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자란 아이는 이제 내 품에 다 들어오지 않을만큼 컸다.
내 이름은 만세, 육아하는 고양이다.
공기에서 서늘한 기운이 싹 사라졌다. 길게 늘어지는 오후 햇살이 온 집안을 틈없이 메꾸는 계절이 되었다. 그때도 그랬다. 기온이 어느덧 훅 올라가 초여름이 됐을 때, 나는 지금 나와 함께 사는 아이를 만났다. 나는 중성화 수술을 한 수컷 고양이이므로, 내가 낳았을리는 만무하고 내 반려인들의 ‘미니미’를. 그 때 내 나이 4살, 당시 나는 공놀이를 좋아하고, 미세하게 움직이는 창밖의 나뭇잎에도 흥분하고, 지금보다 허리 둘레가 1인치는 적었으며, 핑크색 발바닥이 쫀쫀했던 ’청년냥이’였다. 3kg이 조금 못되게 태어난 아이는 5kg가 넘던 나보다 덩치가 작았고, 고양이처럼 네 발로 기지도 못했으며, 그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때까지 울기만 했다.
그랬던 우리에게 5년의 시간이 쌓였다. 나는 8살 고양이가 되었다. 얼마 전 내 사료를 사러 동네 동물병원에 다녀온 반려인이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만세야, 네가 벌써 노령묘래.” 지난 몇 주,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구토를 몇 차례했다. 고양이들은 때때로 구토를 한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종류의 구토는 밥을 급하게 먹어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것을 게워낼 때(이 또한 잦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리고 그루밍을 하면서 삼킨 털이 ‘헤어볼’이 되어 뭉쳐서 나올 때.
나의 구토 패턴도 대체로 이랬다. 잘 씹었다고 생각했는데 몸과 마음의 속도가 달랐는지 사료 알갱이가 본래 모양 그대로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오거나, 털뭉치가 울컥하고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와 다른 형태의 구토를 했다. 횟수도 잦아졌다. 증상을 들은 수의사는 “고양이 나이 7살이면 이제 중년기에 진입해 움직임이 점차 둔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문제가 신장 질환이에요. 고양이들은 아픈 것을 숨기려 해요. 이제 1년에 한번 혈액검사도 하고 건강 관리를 해야 해요.”
아이는 함께 사는 반려견 ‘제리’의 간식을 제 손으로 챙겨줄만큼 자랐다. 우리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자란 아이는 이제 반려동물을 보살피는 입장이 됐다.
‘육아냥’ 5년차,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나는 나이가 들었다. 나만 시간이 훌쩍 흘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반려인 또한 지난 5년, 아이만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 밖에서 내가 나이들고 있었음에 놀란 듯 했다. 반려인에게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3~4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게, 왜 몰랐을까. 그동안 아이는 걷고, 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출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는데. 울음으로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던 아이는 이제 해사한 얼굴로 내 밥과 간식을 챙겨줄 정도로 커버렸는데, 그 사이에 돌봄 노동을 하는 누군가는 늙었음이 당연한 건데.
“놀아달라고, 만져달라고 다가올 때 피곤하다고 미루지 말 걸.” 반려인은 고양이 생을 통틀어 큰 5년이란 시간을 너무 무심하게 보냈음을 미안해했다. 하지만 후회란 인간들만 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 남은 시간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제 정성들여 보내면 되는 것을.
만세 전업육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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