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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누가 ‘깜순이’를 잡아 먹을 권리가 있나

등록 2019-06-23 11:22수정 2019-09-06 16:55

[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개 식용 문화가 낳은 수원여대 유기견 깜순이의 비극
관련자들 축산법 상 처벌 가능성 낮아서 학생들 분통
수원여대 학생들에게 마스코트처럼 여겨졌던 깜순이는 유기견 시절을 보내다 돌봄을 받은지 5개월 만에 사람들에게 잡아 먹혔다. 트위터 ‘깜순이공론화’ 갈무리
수원여대 학생들에게 마스코트처럼 여겨졌던 깜순이는 유기견 시절을 보내다 돌봄을 받은지 5개월 만에 사람들에게 잡아 먹혔다. 트위터 ‘깜순이공론화’ 갈무리
깜순이는 유기견이었다. 원래 주인이 없었는지, 있었는데 버림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길거리를 떠돌던 깜순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이는 수원여대 청소경비용역업체 직원 A씨였다. 2018년 12월, 그는 깜순이를 학교 재활용폐기장에 데려다 놓았다. 한적한 곳에 묶인 채 있던 깜순이에게 학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깜순이에게 먹을 것을 줬고, 예방접종을 했다.

설 명절 때도 학생들은 깜순이를 걱정해 음식을 챙겼다. 한 학생의 말이다. “학교에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재활용폐기장이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됐을 정도였다.” 원래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했던 깜순이로선 학생들의 돌봄이 그저 고마웠을 것이다. 유기견 시절을 겪긴 했지만,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이번 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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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지 않은 행복

안타깝게도 깜순이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5월 11일, 깜순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걱정된 학생들은 깜순이를 찾아 나섰고, 학교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변을 듣는다. “A씨가 인근 농장에 입양을 보냈다. 입양 가서 잘 사니 관심을 끊어라.” 학생들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겸 사진이라도 찍어 보내달라고 했지만, A씨가 했다는 대답은 너무나 궁색했다. “농장에 묶어 뒀는데 줄을 끊고 도망갔다고 한다.”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학교에 진실규명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던 직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한 깜순이의 진실은 충격이었다. 5월 11일 오전 9시 30분, 청소업체 직원들은 탑차에 깜순이를 태워 도축장으로 보냈다. 그곳에선 4만원을 받고 깜순이를 식재료로 가공했고, 그들은 그렇게 요리된 깜순이를 안주 삼아 동네 주민 2명까지 낀, 거창한 술 파티를 벌였다. 깜순이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 준 직원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것을.

깜순이는 수원여대 내 재활용폐기장에서 학생들의 돌봄을 받다 사라졌다. 수원여대 학생 제공
깜순이는 수원여대 내 재활용폐기장에서 학생들의 돌봄을 받다 사라졌다. 수원여대 학생 제공
비극의 시작은 깜순이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학교의 명령이었다. 학생들은 교칙에 동물사육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는지를 물었지만, 학교 쪽은 이에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대신 학교 쪽은 ‘학습권 보장과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해되지 않는다. 한적한 재활용폐기장에 개가 있는 것이 학습권에 무슨 지장을 초래할까? 학생들이 깜순이랑 노느라 수업을 안 듣기라도 했단 말인가? 안전에 대한 우려는 그래도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깜순이가 학생들에게 으르렁대거나 위협을 가한 적이 있어야 했다. 물론 검은 개의 존재가 두려운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학교 측이 A씨에게 개를 옮기라고 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A씨가 개를 데려왔다고 해서 그가 깜순이의 주인이라 우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깜순이에게 묻는다면,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사랑을 베풀어준 학생들을 주인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물론 A씨는 자기도 깜순이를 아꼈다고 이야기하지만, A씨의 휴대폰에 깜순이 사진이 단 한장도 들어있지 않은 걸 보면 그는 처음부터 깜순이를 식재료 이상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깜순이를 다른 데로 보내려고 했을 때, 재활용폐기장에 공문을 붙인다든지 학생 대표를 만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의사를 전달했어야 했다.

학생들은 소위 깜순이 사건 관련자들을 처벌해 달라며 화성서부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A씨를 비롯해 깜순이를 죽이고 고기를 먹은 이들이 처벌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으로 분류돼 있어 식용으로 사육이 가능하고, 축산물위생관리법상으로는 개가 가축이 아니어서 임의로 도살해도 불법이 아니다.

개 식용이 허용되는 야만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많은 개가 깜순이와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다. 심지어 유기견이 아닌, 엄연히 주인이 있는 개를 훔쳐다 개고기로 만들어 먹는 이도 한둘이 아니다. 정말 개탄스러운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개고기 식용을 찬성하는 이가 많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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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법 개정안, 개 식용 문화 끊어야

이 사건에 대해서도 그들은 ‘내 개를 내가 잡아먹는 데 무슨 문제?’라며 청소업체 직원들을 옹호하는 댓글을 달고 있다. 이들의 개과천선을 기다리기엔 너무 긴 세월이 필요할 터, 법의 힘으로 국민의 의식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 마침 바른미래당 이상돈 의원 등이 ‘축산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 법안은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를 가축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으로,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개를 식용으로 키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전국에 1만개도 넘게 있다는 식용 개농장이 다 문을 닫게 되며, 개들은 언제 붙잡혀 개고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개를 먹는 야만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도 있게 되는데, 이렇게 좋은 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소, 닭, 돼지와 달리 개는 이미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반려동물로 자리 잡았다. 먹을 것이 없을 때야 어쩔 수 없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개를 먹을 이유는 없다. 실제로 지난 5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발표한 ‘개고기 인식과 취식 행태에 대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개를 먹은 적이 있다는 사람의 비율은 20%도 안 된다. 정부와 국회에 지속해서 목소리를 내자.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으니 말이다.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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