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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반려동물

“애린원으로 오세요, 개도 사람도 만나면 달라져요”

등록 2020-01-13 10:42수정 2020-03-12 06:50

[애니멀피플]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
‘유기견 사업’ 애린원 실체 안 뒤
3년간 투쟁…지난해 철거 완료

케어 사태·서울대 사역견 실험 등
2019년 동물권 주요 이슈 이끌어
“철거, 구조는 끝이 아닌 시작
보호소 동물복지 수준도 높여야”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왼쪽)과 지난해 9월25일 철거 직전 애린원 모습. 당시 애린원에는 1천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이 살고 있었다. 사진 김지숙 기자,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왼쪽)과 지난해 9월25일 철거 직전 애린원 모습. 당시 애린원에는 1천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이 살고 있었다. 사진 김지숙 기자,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모든 일의 발단에는 비글이 있었다. 2015년 유기된 비글을 키우던 유영재 비글구조네트워크 대표의 눈에 동물실험에 이용되었던 비글 네 마리가 포착됐다. ‘실험 비글’의 나이는 무려 14살이었다.

당시 경기도 남양주시 한 보호소에 있던 이 비글들은 4년간 동물실험에 동원된 뒤 보호소로 보내져 10년 이상을 살았지만 입양이 되지 않았다. “실험 기간보다 2배나 긴 시간을 열악한 보호소에서 지냈다니 굉장히 충격이었죠. 실험동물의 현실에 대해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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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비글이 이끈 애린원 해체

“어릴 때부터 곁에 개가 없었던 적이 없어요.” 최근에는 평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수의 개들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 바로 애린원 1600여 마리의 개들이다. 국내 최대규모 유기견 사설보호소였던 애린원은 ‘개들의 지옥’이라 불리던 곳이다. 지난해 9월25일 철거된 이곳에 현재는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가 들어서 있다.

지난 6일 경기도 포천시 옛 애린원 부지에 마련된 임시쉼터에서 유영재 비구협 대표를 만났다. 지난해 철거 당시 열악한 모습으로 충격을 안겼던 보호소 내부는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보호소 내부와 야산을 몰려다니던 개들은 안전하게 견사로 들어갔고, 되는대로 지어 올렸던 뜬장들도 모두 사라졌다. 개들은 크기와 암수별로 총 4개 동 36개 섹션으로 나뉘어 수용되어 있었다. 노령견과 산모견, 아픈 개들을 위한 쉼터도 각각 따로 마련되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해 케어 무분별 안락사, 서울대 복제견 실험, 애린원 철거 등 굵직한 동물권 이슈를 이끌었다. 지난 6일 애린원 부지에 임시로 지어진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가 쉼터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해 케어 무분별 안락사, 서울대 복제견 실험, 애린원 철거 등 굵직한 동물권 이슈를 이끌었다. 지난 6일 애린원 부지에 임시로 지어진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가 쉼터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

2015년 11월 발족한 비구협은 실험에 동원되는 비글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 구조하는 단체다. 어떻게 애린원 해체에 뛰어들게 됐는지 물었다. “시작은 유기 비글 때문이었어요.” 2016년 포천시 유기·유실동물 공고에 두 마리의 유기 비글 공고가 올라왔다. 유 대표는 이 비글들을 비구협 논산쉼터로 데려오려 했다.

당시 비구협은 카카오 스토리펀딩 모금으로 충청남도 논산시에 보호소를 만들었다. 실험 비글을 위한 전문 보호소로 지어졌지만, 실제로 구조되는 실험 비글의 수는 많지 않았다. 실험 기관에서 개들을 순순히 보내주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구조 민원이 들어와 활동에 착수하면, 실제 구조가 이뤄지는 비율은 10%가 안 된다. 유기 비글도 함께 수용하게 된 이유다.

지난해 9월 철거된 애린원에는 1천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이 살고 있었다. 사진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지난해 9월 철거된 애린원에는 1천여 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이 살고 있었다. 사진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지난해 9월25일 사설유기견 보호소 애린원 철거 당일 한 수의사가 개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지난해 9월25일 사설유기견 보호소 애린원 철거 당일 한 수의사가 개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 전헌균 EPA 한국주재기자

포천시에서 발견된 유기 비글 두 마리는 공고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애린원에 들어와 있었다. “조사하다 보니 애린원이 불법 유기견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유기동물 위탁기관이었던 포천시 한 동물병원은 실제로 개를 보호하지 않으면서, 지자체로부터 마리당 10만원씩 수탁비용을 받고 있었다. 동물병원장이 개들을 보낸 곳은 자신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던 애린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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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어 사태, 서울대 복제견 실험도 폭로

애린원에는 이미 3천여 마리의 유기견이 살고 있었다. “동물권 활동가 중에 애린원 봉사 안가고, 후원 안 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두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해결법이 없었던 거죠. 저는 아무리 감당하기 힘든 개체 수라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일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뜻이 있으니까.”

2017년 2월 애린원 해체를 위한 단체 생명존중사랑실천협의회(생존사)를 결성했다. 3년여간 애린원 해체를 위해 지난한 투쟁을 이어갔다.

2019년은 유 대표와 비구협에 여러모로 뜻깊은 한 해가 됐다. 행정적 어려움과 여러 고소·고발이 이어졌던 애린원이 마침내 철거됐다. 동물단체 케어의 무분별 안락사를 폭로했고, 서울대 이병천 교수의 국가 사역견을 이용한 복제견 실험의 문제성도 널리 알렸다. 생긴 지 4년이 조금 넘은 작은 단체로서는 큰 성과였다.

지난해 4월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비글구조네트워크 등 동물단체가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생물 자원연구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학대 실험 의혹’을 받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의 즉각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비글구조네트워크 등 동물단체가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생물 자원연구동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물학대 실험 의혹’을 받는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의 즉각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유독 굵직한 이슈들이 터져 나왔지만 이 일들은 몇 년씩 파헤쳐온 것들이었다고 유 대표는 설명했다. 지난 4월 공항검역 탐지견이었던 복제 비글 ‘메이’가 은퇴 뒤 서울대 수의대학으로 돌아가 실험 도중 사망한 ‘메이 사건’도 시작은 2017년에 시작됐다. “당시 이병천 교수가 복제견 실험을 하면서 개농장 개들을 데려다 난자 채취를 한다는 제보가 있었어요. 서울대로 달려갔죠. 개를 실어나르는 개농장 차량을 영상으로 포착했고 큰 논란이 일었죠.”

폭로가 끝이 아니었다. 비구협은 연구실에서 복제견들을 이용한 비윤리적인 동물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가 나올 때까지 조사를 계속했고, 처참한 모습의 복제견들 모습이 공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해 1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겼던 ‘케어 사태’도 마찬가지다. “케어 박소연 대표의 비밀 안락사는 사실 제보가 없었다면 밝혀질 수 없었죠. 내부 제보자가 그러더라고요. 비구협이 애린원 해체작업 하는 걸 보고 ‘이 단체라면 끝까지 파겠구나’ 싶어서 제보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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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만나면 달라진다

비구협은 40여명의 자발적 활동가들로 이뤄진 작은 단체다. 애린원 철거 전까지는 급여를 받는 상근활동가라고 할 만한 직원이 거의 없었다. 현재는 1천 마리가 넘는 개들을 돌보기 위해 직원이 늘어난 상태지만, 이전까지는 4명의 스태프와 30여명의 코디네이터가 협력해 비구협의 모든 활동을 꾸려왔다.

“단체의 원동력이라고 하면 구성원들의 헌신적 노력, 노고인 것 같아요.” 그는 작년 여러 이슈가 있었지만 내부적으로 가장 잘했다고 자부하는 것이 입양·임시보호라고 했다. 그는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쉼터의 동물복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150여 마리가 사는 비구협 논산 보호소도 한때는 개체 수가 250여 마리까지 늘어났었다. 같은 시설에 개체 수가 늘어나면 복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비글구조네트워크가 애린원 개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SNS계정.
비글구조네트워크가 애린원 개들의 입양, 임시보호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SNS계정.

이들이 찾은 해결책은 안락사가 아니었다. 적극적인 가정 임시보호와 입양 홍보였다. “가정보다 더 좋은 보호소가 어디 있겠어요? 임보 가정을 찾는 일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노력하는 거죠.” 늘어났던 120여 마리의 비글들은 100여 군데 가정에서 임시보호가 이뤄졌고, 많은 수가 입양으로 이어졌다. 유 대표는 이것이 ‘비구협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임보·입양 노하우로 보호소의 즉각적인 공개를 꼽았다. “보호소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해요. 사실 봉사자가 오면 기존 보호소 직원들은 더 힘들어지죠. 가르쳐줘야 하고, 관리해야 하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들이 사람에 대한 친화성을 기를 수 있다는 겁니다.”

막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진만을 본 사람과 봉사를 다녀온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다. 봉사자가 곧 후원자가 되고, 임보자, 입양자가 된다. “뭐 견물생심 아니겠습니까?”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해 케어 무분별 안락사, 서울대 복제견 실험, 애린원 철거 등 굵직한 동물권 이슈를 이끌었다. 지난 6일 애린원 부지에 임시로 지어진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가 쉼터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
비글구조네트워크는 지난해 케어 무분별 안락사, 서울대 복제견 실험, 애린원 철거 등 굵직한 동물권 이슈를 이끌었다. 지난 6일 애린원 부지에 임시로 지어진 ‘비구협 포천쉼터’에서 만난 유영재 대표가 쉼터 곳곳을 안내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위에서 내려다본 ‘비글구조네트워크 포천쉼터’ 모습.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유 대표는 현재 비구협 활동을 ‘비글이 짜준 인생 하반기 계획’이라고 표현했다. 나이 쉰살이 되었을 때,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는 것이 그의 남은 평생의 꿈이었다. 비글들과의 운명적 만남은 그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끌었다. 지금 유 대표의 꿈은 애린원 1600여 마리 강아지의 새 보금자리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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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원 아이들을 ‘미래의 땅’으로

현재 포천쉼터는 ‘애린원 아이들’의 임시적인 집이다. 비구협은 임시쉼터의 개들을 올 상반기에 새 보호소로 이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유 대표는 애린원 개들에게 포천쉼터가 ‘약속의 땅’이었다면, 개들이 옮겨갈 새 보호소는 ‘미래의 땅’이라고 말했다.

“철거하고 구조했다고 끝이 아니라고 봐요. 보호소 자체의 동물복지 수준도 지금 비구협 논산쉼터까지는 끌어 올려야죠. 모든 걸 하루아침에 하려고 하니까 문제예요. 5년~10년 계획을 잡으면 절대 못 이룰 꿈이 아닙니다.” 포천/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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