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라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활동가는 지난 4월 개농장에서 입양한 코커스패니얼 ‘뿌꾸’와 함께 살고 있다. 14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지난 1월 하늘로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똑같이 생긴 개가 농장에 있었고 개농장주를 설득해 집으로 데려왔다.
뿌꾸는 누군가 농장에 데려와 버린 개였다. 말썽도 안 부리고 농장에서 왔다는 티도 안 날 만큼 착한 뿌꾸의 첫 모습은 참혹했다. 털은 대걸레 같았고 귀에는 시멘트가 붙은 것처럼 털과 이물질이 뭉쳐 있었다. 뿌꾸의 새끼들은 미국으로 입양을 갔고, 뿌꾸는 김 활동가의 가족이 되었다.
김나라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활동가는 지난 4월 개농장에서 반려견 ‘뿌꾸’를 구조해 함께 살고 있다. 김나라 제공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김나라 활동가의 반려견은 개농장에서 데려왔다. 김 활동가가 처음 만났을 때 반려견 뿌꾸의 모습은 참혹했다. 농장에서는 뿌꾸를 누군가 농장 앞에 버리고 갔다고 설명했다. 김나라 제공
김 활동가는 2015년부터 7월까지 전업이나 폐업을 원하는 영세한 개농장 7곳에서 개 1080마리 이상을 사서 미국으로 보냈다. 그래서인지 농장주들과의 소통 경험이 많다. “농장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 김 활동가는 오랜 소통 끝에 개를 구조하면 표정이 밝아진다.
“대규모 구조를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개들을 농장에서 데리고 나오는 날까지 농장을 오가면서 저 혼자 개들에게 말을 건다. ‘다음에는 같이 나갈 거야’라고 소곤대면 개들도 알아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개농장주들의 전업 지원 요청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김 활동가는 “최근에는 농장주의 따님이 이메일로 ‘그만두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분들이라도 정부가 전업을 지원해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현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정책팀장이 지난여름 부산시 구포시장의 한 개고기 가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현지 제공
김 활동가가 영세한 농가의 전업이나 폐업을 유도하고 있다면, 공장식 대형 개농장의 생산과 수급 구조를 무너뜨리는 데에 집중한 이도 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김현지 정책팀장은 개농장에서 소비하는 음식물쓰레기에 주목하고 있다. 개 식용 산업구조의 끝에 대형 개농장이 있다고 보고, 농장 운영이 가능하도록 유지하는 데에는 무비용으로 음식물쓰레기가 개들의 식량이 되어 농가로 흘러들어가는 걸 문제라고 보았다.
김 팀장은 “식용개 농장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준다며 오히려 돈을 받기도 한다. 개 사료로 음식물쓰레기 조달하는 걸 차단한다면 개농장을 운영하는 데 수지가 맞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개농장을 하려 할 사람은 없을 거다. 어차피 제대로 된 사료를 먹이면서 키울 때 수익이 나지 않을 만큼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산업구조라면 종식으로 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이 소속된 카라는, 개농장이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할 때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폐기물관리법과 개에게 음식물쓰레기를 사료로 먹일 때는 가열·멸균해야 한다는 사료관리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 7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팀장은 언론을 통해 개농장주들이 말하는 ‘생존권’을 투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개 100마리 내외를 사육하는 영세한 일부 개농장주들은 생존권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1000마리 이상 사육하는 기업형 개농장은 정부의 방치 속에서 영세한 농장주의 눈물, 개들의 죽음 위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저는 개농장을 갈 때마다 ‘여기가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이 맞나’ 생각해요. 국회의원과 환경부 공무원과 같이 방문해도 못 들어가게 농장주가 막아요. 한번은 전기도살 관련한 증거를 보이며 대화를 시작하자 대화를 거부하시면서 ‘너도 이걸(전기꼬챙이)로 지져줄까’라고 하는 말까지 들었는데… 우스갯소리지만 개농장주 중에는 부자도 있습니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지난 9월15일 경기도 부천의 개농장을 폐쇄하며 개 44마리를 구조했다. 임영기 제공
동물권단체 케어 임영기 사무국장은 개농장에 갔다 나올 때마다 영화 <옥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고 했다. 한 생명이라도 구조한다는 기쁨과 동시에 슈퍼돼지 수만 마리 중에 옥자만 구조해 오던 영화 속 장면에서 느껴지는 미안함이 섞인 표현이었다. 그는 보통 “한계가 있으니” 대규모 구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돌아보니 바쁜 한 해였다. 임 사무국장이 소속된 케어는 올해 재래시장 도축장을 철폐하기 위해 현장을 적발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관련자들을 고발했다. 부천에서 44마리의 개를 키우는 농장을 폐쇄했다. 또 9월22일 육견단체의 광화문 시위에 맞대응시위를 했다. 지난 24일에는 ‘개 식용 금지 입법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를 열어 개, 고양이 식용 금지법을 통과시킨 대만 사례를 공유하고, 아직도 개를 먹는 아시아 각국의 활동을 소개했다.
임 사무국장은 지난 7월 경기도 남양주와 용인에서 개도축장의 냉장고에서 육수를 내기 위해 잘린 개 십여 마리의 발목만 모아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순박한 농민들도 많으세요…. 다만 불법인지도 잘 모르고 (사료, 분뇨 처리 등 개농장을 운영)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법적 테두리라도 먼저 지켜달라는 거예요. 예전만 해도 개농장 가면 폭력적으로 쫓겨났는데 지금 분위기가 그때 같지는 않은 것 같아요. 최근에 전화가 왔는데 전업 도와주면, 송아지 한 마리 사주면 바꾸겠다고 했어요.”
지난 18일 경기도 시흥시의 개 번식장에서 78마리를 구조했다. 채일택 제공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지난여름 개고기 항생제 남용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 전국 25개 재래시장에서 개고기를 사다 항생제가 얼마나 검출되는지를 알아보는 조사를 의뢰했고 조사한 개고기의 60% 이상에서 항생제 사용을 확인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비위생적이고 동물복지에 반하는데다 빈 약통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는 개농장 사육 환경을 보아왔다. 항생제가 남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해왔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할 수 없었던 것은 이참에 개고기를 식품으로 인정하고 안전하게 관리하자는 합법화 주장이 거세질까 봐서였다. 하지만 항생제 남용 실태가 사실로 확인됐다 해도 사회 분위기가 합법화 요구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서, 채 팀장은 개고기 식용 반대운동에 힘을 내고 있다. 대신 채 팀장이 속한 동물자유연대는 대한육견협회로부터 위임받은 한 법무법인에서 관련 자료를 요청받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법적 조치를 당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은 육견협회에서 말하듯 ‘이 개(식용견)와 그 개(반려견)가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 경험과 논리로 반박했다.
“일곱 군데 개 농장을 다녔는데 식용견 농장에는 뿌꾸같이 품종견부터 잡종까지, 새끼부터 대형견까지 모든 종과 모든 크기의 개가 다 있다. 처음부터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농장에 가면 식용견이 되는 것이다.”(김나라)
“맹견 규제 논란이 있을 때 사회에서 맹견을 어느 종으로 지정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듯이, 몸이 크고 품종견이 아니라는 이유로 식용견이라고 구분할 순 없다.”(김현지)
“가 보면 이 개(식용견)나 그 개(반려견)나 같다. 반려견이 거기 있으면 식용견이 되는 거다. 심지어 잃어버린 개가 개농장에 가 있으면 그 개는 반려견인가 식용견인가. 동네 시골에서는 묶어둔 개가 개장수에게 팔려가기도 한다.”(임영기)
“사람도 노예와 시민이 다르고 인종마다 인권이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다 같은 사람으로서 권리를 누리며 산다. 같은 생명인데 누구는 식용으로 태어났고 누구는 보호받으며 살 수 있다는 기준이 있을까.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니냐고 (육견인들에게) 묻고 싶다. 단지 사육하기 쉽고 수익을 내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을 뿐이지, 그런 이유가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채일택)
왜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개만 먹으면 안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답했다.
“개만 먹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개 식용 반대운동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같은 생명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하는 윤리적 문제다. 개를 식용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인간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줄여나가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개 식용을 금지하지 않으면 다른 동물복지를 이야기하지 못한다.”(채일택)
“동물보호단체는 농장 동물이나 다른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도 일한다. 모든 인류가 육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육식을 충분히 하고 있으니 더는 육식 소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개는 인류와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고 점점 가족, 친구같이 의지하는 동물이란 특수성도 있다.”(김나라)
생명을 살리는 활동은 쉼이 없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은 오는 28일에는 174마리의 개가 있는 개농장, 3월에는 100여 마리가 있는 개농장 등 두 곳의 전업을 지원하며 개들을 더 구조할 계획이다. 카라는 음식쓰레기 급여 문제를 계속 파헤치고, 개농장주가 개에게 전기충격을 줘 죽이는 ‘전살법’이 유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계속 사법 싸움을 한다. 케어는 개 식용 금지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는 개 식용 반대 운동을 상시적 캠페인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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