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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견생’ 첫 바다 체험, 물은 짜고 파도는 높더라

등록 2018-08-10 11:19수정 2018-08-10 15:34

[애니멀피플] 중년견 제리의 ‘개수욕장’ 체험기
동물도 힘든 역대급 폭염 피해 떠난 여행
강원도 양양, 여름 한 달 개장하는 ‘멍비치’
‘애피’ 기자 반려견의 생애 첫 해수욕 경험
생애 첫 바다 여행에 나선 8살 치와와 제리. 몸이 약하고 겁 많은 성격 때문에 장거리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반려인의 우려와 달리 제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겼다.
생애 첫 바다 여행에 나선 8살 치와와 제리. 몸이 약하고 겁 많은 성격 때문에 장거리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었으나 반려인의 우려와 달리 제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겼다.
에어컨이 꺼진 한낮의 빈집에서 중년의 치와와 제리(8)는 거실 창을 등진 소파 아래로 기어 들어갔다. 올여름 제리의 가장 큰 수확은 집에서 에어컨 없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한 것일테다. 반려인들이 출근하고 나면,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는 집에서 더위를 견디고 있을 나의 충직한 친구를 생각하니 사람들끼리만 피서를 갈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5일 오전 강원도 양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멍비치’. 멍비치는 양양의 광진해변 중 일부 구간을 여름 한 철만 반려견에게 내주는 ‘반려견 전용해수욕장’이다. 눈치 보지 않고 반려견 입욕이 가능한 유일한 곳이나 마찬가지라 반려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법적으로 반려동물의 해수욕장 출입과 입수를 금지하는 명시적인 조항은 없지만 국내 정서상 개와 함께 해수욕을 맘 편히 즐기기는 어렵다.(관련 기사 ‘댕댕이와 해수욕이 불법이라고요?’) 멍비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팀이 다녀갔다고 한다.

멍비치 이용 금액은 1인당 1만원, 개는 5kg 초과 여부에 따라 5천원과 1만원이다. 파라솔·튜브 이용료는 별도다. 입장료를 내면 사람 샤워와 화장실, 개 샤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비누 사용은 불가해 물로 소금기를 씻는 정도만 가능하다. 입장시에는 사고 방지 등의 이유로 멍비치 측에서 개인 정보를 받는다. 반려인 연락처와 주소, 반려견 동물등록 유무 등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온라인에 개설된 멍비치 카페 회원의 경우 미리 정보를 제공해 확인 과정이 비교적 간소해지지만, 회원과 비회원 간에 이용 방식에 차이는 없었다.

확인서를 제출하자 입장 안내를 하던 멍비치 관계자가 “개를 꼭 안고 이동하라”고 당부했다. 달궈진 바닥에 개 발바닥이 화상을 입으면 살갗이 벗겨지고 짓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짠 바닷물을 들이킬 수 있어 깨끗한 물도 잊지 말고 챙기라는 말도 들었다. 멍비치는 평소 군사 지역이라 입장 안내를 하는 곳과 해변 사이에 철조망이 쳐 있었다. 철조망 넘어 해변에 파라솔 수십개가 펼쳐져 있었고 대형견과 중소형견이 쓰는 공간이 구분돼 있었다. 보통 해수욕장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지만, 하나 차이가 있었다면 배변 봉투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반려견이 배변을 할 경우, 반려인이 배변봉투에 담아 안내소에 가서 처리하면 멍비치 측에서 반려견 간식을 준다. 이벤트성 선물과 매일 저녁 30분간 진행되는 소독으로 위생 관리를 한다.

아이, 개와 함께 온 가족부터 친구 개들과 함께 온 청년들, 중년의 부부까지,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몸을 풀며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에서 막 나온, 옆 파라솔의 중년 남성이 자신의 반려견을 어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피야, 어야 갈까~? 아빠랑 저기 수영하러 어야 갈까?” 무표정했던 얼굴과 대비되는 다정한 말투가 다소 어색했지만, 멍비치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했다.

개들은 커다란 튜브에 올라 반려인과 함께 파도를 타기도 하고, 해변에서 공을 물어오며 뛰어놀기도 했다. 하지만 4kg 가량 나가는 치와와 제리가 즐기기엔 파도가 세고 높아보였다. 물가에 점점 가까이 가며 개를 적응시켜 안고 들어가 몸에 조금씩 물을 뿌려줬다. 평소 목욕을 좋아해 물이 낯설진 않은 듯 했지만, 파도가 우리를 한 차례 덮친 후 개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밀어닥치는 파도에 몸을 맞고, 썰물을 따라 몸이 딸려 갔다. 미리 준비해 간 반려견용 구명 조끼도 소용 없어 보였다. 물에 뜨기도 전에 휩쓸릴까봐 개를 꼭 붙들고 있어야 했다. 반려인도, 개도 혼비백산하게 하는 파도에 떠밀려 우리는 물밖으로 나왔다. 별 도리없이 모래밭에 앉아 있는데, 제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작은 구덩이를 파 모래찜질을 시켜줬다. 말은 안하지만 제리의 눈빛은 물 속보다 모래 속이 나은 듯했다. 처음 바다 수영에 도전하는 작은 개를 찬찬히 훈련시키기에는 파도가 너무 매서웠다. 옆 파라솔 중년의 남성이 어르던 흰 개가 반려인을 쫓아 바다로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가 어쩐지 이해가 갔다.

어쩔 수 없이 멍비치에서 철수한 우리는 숙소로 가던 중, 인근의 다른 해수욕장에 들렀다. 피서객이 적어 한산한 해변에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다. 멍비치에 비해 파도도 잠잠한 편이었다. 해변 산책을 하다 다시 수영에 도전해봤다. 제리를 안고 얕은 지점에 들어갔다. 몸을 아래에서 살짝 잡아주는데, 제리의 몸이 둥실 뜨는 느낌이었다. 살짝 손을 떼보니 네 발을 움직이며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절로 탄성이 터졌다. “제리, 해냈구나!”

8살 치와와 제리의 생애 첫 바다 수영. 뒷모습만큼은 수달 못지 않다.
8살 치와와 제리의 생애 첫 바다 수영. 뒷모습만큼은 수달 못지 않다.
제리는 이내 내가 먼저 물에 들어가면 부르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따라 들어왔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서 그는 수륙양용자동차처럼 모드를 전환했다. 네 발로 걷다가 물이 닿아 몸이 뜨면 자연스레 발을 저었다. 하지만 처음 겪었던 파도 때문인지 물결이 조금만 휘청거려도 불안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좀 더 잔잔한 바다에서 찬찬히 수영을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여행은 제리와 반려인인 나에게 작은 도전이었다. 평소 쉽게 위축되는 성격 때문에 낯선 곳을 불편해할 것 같아서 우리는 늘 그를 익숙한 지인에게 부탁하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건강 문제도 있었다. 뇌 질환으로 매일 항경련제를 먹고 있어 생각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까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우려 때문에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집 근처만 맴도는 처지도 딱했다. 아프기 전 제리는 호기심이 많고 무엇이든 흥미로워하는 성격이었다. ‘할아버지 개’가 되기 전에, 집 밖 세상을 구경시켜주는 것이 반려인의 욕심인지 개에게도 좋을지 여러 번 고민했다.

생각보다 거친 바다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앞으로 다른 여행을 하기에 충분한 경험치를 쌓고 돌아왔다. 개는 걱정이 무색하게 여행지에 잘 적응했다. 평소보다 활동량이 많아서인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낯선 숙소를 부지런히 탐색한 다음 가장 편안한 곳을 찾아 자리 잡았다. 여행 이틀째에는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해주자 코를 들이밀며 소심하게 친근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견생’ 가장 무더웠을 올해, 생애 첫 해수욕을 즐긴 제리는 올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양양/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영상·사진 박선하 PD sal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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