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카라는 성산대교와 성산2교 다리 위에서 연달아 3마리의 고양이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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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밤비’는 서울 한강 성산대교 난간에서 발견됐다. 밤비가 발견된 장소는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뎠다간 바로 한강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곳이었다. 쉴 새 없이 자동차가 달리고, 다리 아래로는 차디찬 한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밤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몸을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것밖에 없었다.
카라 활동가들은 밤비를 구하기 위해 11월24일 바로 한강으로 달려갔다. 밤비는 1㎞가 넘는 성산대교 한 가운데에 오도가도 못한 채, 패닉 상태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밤비가 지친 상태에서 가까스로 찾은 은신처는 몸을 제대로 숨길 수 조차 없는 다리의 안전펜스 밑였다. 펜스 밑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는 밤비 근처에 활동가들이 포획틀을 설치했다. 안전한 대피소처럼 느낄 수 있도록 검은 덮개를 덮어두고 어느 정도 물러나자, 밤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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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같은 시간, 다른 운명의 두 고양이
밤비는 구조 후 바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검진 결과 밤비는 2살 정도로 추정되는 암컷 고양이였다. 며칠간 음식물 섭취를 하지 못한 상태였고, 꼬리 아래에는 심하게 찢어진 상처가 발견돼 응급 봉합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겨울 찬 바람을 맞으며 오랜 시간 공포와 추위를 견뎠던 탓일까. 밤비는 낯선 공간이 겁났을 텐데 보일러가 틀어진 방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성산대교 난간에 낮게 엎드려 있다가 구조된 밤비. 검진 결과 밤비는 며칠 째 밥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같은 날 구조 요청이 접수됐던 아기 고양이 릿지는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실 카라는 이날 두 마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밤비를 구조한 날, 성산대교에서 또 다른 고양이에 대한 제보가 접수된 것이다. 성산대교 도로 중앙분리대 쪽에 다리를 절뚝이는 아기 고양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구조만 가능하다면 직접 아기 고양이를 임시보호하겠다는 적극적인 뜻을 밝혀왔다.
고양이가 있다고 제보된 곳은 차를 세우기 어려운 위치였다. 활동가들은 1차선으로 저속으로 주행하며 고양이 수색에 나섰다. 다리 위를 샅샅이 수색한 끝에 다리 중간 지점에서 겨우 약 6~7개월령으로 보이는 작은 체구의 고양이를 찾아냈다. 고양이는 외상도 전혀 없고 고운 털도 그대로였다. 금방 털고 일어날 것처럼 보였던 고양이의 숨은 이미 멎어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기고양이의 장기가 파열되어 한쪽으로 모두 쏠려 있다고 진단했다. 교통사고로 복부에 큰 충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아기고양이는 이미 제보 당시 1차 사고를 당한 후였던 것 같다. 고양이에게는 ‘릿지’(ridge·봉우리)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먼 길을 떠나는 그 애가 배고프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릿지의 장례식에는 간식과 캔이 놓였다.
먼 길을 떠나는 릿지가 배고프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장례식에는 간식과 캔이 놓였다.
밤비와 릿지를 만나고서 며칠 후, 우리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산2교에서 또 다른 고양이를 구조했다. 3개월 된 고양이의 이름은 ‘비비’가 됐다. 비비 역시 다리 한가운데 난간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도 없어 자칫하면 바로 사고를 당하거나 추락할 위험이 있는 장소였다. 포획틀을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숙련된 활동가가 직접 비비의 목덜미를 잡는 방식으로 구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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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대교까지 오기까지
도대체 왜 많은 고양이들이 다리 위에서 구조가 되는 걸까. 우리는 그 즈음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와 관련이 있을 거라 추정했다. 성산대교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자동차 엔진룸에 들어갔다가 그 먼데까지 가지 않았을까. 밤새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했던 고양이들에게 엔진룸은 잠을 청할 최적의 장소로 보였을 것이다.
고양이들은 아마도 엔진룸에 있다가 차량이 정차한 틈을 타 성산대교로 내려선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된 뒤 비비의 모습.
하지만 당연하게도 엔진룸은 안전하지 않다. 차량이 출발하면 엔진룸이 가열되고, 고양이는 화상을 입거나 탈진할 수 있다. 제때 못 빠져나온 고양이가 위험을 감지하고 웅크리고 있다가 차량이 정차한 틈을 타 엔진룸에서 내리는 경우도 종종 확인된다. 밤비나 릿지가 있던 성산대교나, 비비가 구조된 성산2교도 구조 당일 오전 정체가 심한 날이었다.
고양이들은 아마도 엔진룸에 있다가 차량이 정차한 틈을 타 성산대교로 내려선 것으로 추정된다. 밤비와 비비는 인도 쪽으로 내려 목숨을 구했지만, 중앙쪽으로 내린 릿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너야 했다. 순간의 선택이 생사를 갈랐다. 우리는 이들의 운명이 단지 행운에 달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양이들에게 추위를 막아줄 겨울집이 하나 있었다면, ‘안전 울타리’가 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될 위험이고 죽음이었다.
겨울철에는 유독 더 많은 고양이의 사체가 발견된다. 심한 경우엔 사체가 바닥에 납작하게 엉겨붙거나 얼어붙은 채로 발견된다. 활동가들은 이런 사체를 도구를 이용해 수습해야 할 때도 있다. 생명을 잃은 이상 그냥 유기물일 뿐이라고, 먼지가 되어 되어 세상을 순환할 뿐이라고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죽은 지 얼마 안됐거나 엉망으로 훼손된 사체를 앞에 두고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질서대로 돌아가는 도시에서 길거리 생활을 하는 고양이들의 삶은 매일이 투쟁이다. 고단하고 배고프고 위협에 시달린다. 길고양이들이 맞서야 하는 것은 그저 돌팔매질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고양이 급식소를 부수거나 쥐약을 놓고, 재미로 살해와 폭력을 일삼는다. 인간의 오해, 무지, 오만, 편견이 낳은 낡은 고정관념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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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냥이가 더 따뜻한 세상을 살기를
한달음에 길고양이들이 안전한 사회로 변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작은 행동이, 꾸준한 실천이 고양이들을 구할 수 있다. 아침엔 차량 운행 전 본넷에 노크를 하고 운전석에서 발을 굴러 엔진룸에 있을 지 모를 잠든 고양이를 깨우는 것, 골목길에서는 서행하는 것, 중성화 수술을 통해 동네 고양이의 번식을 조절해주는 것, 집 근처에 따뜻한 겨울집을 마련하는 것 모든 작은 마음 씀씀이들이 고양이를 살릴 수 있다.
찬 바람과 인간의 냉대를 이겨내야 하는 겨울철은 길고양이들에게 혹독한 시기다. 출발 전 본넷 노크, 겨울집 설치 등 작은 마음 씀씀이들이 고양이를 살릴 수 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릿지의 명복을 빈다. 고양이별이 있다면 그 곳에선 아프지 않게, 춥지 않게 잘 지내길 바란다. 다시 태어난다면 부디 그곳은 길고양이에게 더 다정하고 따뜻한 세상이기를!
글 카라 김나연 활동가, 사진 동물권행동 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