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리트리버와 트위드워터스패니얼의 교배로 태어난 골든리트리버. 고관절의 발달이 안돼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고관절 이형성증에 시달린다. 게티이미지뱅크
근친교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반대편 유전자마저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라면? 나 같은 사람이 만들어진다! 물론 같은 위치에서 마주보고 있는 두 유전자가 동시에 돌연변이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근친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 친척들 중에는 눈 크기를 결정하는 유전자 한 개, 혹은 두 개 모두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끼리 결혼을 한다면, 눈이 작은 후손이 태어날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 합스부르크가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들은 가문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근친혼을 주로 했고, 그러다 보니 축 늘어진 입술이 대대로 유전될 수밖에 없었다. 개가 더 이상 집을 지키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개에게 공격성 이외의 특징들, 그러니까 충성심이랄지 미모,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작은 체구 등등을 요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선택교배라는, 일종의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졌다. “이 예쁜 개를 저 예쁜 개와 교배시키면 더 예쁜 개가 나오지 않을까?” “나는 코가 납작한 개가 좋더라. 쟤랑 쟤를 교배시키면 가능할 것 같은데.” 태어난 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버려졌고, 업자의 마음에 든 개들은 살아남아 소위 ‘순종견’이 됐다. 우리가 아는 견종의 90%는 지난 100여년 사이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_______
골든리트리버, 시츄… 예컨대 1868년 더들리 마조리뱅크스라는 부동산업자는 곱실대는 털을 가진 ‘누스’라는 이름의 리트리버를 스코틀랜드산 트위드워터스패니얼인 ‘벨르’와 교배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유명한 골든리트리버다. 한국에서 특히 선호되는 시츄는 중국 황실에서 키우던 페키니즈와 티벳의 라사압소를 교배시켜 만들었다.
중국 황실에서 키우던 페키니즈와 티벳의 라사압소를 교배시켜 만든 시츄. 게티이미지뱅크
치료법 없는 유전병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형제자매, 부모자식간의 교배는 없어졌겠지만, 어차피 그들 모두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였고, 이는 사라지지 않고 후손들에게 전파됐다. 대표적인 것이 고관절 이형성이다. 고관절의 발달이 안돼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병인데, 진단도 어렵지만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견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고관절 이형성에 시달리는 개는 골든리트리버만이 아니어서, 세퍼드나 세인트버나드 등 만들어진 큰 개들에서도 이 유전병의 빈도가 높단다. 큰개가 아님에도 지인이 키우는 개 한 마리는 태어난 지 채 1년도 안됐는데 앞다리의 선천성 기형이 발견돼 얼마 전 큰 수술을 받았단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집 강아지 한 마리도 뒷다리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조만간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_______
순종 집착이 낳은 비극 과거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내가 키운 개 중 가장 건강했던 개는 소위 말하는 잡종개였다. 진돗개와 다른 개의 교배로 태어난 그 개는 뭐든지 잘 먹었고, 아픈 데도 거의 없었던 데다 머리까지 좋았다. 그럼에도 난 그 녀석이 순종이 아니란 이유로 그 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끄러워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지금의 나 역시 순종 제일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게 비단 나만의 문제일까? 순종을 증명하는 용도로 변질된 혈통서가 판을 치고, 순종 중의 순종을 가리려는 취지의 도그쇼가 수시로 열리는 이유는 나같이 순종에 집착하는 인간이 많아서가 아닐까? 이것만 기억하자. 순종에 대한 집착은 견주는 물론이고 해당 개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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