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신소윤이 만난 애니멀피플
시골 한의사이자 평화운동가 고은광순과 그의 반려닭
시골 한의사이자 평화운동가 고은광순과 그의 반려닭
26일 평화운동가이자 한의사인 고은광순씨가 충북 옥천에 있는 자택이자 일터인 솔빛한의원 뒷마당 닭장에서 닭들을 지켜보고 있다.
“제 명대로 살아보라고” 기르기 시작한 닭 고은씨의 말대로 닭의 자연 수명은 10년 안팎에서 길게 30년까지다. 하지만 공장식 농장에서 태어난 육계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고기가 되고, 산란계는 1년 6개월~2년간 알을 낳다 생산력이 떨어지면 도태된다.
닭장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닭들. 고은씨의 닭들은 종일 산책을 한다.
닭을 키우며 알게 된 것들 닭장 문을 열면 닭들은 해방되는 동시에 먹이사슬의 그물 아래 고스란히 놓이곤 했다. 매, 올빼미, 족제비, 고양이 등이 산책 나온 닭을 노렸다. 까마귀는 열린 닭장 문으로 들어와 달걀을 입에 물고 사라졌다. “아슬아슬하게 입에 달걀 물고 가는 까마귀를 보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저들도 제 새끼 살리려고 저러는구나.” 고은씨가 아득한 눈으로 말했다.
닭 지키는 반려견 로로. 반려견이 된 지 1년 됐지만 역할이 대단하다.
고기도, 알 낳는 도구도 아닌 생명 고은씨에 따르면 알을 품기 시작한 암탉은 “붉은 볏이 푸르딩딩 창백해지도록” 고단함을 이겨내고 모든 알이 부화할 때까지 품는다. 밥을 줘도 부리나케 먹고 다시 달려가고, 목이 타도 정신없이 물을 먹고 달려간단다. 그렇게 꼼짝 않고 알을 품다 보니 몇 년 전 이런 적도 있다. “한 마리가 닭장 거의 꼭대기 쪽에 어떻게 올라가서 알을 품더라고요. 근데 거기 위치가 철망으로 된 지붕이랑 가까웠어요. 한밤중에 족제비인지 누가 철망을 찢고 닭을 잡아갔어요. 그 정도로 안 움직여요.” 들여다보니 십여 마리 닭의 사회에도 역할이 있고, 그들만의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알을 품을 때가 되면 수탉들은 장소에 가장 먼저 들어가 바닥을 탕탕 치며 기울어지진 않았는지 확인하곤 했다. 맛있는 먹이는 병아리들을 키우는 암탉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병아리들이 마당을 돌아다니다가 벌레를 발견해도 절대 먹지 않고 “꼬꼬”하고 신호를 보내 암탉이 먹게 했다. _______
닭 머리가 나쁘다고? 그런데도 어쩐지 마음이 더 쓰이는 쪽은 알을 품고 키우는 어미 닭이었다. “암탉이 알을 다 부화시키고 나면요. 그때부터 병아리를 가르치기 시작해요. 만약에 사과 박스 같은 데서 알을 낳았다면 깔고 앉았던 지푸라기를 한쪽으로 모아 산을 만들어줘요. 병아리들이 딛고 올라가 나갈 수 있게요.” 닭은 머리가 나쁘다는 오해도 풀렸다. 그가 지켜본 암탉의 병아리 교육은 지혜롭고 꾸준했다. “병아리가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터 발로 땅을 헤집는 동작을 계속해요. 그 동작을 하면서 곡식도 집어 먹게 하고, 벌레도 집어 먹게 하고 열심히 가르쳐요. 그때는 내가 문을 열어줘도 어미는 안 나와요. 새끼들 지켜야 하니까.”
고은광순씨가 자연과 함께 하는 삶, 평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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