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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화마 속 줄에 묶인 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등록 2019-04-14 14:32수정 2021-01-13 14:25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 목줄 풀어주고 대피하라”… 동물 대피 여론 들끓은 고성 산불
기르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위기 상황에서 혼자 두지 않는 것
급박한 상황에서 반려견과 함께 탈출하지 못해 발을 구른 이재민도 있었다. 6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천리에서 만난 한 주민의 개는 시커먼 연기 속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반려인과 만났다. 고성/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급박한 상황에서 반려견과 함께 탈출하지 못해 발을 구른 이재민도 있었다. 6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용천리에서 만난 한 주민의 개는 시커먼 연기 속에서 화상을 입은 채 반려인과 만났다. 고성/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미국의 지질학자 데비이스는 탐사대원 제리와 함께 남극탐사에 나선다. 제리는 8마리의 썰매개, 그러니까 시베리안 허스키들을 데리고 간다. 얼음이 깨지며 데이비스가 물에 빠졌을 때, 그 개 중 한 마리가 밧줄을 가져다줘서 데이비스는 목숨을 구한다. 데이비스와 대원들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남극을 떠나야 하는데, 최악의 폭풍이 오는 바람에 개들을 데려가지 못한다.

제리가 다시 남극에 가는 것은 그로부터 175일이 지난 후, 그 시간 동안 개들은 혹한의 땅 남극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한다. 2006년 만들어진 영화 <에이트 빌로우> 얘기다. 1958년 일본 탐험대가 겪은 사건이 영화의 모티브다. 실제 사건은 영화와 다를 테지만, 여기서는 영화에 나오는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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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m 줄에 묶인 개 아직 많다

제리가 개들을 데려가지 못한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개들을 묶어놓고 그냥 가버린 점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그 바람에 개들은 추위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4일을 보내야 했다. 안 되겠다 싶었던 개들은 결국 목줄을 끊는 데 성공하지만, 끈 대신 쇠사슬로 묶어놓은 개는 결국 탈출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남은 개들은 그 뒤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힘겨운 삶을 계속한다. 특출한 사냥 실력으로 갈매기도 잡아먹고, 죽은 고래를 먹다가 바다표범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개들이 남극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낭만적으로 그린 영화와 달리 실제의 삶은 개들에게 훨씬 더 가혹했으리라.

영화에선 제리가 다시 남극을 찾았을 때 8마리 중 6마리가 살아남아 그를 반갑게 맞는 것으로 나오지만, 일본 탐험대가 2년이 지난 후 다시 남극에 갔을 때 생존했던 개는 15마리 중 2마리에 불과했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지만, 주인을 다시 만난 개들의 태도도 영화와 달랐다. 영화는 살아남은 개들이 제리에게 반갑게 안기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로는 개들이 주인을 외면했다나. 난 내가 들은 얘기가 맞기를 바란다. 자신을 버린 주인에게 계속 충성하는 건 아무리 개라도 너무하지 않은가.

강원도 고성에서 큰 산불이 났다. 두 분이 생명을 잃었고, 수많은 분들이 집과 재산을 잃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반려인으로서 안타까운 점을 덧붙인다면,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들이 죽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제리가 목줄을 풀어주지 않고 그냥 간 것처럼, 개를 묶어놓은 채 대피한 분들이 많은 탓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서 갑론을박이 있다.

그럴 수 있지’쪽: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개 목줄 풀어줄 정신이 어디 있어?

‘너무해’쪽: 급박한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했다면 목줄은 풀어줬어야지 않느냐. 개 목줄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고.

강원도 고성 산불에 불에 탄 한 불법 개농장. 이곳에서 개들은 철창에 갇힌 채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강원도 고성 산불에 불에 탄 한 불법 개농장. 이곳에서 개들은 철창에 갇힌 채 탈출하지 못하고 죽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그런데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개를 묶어서 키우는 문화다. 이 나라엔 1~2미터 남짓한 목줄에 묶인 채 사는 개들이 아직도 많다. 집안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를 하고,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개는 외롭다. 벌렁 누워서 애교도 부리고 공도 주워오고 싶지만, 야속한 견주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하염없이 앉아있는 개, 생존하기 위해 주는 밥을 먹지만, 그것 외에 그 개한테 대체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그런 와중에 불이 났다. 가족들은 자신을 놔두고 재빨리 달아난다. 불길은 점점 다가온다. 그 불길을 보면서 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에게 이런 대접밖에 해주지 않은 주인을 한 번쯤은 원망하지 않았을까?

참사를 겪은 것은 개농장 개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사 한 대목을 인용한다. “봉포리 개농장의 개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 갇혀서 죽은 21마리의 개들은 닥쳐오는 불길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친 모양새로 몸이 굳었다. 몸과 다리는 기괴하게 뒤틀렸고, 숨이라도 편히 쉬겠다는 듯 얼굴만 철창 사이로 내민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뉴시스 “하도 짖어 나와보니…10명 구한 영웅犬”)

불길이 다가올 때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살려달라고 얼마나 울부짖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개농장에서 다행히 화마를 피해 목숨을 건진 개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털이 불에 그을렸고 몸은 재투성이가 됐다. 사람의 소리가 나자 살려달라는 듯 처절하게 짖어댔다. 연기를 마신 탓에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연신 ‘켁켁’대며 기침을 하면서도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몸을 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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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서 구하지 못할 거면 기르지 마시라”

사람이 중요하지 개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이든 자신이 기르기 시작했다면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기사에 나온 개농장 주인은 화마에 개를 방치한 것도 모자라,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재난이 나면 사람도 힘들지만, 개들은 더 힘들어진다. 한 사람의 인성은 갈등 상황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괜찮은 견주인지 아닌지가 판가름나는 것도 바로 재난을 당했을 때다. 위기의 순간에 챙겨주지 않을 거라면 아예 기르지 마시라. 그런 견주에게 충성하는 개를 보는 것 자체가 비극이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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