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연재중인 반려동물 일상 담은 웹툰들
개인 일상·낙서에서 출발해 자발적·비정기 연재에도 큰 공감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연재중인 반려동물 일상 담은 웹툰들
개인 일상·낙서에서 출발해 자발적·비정기 연재에도 큰 공감
끄적끄적, 전화통화를 하며 종이 한 귀퉁이에 낙서처럼 휘갈긴 반려견 그림이 웹툰이 됐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조용히 연재되는 일상툰들이 있다. 키니, 냇길이, 짜오, 야미, 홍시 등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들 웹툰은 모두 개와 고양이가 주인공. 반려인의 일상에 큰 몫을 차지하는 반려동물의 순간을 기록하다 자발적 연재를 하게 된 웹툰들을 모아봤다.
귀퉁이 낙서에서 태어난 캐릭터
인스타그램 ‘키니일기’(@meongdi)의 주인공 키니는 풋사과와 고구마를 사랑하고, 반려인 손에 간식이 없으면 애교 파업을 하는 3살 갈색 푸들이다. 반려인 얼굴에 엉덩이를 대고 자다가 방귀를 끼는 등 평범하고 재미난 일상이 키니일기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실제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건 반려인 배은영(27)씨다. “집에서 전화 통화를 하다가 늘 옆에서 기다리는 키니를 종이에 낙서하듯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거기에 ‘안녕?’ ‘간식 줘’ 같은 시시한 메시지를 써서 친언니랑 같이 보고 웃곤 했죠.” 배씨가 말한 태초의 키니일기다. 종이 낙서가 인스타그램으로 옮겨 갔고, 그림이 쌓이다 보니 이야기도 붙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남긴 공감 댓글은 연재의 원동력이다. “이게 에스엔에스의 중독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공감을 받으니까 이 얘기도 해볼까, 저 얘기도 해볼까 수다 떠는 느낌으로 그릴 거리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배씨가 말했다. 그렇게 ‘탄력’이 붙어, 최근에는 일주일에 3~4개 정도 게시물을 올린다. 어떤 때는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라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메모지에서 태어난 또 하나의 캐릭터가 있다. 냇길이(@natghil)는 제주에 사는 7살 누렁이다. 반려인 한은우(가명·43)씨는 2011년 제주로 이주해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잡화점에서 물건을 팔았다. 일 하다 한가할 때면 집에 있는 냇길이가 생각났다. 메모지에 그리던 냇길이 그림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한씨는 “처음에는 가볍게 스케치 정도로, 순간을 포착하고 기억하기 위해 그렸다”고 말했다. "저 혼자만 알아볼 수 있게 그리다가 점점 보는 사람도 늘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시간도 많아지면서 좀 더 공들여 그리기 시작했죠."
냇길이와 한씨가 가족이 된 사연은 특별하다. 2012년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하러 강정을 찾은 한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 냇길이를 만났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를 어린 누렁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곳을 또 갔는데 이번에는 그 누렁이가 건물 한켠에 묶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연유를 물으니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하던 프랑스인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키우던 개라고 했다. 그 프랑스인이 강제출국 통보를 받고 짐도 꾸릴 새 없이 24시간 안에 한국을 떠나야 하는 바람에 누렁이가 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냇길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던 한씨가 “그렇게 온 냇길이가 벌써 중년이 됐다”며 아득해했다.
고양이 이야기도 빠질 리 없다. 페이스북 페이지 ‘여섯시 내고양’(sixoclockmycat)과 인스타그램 ‘짜오와 야미’(@jjaoyami)는 반려묘 일상을 기록하다 캐릭터 굿즈 판매, 책 출간까지 이어진 사례다.
지난 1월부터 페이스북에 ‘여섯시 내고양’을 올리기 시작한 정대준(24)씨는 여자친구의 반려묘 진남이와 젊은이, 동네 동물병원에 사는 홍시와 담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염이 있어서 가끔 콧물을 흘리는 홍시, 강아지처럼 반려인을 따르는 진남이 등 외모와 성격에 따라 캐릭터를 잡고 재미삼아 올리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고 반응을 보이니까 신기했어요. 그러다 보니 10년째 고양이를 키우며 여자친구가 쌓은 반려 노하우 같은 정보성 만화까지 주제를 넓혀나가기 시작했죠.”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 고양이들은 정씨의 진로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정씨는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할 계획이었는데 여섯시 내고양을 계기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정씨는 고양이들의 캐릭터를 내세워 메모지, 에코백, 뱃지, 스티커 등 물건을 만들어 판매할 온라인 상점을 준비 중이다.
즉각적 반응과 소통, SNS 웹툰의 힘
고양이 짜오와 야미가 주인공인 웹툰은 수채 물감과 색연필로 그린 따뜻한 그림체가 특징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종이 질감의 책을 보는 듯하다. 두 마리 고양이의 이야기를 연재하는 ‘짜미 작가’의 본업은 동화작가다. 이름과 나이도 밝히지 않은 그는 평소 동화책에 그리는 그림톤이 짜오와 야미 웹툰과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짜미들을 그릴 때면 작업하다 쉬는 시간을 갖는 느낌”이라고 했다. “일이 막 부대껴서 밤새 작업을 해야할 때면 피곤하기도 한데, 짜오와 야미 그리는 시간은 제가 놀듯이 하는 일이어서 재미있어요.”
동화책 작업과 다른 디지털 공간에서의 연재가 작가 개인적으로도 흥미롭다고 한다. “댓글의 힘이 대단해요. 제가 어린이책을 하다 보니 독자 반응을 들으려면 출판사를 거쳐야 할 때가 많았는데 에스엔에스에서는 즉석에서 반응이 돌아오니까요. 단순히 저 혼자만의 기록을 넘어 소통하는 재미가 있어요.”
네 작가 모두 본업이 그림 그리는 일과 연관되어 있지만 공통적으로 “처음부터 힘을 주고 그리거나, 매체에 연재하듯 일정을 꼬박꼬박 정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 이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힘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다독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키니일기. 배은영 제공
키니일기. 배은영 제공
냇길이. 한은우 제공
냇길이. 한은우 제공
여섯시 내고양. 정대준 제공
여섯시 내고양. 정대준 제공
짜오와 야미. 짜미 작가 제공
짜오와 야미. 짜미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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