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차한 고양이책 전문 서점 ‘슈뢰딩거’에서 고경원 작가가 ‘히끄 등신대’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도에 사는 고양이 히끄를 만나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편집자인 고경원 작가가 직접 제작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숭동 고양이책 전문 서점 ‘슈뢰딩거’에서 만난 고경원 작가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도서 발주 전화에 응대하며 “갖고 있는 책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인터뷰를 하려 앞에 앉아 있는 기자에게 “죄송해요, 그런데 혼자서 일하다보니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어서…”라고 말하며 사과했다.
책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등으로 유명한 고경원 작가가 고양이 글을 쓰기 시작한지 15년만에 고양이책 전문 1인 출판사 ‘야옹서가’를 열었다.
첫 책 ‘히끄네집’은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모은 제주 고양이 ‘히끄’와 반려인 이신아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씨는 책이 갓 인쇄소에서 나온 20일부터 인터뷰를 하는 27일까지, 일주일간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고경원 작가는 “3천부나 찍었으니 쌓아두고 천천히 팔아야지”하는 마음으로 판매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책이 빠지는 속도가 예상치 못한 수준이었다. 주문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독자들이 헛걸음하지 않도록 오프라인 서점 재고 현황을 공유해야 할 정도였다. “주말 포함해 3일 만에 1천 부 가까이 나갔어요. 보통 500부 재고가 남았을 때 안정 부수라고 하는데, 24일에 헤아려보니 190부 정도 밖에 안 남은 거예요. 그날 부랴부랴 재쇄에 들어갔죠.”
어느덧 사람의 세계에 스며들어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이웃 아이와도 친근하게 지내게 된 히끄. 야옹서가 제공.
‘히끄네집’은 제주로 이주한 ‘히끄 아부지’ 이신아씨가 길고양이 히끄를 만나 인연을 맺고 결국 가족으로 맞는 과정을 그린 ‘성묘 입양 에세이’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주대스타’라 일컬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히끄지만, 책에 쓰인 글들은 SNS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저 발랄하고 귀여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고양이가 주는 위로라는 게 분명히 있어요. 단순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아니라, 입양으로 인해 사람과 고양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죠. 그걸 알아봐주는 독자들의 후기를 봤을 때,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고경원씨가 말했다. 책이 출간된지 열흘 째인 30일 오전, SNS에 오른 ‘히끄네집’ 후기는 약 1천 건에 육박한다.
히끄의 반려인 이신아씨는 법조인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부모님의 기대에 도통 부응할 수 없었던 20대를 보냈다. 대학 졸업 후 2년 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보내다 도피처로 제주를 택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길에 사는 동물들과 친해졌다. 밥을 얻어 먹으러 오는 고양이 중에 유독 마음이 쓰이던 고양이가 히끄였다. 털이 하얘서 “희끄무레하다”며 히끄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런 히끄가 어느날 갑자기 20일이 넘도록 사라졌다. 죽은 건 아닐까, 영역을 바꾼 걸까,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을 이어가던 와중에 히끄가 돌연 김칫국물을 묻힌 꼬질꼬질한 얼굴로 나타났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뒤지다 양볼에 김칫국물을 묻힌 모습이 딱했다. 이신아씨는 사람을 잘 따르는 히끄에게 좋은 반려인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양 전 아이의 건강 상태 등을 확인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 보호를 했다. 하지만 임시 보호 열흘 만에 그는 히끄를 다른 곳에 입양 보내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히끄 아부지’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딘가에 있을 히끄 엄마의 소중한 이름을 쓸 수는 없어 여성 반려인임에도 '아부지'로 일컬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20대를 보낸 이신아씨는 히끄 아부지가 된 이후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둘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갖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허름하고 오래된 농가 주택을 얻었다. 곰팡이와 벌레가 득실거리고,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집에서 단 둘만 있으려니 처음에는 무섭고 막막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히끄를 내려다보니 첫 날부터 천하태평하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그 공간에서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가며 히끄와 반려인 이신아씨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길에서 생활하던 히끄의 ‘회색 고양이’ 시절. 꾀죄죄한 모습 때문에 ‘회끄 시절’이라고 칭한다. 야옹서가 제공
이 책의 기획자이자 편집자인 고경원씨는 작가와 히끄의 삶에 깊숙이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흰 털이 회색처럼 보이던 꾀죄죄한 ‘회끄’ 시절의 히끄와 꿈을 찾지 못하고 방랑하던 청년의 삶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얼마나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분도 스스로 치유가 된 거죠. 히끄에게 위로 받고, 같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이야기가 ‘단짠단짠’하게 이어져요.”
성공적으로 첫 책을 세상에 내보내고, 어엿한 사장님 직함을 달았지만 고씨는 직장인이자 작가로서 보냈던 이전의 일상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명색이 사장님이 되었지만 실상은 아르바이트 하랴, 출판사 꾸리랴 ‘투잡’ 생활이 바쁘다.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을 그만 두고, 잘 나가던 고양이 작가로서의 일도 쉬면서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응원보다는 우려의 말을 더 많이 하기도 했다. “동물 중에서도 고양이로 좁혀서 책을 만든다는 게, 시장이 너무 작지 않겠냐는 거였죠. 하지만 제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선택한 길이에요. 만약에 고양이 전문 출판사가 있었으면, 제가 거기에 들어갔을 거예요. 고양이 책은 다른 여러 출판사에서도 나오고, 다른 출판사에도 책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고양이를 잘 이해하는 편집자는 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하고 싶은지를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걸 제 장점이라 생각하고 책을 만들어 나가려고 해요.” 야옹서가는 ‘히끄네집’ 이후 성묘 입양, 육아육묘, 길고양이 이야기 등 고양이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신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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