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동물전문 매체 <애니멀피플>(애피)과 인터뷰에서 “개를 집단 사육하고 도축하는 산업은 궤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3월 통과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현재의 식용견 사육 산업은 동물학대에 해당합니다. 개를 집단 사육하고 도축하는 이 산업은 궤멸할 수밖에 없어요.”
‘개고기 금지법’ 발의 의사를 밝힌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8월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정치권에서 개식용 금지를 위한 입법 노력이 가시화된 적은 아직 없었다. 지금까지는 한국동물보호협회가 1999년 개·고양이의 식용 금지를 뼈대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 청원서를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국회에 제출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대만·홍콩·필리핀 등 개 식용 문화가 있었던 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개고기 금지법을 내거는 등 ‘개 식용 불법화’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1970년대부터 해묵은 논쟁을 거듭하며 ‘헤매고’ 있다. 지난 가을부터 개고기 금지법 발의 의사를 피력한 표 의원에게도 공론화 직후 살해 협박 메시지가 날아오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지금 도끼 들고 올라간다, 기다리고 있어라.”
뿌리깊은 개고기 입법전쟁
개고기를 둘러싼 입법전쟁의 뿌리는 깊다. 축산법·축산물위생관리법(옛 축산물가공처리법)·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 등이 식용견 문제와 관련이 있다.
1975년 8월20일 국회는 축산물가공처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개를 가축의 범위에 포함시켜 정부 차원에서 도살 및 식육 검사를 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1978년 6월13일 개를 축산물 위생처리법상 가축과 축산물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 논쟁이 불붙었다. 외국 동물보호단체에서 개식용을 금지하지 않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한국 상품을 불매하겠다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압박을 가했다. 한국 외무부에 개도살 및 식용 금지 조치를 요구했다. 국제행사를 잘 치르길 원했던 군사정부는 반응했다. 위생검사 등으로 보신탕집들이 대도시 바깥으로 밀려나고, 농림부의 도살용 개 사육 억제 지시가 내려졌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법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개고기 합법화 진영이 기선을 제압했다. 김홍신 의원 등 국회의원 20명은 2001년 12월 ‘축산물가공처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개고기 합법화 법안’이었다. 김 의원의 법안은 축산물가공처리법 제2조 1항의 ‘가축’에 개를 추가하는 법안을 냈다. 하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폐기됐다.
이른바 ‘개장수 트럭’에 구겨진 채 실려 가는 식용견들. 대다수가 재래시장의 비공식적 도살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28일 서울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오른쪽)와 이혜원 건국대 3R동물복지연구소 부소장이 전국 재래시장에서 판매 중인 개고기의 항생제 검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개고기 법률 논쟁은 어느 진영에서도 성공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없다. 정치권에서 개고기 금지법 발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건 표 의원이 처음이다. 40년 넘게 이어진 해묵은 논쟁을 이번에는 ‘끝장’을 낼 수 있을까.
“이 문제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간의 흐름이죠. 그동안 개고기 금지 노력은 ‘시도’만 있었지, ‘추진’은 없었습니다. 동물보호법 개정을 통해서 간접적인 접근을 해왔죠. 그런데 복잡한 법안을 실제 집행해야 하는 집행부처에서 해석의 여지, 현실적인 문제, 전통문화 등을 이유로 주저하고 있어서 제대로 집행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추가 입법을 하려는 것입니다.”
표창원 의원의 말대로 개고기 관련 법안은 식용견 불법화를 주장하는 쪽과 합법화를 주장하는 쪽이 각각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핵심은 개를 가축으로 규정하느냐 마느냐다. 축산법에 따르면 개는 소, 말, 양, 돼지, 사슴, 닭 등과 더불어 가축에 포함된다.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도 개는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축산물위생관리법에서 개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도살 등 위생 기준의 규율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개들은 전국 재래시장의 지정받지 않은 도살장에서 비공개적으로 도살된다.
“강하게 표현하자면, 우리 정부가 비겁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축산법상 개를 가축에서 제외해보세요. 그럼 개에 대한 도축 행위는 어떤 법에 근거해도 불법행위가 돼요. 그런데 묘하게 슬쩍 넣어놨어요. 그런데 그런 개를 정부가 가축으로 보고 관리를 하려면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넣어야 해요. 그런데 명시적으로 그렇게 해버리면 대한민국은 개고기를 합법화하는 나라가 되어버립니다. 그걸 못하는 거예요.”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위생관리법에서 개를 다루자? 그것도 못하죠. 항생제 수치가 높고, 세균이 들끓는 개고기를 못 팔게 한다는 건 다시 말해 그 수치 이하면 팔아도 된다는 말이에요. 현재는 (정부가) 완전히 방치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비위생적이고 참혹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 모른 체하는 거죠. 왜? 그걸 들여다본 순간 책임이 생기고, 단속해야 하고, 단속 근거법은 애매모호하고…. 이런 상태가 계속 방치돼 왔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이 부분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가 전혀 없어요.”
전기봉 도살은 동물학대인가
개고기가 공급되는 통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유기견이 포획돼 도살장이나 개농장으로 넘겨지는 경우다. 둘째, 시골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이른바 ‘개장수 트럭’을 통해 민간의 백구, 황구 등을 공급하는 경우다. 셋째, 대량 사육을 하는 개농장에서 자체 번식해 공급하는 경우다. 내년 3월21일부터 시행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판매하거나 죽일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추가됐다. 따라서 유기견을 포획해 도살·판매하면 동물학대가 되므로, 첫 번째 공급 통로는 막힌다.
재래시장 도살장으로 운반된 개는 ‘전기봉’ 도살(전살법)로 죽는다. 개의 눈이나 입에 전기충격을 가해 개를 마비시키고 털 뽑는 기계에서 털을 뽑고 고기로 가공된다. 동물자유연대가 발행한 ‘한국 개고기 산업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한 번의 전기충격으로 죽음에 이르는 개는 없다. 몸만 마비됐지 의식이 있는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현행 법률 체계에서도 개 도살은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에 해당하므로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를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 △노상 등 공개된 장소에서 죽이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아니하는 행위로 인하여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그밖에 수의학적 처치와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 등으로 보고 있다. 쟁점은 전기충격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인지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인지 여부다. 최근 인천지방법원에서는 “현실적으로 개가 식용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전살법으로 개를 도축한 것이 학대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동물단체는 이 판결에 반발했고, 2심이 진행 중이다.
표창원 의원이 동물전문 매체 <애피> 신소윤 기자(가운데), 박선하 피디(왼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표창원 의원의 ‘개고기 금지법’ 발의 계획으로 개고기를 둘러싼 법률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방안은 여러 가지다. 동물보호법에서 개 도살을 ‘동물학대’로 좀 더 명확히 규정하는 방안과 별도의 조항을 두어 개 도살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이 있다. 대만의 경우 개를 반려동물로 정의하고, 반려동물 식용 금지 조항을 동물보호법에 넣었다.
표창원 의원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다시 올릴지, 별도의 특별법을 발의할지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개와 고양이 등만 도축하는 것을 금지할지, 대만이 올 4월 통과시킨 법령처럼 개·고양이 고기 섭취까지 전면 금지할지 또한 논의 과정에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표창원 의원은 법안이 통과됐을 때,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대목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육 농가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많이 늦었지만 책임 부서에서 업종 전환책을 발빠르게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는 일단 입법을 할겁니다. 국민 여론과 정치계 내에서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구할 거예요. 이번 국회에서 안되면 다음 국회에서, 계속 시도를 할겁니다. 이건 시간의 문제예요. 언제가 되든 통과가 될 거니까 육견협회든 개 식용 산업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은 하루 빨리 업종 전환을 하는 게 좋을 거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지원과 전환 노력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게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문턱에 머물러 있던 개농장의 수천만 마리 개들에 대해서도 “입양·중성화 수술·수령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관리소 마련 등 대안과 이에 따른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소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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