소변에 질식해 죽는 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개농장 개들에게 삶은 기회조차 없다. 개들은 바람 한 점 막을 수 없는 발이 푹푹 빠지는 뜬장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어미 개가 낳은 새끼가 뜬장 사이로 빠져서 땅에 쌓인 대소변에 질식해 죽는 건, 과장이 아니라 현실이다. 살아남은 새끼들은 음식물쓰레기나 곰팡이 핀 물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며 자라난다. 안 죽으면 내일은 또 눈을 뜨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식용개’이라는 이름으로 맞아 죽거나, 목 매달려 죽거나, 전기로 감전되어 죽어야 한다.

카라를 비롯한 동물단체들, 그리고 시민들은 ‘개식용 종식’은 시대적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흐름을 기다리고만 있기엔 너무 늦다. 개 식용을 금지하라고 외치는 동안에도 개들은 죽어간다. 계속 현장 조사를 벌이고, 불법행위를 고발하고, 개들을 구조하면서 한 마리라도 살리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올리버는 친구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활기가 넘치지만, 사람의 손길을 받으며 올리버는 한층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 남은 건 좋은 가족을 찾는 일 뿐이다.
올리버는 친구들과 함께 할 때 가장 활기가 넘치지만, 사람의 손길을 받으며 올리버는 한층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 남은 건 좋은 가족을 찾는 일 뿐이다.

우리가 개 식용을 반대하고 잔인한 동물학대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옳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다른 생명이 겪는 고통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동물로서 비인간동물을 또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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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금지 이정표가 꽂혔다

11월 25일, 정부는 ‘개 식용 금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내년까지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당장의 발표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우리가 사회가 개식용 종식으로 나아갈 때라는 이정표가 꽂힌 것이다. 올리버에게 그리고 많은 개들에게 더 이상의 억압도 폭력도 없는 ‘삶’이 주어지길 염원한다.

글 카라 김나연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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