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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60년 구포 개시장, 뜬장 부서지던 날

등록 2019-07-03 13:54수정 2019-07-03 20:53

[애니멀피플]부산시 구포 개시장 폐쇄 현장 기록
잔인하고 비정한 개 식용 역사, 86개 생명으로 기억되다
부산 구포가축시장의 뜬장에 갇힌 개가 구조자와 교감하고 있다.
부산 구포가축시장의 뜬장에 갇힌 개가 구조자와 교감하고 있다.
전국 3대 개시장이 있다.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시장, 대구 칠성시장. 그중 부산 구포 가축시장은 6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왔다. 호황일 때 구포가축시장엔 60여개가 넘는 개 식용 업소가 있었다. 개들은 가게 앞 뜬장에 진열되었고, 손님이 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개농장에서 길러지던 개들, 길을 잃은 반려견들, 보신탕집 앞에 버려진 유기견들, 기구하고 사연 많은 개가 개고기나 개소주가 되어 나갔다.

2019년의 구포 가축시장에는 개를 파는 업소 17개가 남아 있었다. 가축시장 상인들은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시민들의 개 식용 반대 집회, 동물 학대 사건의 조명 등 갖가지 압박 요인이 불을 붙였다. 시내 한가운데서 자행되는 구조적 동물 학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론은 말끔했다. 개시장은 완전히 폐업하고, 상인들은 다른 일을 하는 것. 부산광역시 북구청은 상인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개들이 도살되던 자리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복지시설과 근린공원을 세우기로 했다.

개소주 집 앞에 ‘진열’돼 있던 개들.
개소주 집 앞에 ‘진열’돼 있던 개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부산 북구청과 구포 가축시장 상인회는 지난 5월30일에 폐업과 업종전환을 위한 잠정협약에 서명했다. 잠정협약은 7월1일부터 동물의 전시와 도살 중단하고, 초복인 7월11일부터 지육 판대 등 영업행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잠정협약으로부터 본 협약까지는 한 달의 기간이 남아 있었고 지육 판매 가능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그사이 계속해서 많은 동물이 희생당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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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이 ‘디데이’였다

정말 많은 생명이 구포 가축시장에서 스러졌는데 마지막까지 희생을 이어갈 수 없었다. 카라는 뜻이 맞는 동료 단체들과 함께 구포 개시장의 조기 폐업과 개들의 구조를 약속했다. 그 이후로 피 말리는 나날이 이어졌다.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덜 도살될 수 있도록 길고 힘든 줄다리기를 지자체, 그리고 상인들과 계속했다.

살아서 갇혀 있는 개 옆에 ‘고기’가 된 개를 냉장 보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살아서 갇혀 있는 개 옆에 ‘고기’가 된 개를 냉장 보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결국 개시장 업소 17곳 중 40%가 넘는 7곳의 점포가 6월21일 조기 폐업을 하는 데 합의했다. 본 협약 열흘을 앞두고 7개 업소 개들의 소유권은 우리에게로 넘어왔고, 도살 장비가 봉인됐으며 지육의 판매도 중지됐다. 남은 열흘간 계속되었을 도살, 초복 직전까지 이어졌을 지육 판매까지 고려하면 약 300마리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그 후 7월1일까지는 더 치열한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남은 업소를 설득하려 노력하는 한편 개들의 안전한 구조를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그동안 개시장에 버려지는 유기견은 상인들에게서 소유권을 얻어내 병원과 위탁보호소로 보냈다. 갓 태어난 새끼들과 어미견, 장모치와와 4마리, 어린 진도 3남매, 믹스견 6남매…. 좋은 사람 만나라며 길가에 버려진 것도 아니고 죽으라고 보신탕집 앞에 버려지는 개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개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서 죽어 개고기가 됐을까 싶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도 있었다. 몇 마리에게서 홍역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영양도 부족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있으니 당연했다. 아픈 개들을 병원에 보내면서 제발 다른 개체에 전염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더는 누구도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도살이든, 전염병으로 인해서든. 그렇게 열흘이 정말 잔인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개들이 걱정된 활동가들이 잠을 설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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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장을 때려 부수는 소리가 그렇게 경쾌했다

7월1일 아침 8시30분에 4개 단체가 현장에 집결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 Korea), 동물자유연대,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브리핑 후 활동가 4명과 수의사 한 명이 있는 구조 팀 4개가 결성됐다.

구조 작업 중 홍역 진단을 받는 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바로 갈아입고 소독해야 해서 방역복과 장화를 착용했다. 날이 몹시 덥고 습해 땀이 뻘뻘 나더라도 다른 개들에게 홍역 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없었다.

바로 전날까지, 개들에게 ‘뜬장에서 나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상인들은 쇠꼬챙이로 개의 몸을 꾹꾹 쑤시며 폭력과 공포를 각인시킨 후 개들을 뜬장 밖으로 끌고 나와 죽였다. 무력에 굴복해왔을 개들을 우리까지 급하다고 거칠게 다룰 수는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개들도, 사람이 무서워서 빙빙 도는 개들도 어르고 달래 뜬장에서 꺼냈다. 한 마리씩 차례차례 홍역 검사와 종합백신(DHPPL) 예방접종을 진행했다. 개들은 정말 너무나도 순했다. 난생처음인 이 순간들이 당황스러웠을 것이 분명한데도 입질 한 번 못하는 개들이 대부분이었다.

구조된 86마리 모두 홍역 검사와 종합백신을 진행했다.
구조된 86마리 모두 홍역 검사와 종합백신을 진행했다.
오전 일찍부터 시작한 작업은 점심이 지나갈 때쯤에서야 마무리됐다. 개들이 들어가 있는 켄넬을 윙카에 실을 때는 방송사에서 온 기자들과 카메라, 몰려든 시민들로 정신이 없었다.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구포 개시장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온 적이 있을까 싶었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기쁨 속에 개들은 위탁보호소로 출발했다. 업소 앞 뜬장 일부는 시원하게 철거되었다. 뜬장을 때려 부수는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구조된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개들이 웃는다.
구조된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개들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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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마리 개들의 새로운 시작, 그 이상의 의미들

구포의 마지막 개들은 2시간을 달려 구포에서 벗어났다. 위탁보호소에 도착해 단단한 땅을 딛고 시원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니 피로감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꼬리를 흔들며 관심을 갈구하는 개들과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는 개들의 모습, 모두 마음이 짠했다.

이런 개들은 정말 빠르게 사람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함께 유대관계를 맺으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개들은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다가 가족을 찾지 못하면 해외로 입양을 갈 예정이다. 구포의 마지막 개들, 잔인하고 비정한 개 식용 역사의 생존자들이 이전의 나쁜 기억은 다 잊고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구포 가축시장에서 구조한 개들은 86마리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우리가 살리지 못한 생명도 있지만 조기 폐업 협상 등 모두의 노력으로 73마리를 선제로 살렸다. 거기에 상인들이 남긴 13마리 개들까지 있어 다행이었다.

뜬장 밖에 나온 개가 낯선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개들은 구조 상황에서 입질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순했다.
뜬장 밖에 나온 개가 낯선 표정으로 앉아 있다. 개들은 구조 상황에서 입질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순했다.
무엇보다 산 개들이 거래되고 도살되는, 큰 규모의 개시장·개도살장이 철폐되어 기쁘다. 개 지육 판매까지 금지하게 된 구포 개시장의 완전 폐업은 지자체의 확고한 의지와 적극적인 행정의 소산이다. 우리는 그 전향적이고 아름다운 길에서 이들과 백지장을 맞들었다. 이는 개 식용 산업이 사양 국면인 만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다면 개시장의 완전 전업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 성과가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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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살장 철폐로, 개식용 종식으로

이제 모란시장에는 살아있는 개가 진열되거나 도살되지 않는다. 구포시장에는 지육조차 없다. 그러나 칠성시장에는 여전히 개들이 전시되고 도살되고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는 그곳에서 무척 착하고 다정한 개를 만났다. 손을 내밀자 냄새를 맡고서는 의심 없이 손을 핥아주는 진돗개였다. 개 식용 반대 집회에 참여하느라고 시장을 몇 바퀴 돌고 한 시간 뒤에 다시 만났을 때는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서 꼬리를 흔들던 애였다.

나는 이제 그 애가 세상에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개시장은 곧 도살장이고, 개들은 계류 기간을 오래 보내지 않고 죽어 개고기나 개소주가 되곤 하니까. 부산 구포시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 애를 내내 생각했다. 내가 구할 수 없었던 존재. 내 마음속에 남은 그 애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개가 지금도 뜬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의 다음 목표는 대구 칠성 개시장이다. 개시장·개도살장과 같은 개 식용 산업의 거점부터 빨리 사라져 헛되게 죽는 생명이 하나라도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물권행동 카라 김나연 활동가

모든 일이 그렇듯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민의 존재가 세상을 바꾼다. 연간 제일 많은 개의 희생이 집중되는 복날 시즌이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죽음을 막기 위한 한걸음에 연대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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