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한 불법 개농장에서 번식에 이용되던 개 20여 마리가 구조됐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미 개와 새끼들. 동물자유연대 제공
“탯줄이 그대로 달린 강아지가 풀밭에 버려져 있고, 뜬장에는 배 밖으로 장기가 튀어나온 모견 사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미 부패가 시작된 사체 곁에는 살아있는 개가 갇혀 있었어요. 오랜 뜬장 생활 때문인지 네 발이 모두 상처투성이더라고요.”
지난 4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한 불법 개농장에서 번식에 이용되던 개 20여 마리가 구조됐다. 동물자유연대는 5일 애피와의 통화에서 “지난 1일 처음 현장에 방문해 처참한 상황을 확인했다. 지자체와 연휴 내내 구조를 위한 절차들을 진행해 번식업자가 소유권을 포기한 23마리의 개와 일부 치료가 시급한 개체 등 모두 29마리의 개를 구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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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물, 쌓인 분변…“목불인견”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해당 불법 번식장은 국방부 소유의 국유지 및 개인 사유지에서 모두 80여 마리의 개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불법 점거한 국유지 위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 뜬장을 설치해 외부서는 개농장임이 확인되지 않는 구조였다. 번식업자는 이곳에서 50여 마리의 개들을 사육하고 있었으며, 근처 사유지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30여 마리를 사육하며 번식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의 소유의 국유지에 불법적으로 뜬장을 설치해 개들을 사육하고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개들은 오물이 가득한 뜬장에서 사육되며 새끼를 출산하는 목적으로 이용됐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미 개와 강아지들이 함께 발견됐고, 뜬장 옆에는 얼마 전까지 인공수정을 한 내역이 적힌 나무 판자가 걸려있었다.
불법 수술과 자가진료 흔적도 확인됐다. 제왕절개를 한 듯 터진 배 사이로 장기가 흘러나온 개의 사체가 뜬장에 방치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이미 사용하고 버려진 의료용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는 어미개 사체 2구와 새끼 사체 1구 등 모두 3마리의 사체가 발견됐다. 물그릇에는 녹조가 펴져 있고, 분변이 그대로 쌓여 있는 등 견사 내부 상태도 대체로 열악했다.
탯줄이 달린 채 바닥에서 발견된 새끼 강아지. 동물자유연대 제공
구조에 참여했던 동물단체 활동가는 처참한 당시 현장을 ‘목불인견’이라고 표현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정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번식장 현장을 여러 곳 다녀봤지만 그중에서도 굉장히 열악한 편이었다. 보통 번식업자들은 개들을 수입창출 도구로 보기 때문에 관리를 하는데, 이곳은 새끼들을 빼는 것 말고는 아무 관리도 안한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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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했던 나흘간의 구조
해당 번식장의 열악한 현장은 동물단체의 SNS 계정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2일 동물자유연대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긴급 민원요청, 고양시에 불법 번식장 동물들의 격리조치를 요청해주세요’란 글을 게시했다. 구조 초반, 현장을 확인한 활동가들이 관할경찰서에 동물 학대 및 불법 번식장 운영에 대해 신고를 하고, 고양시에 동물보호 조치를 요청했지만 이에 대한 대응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뜬장에서는 이미 죽은 개의 사체가 방치된 채 발견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는 “1일 현장 방문 첫날, 활동가들이 총 80여 마리의 개들을 발견했음에도 다음날 오전 국유지 내 개 20여 마리가 감소한 것을 확인했다. 업자가 하룻밤 사이에 개들을 타지로 이동시킨 것으로 의심된다. 현장 발견 당시 지자체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양시청 관계자들의 소극 행정으로 개들이 즉각적인 격리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휴 기간 온라인상에서는 해당 게시글이 공유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고양시에 보호조치를 요청하자는 게시글과 함께 ‘펫숍을 통한 강아지 분양’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SNS에 구조현장을 공유한 한 반려인은 “펫숍 강아지들은 거의 이런 곳에서 온다. 형광등 아래 종일 갇혀 있는 조그만 강아지들은 이렇게 한뼘도 안 남는 뜬장에서 평생 갇혀 지내던 어미 개로부터 온다”며 “모두가 방관자이자 가해자인 현실을 지나치지 말자”고 적었다. 논란이 격화되자 2일 이재준 고양시 시장이 직접 해당 게시글에 ‘담당 부서 과장이 고발 조치 중’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뜬장 옆에는 인공번식 내역이 빼곡히 적힌 나무 판자가 걸려 있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고양시 관계자는 “해당 업주는 2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했다. 3일 현장을 방문해 동물단체와 함께 업자를 만나 소유권 포기를 설득했고, 일부 개들을 4일 (동물단체에) 양도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온적인 대처 논란에 관해서는 “동물보호법 14조에 의거한 보호조치는 소유자로부터 학대를 당했을 때 집행이 가능한데, 8조에서 규정하는 학대의 내용이 광범위 적용이 애매하다”며 “기존 절차대로 업주의 합의를 끌어내 양도를 진행했고, 고의로 조치를 미룬 것은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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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로 돌아간 만삭의 푸들
이날 현장에서는 모두 29마리의 개들이 구조됐지만, 일부 개들은 다시 케이지로 돌아가야 할 상황에 처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구조견들 가운데 3마리에 대해 새로운 견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는 “번식업자에게 교배를 맡겼던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다시 고양시에 인계해 견주가 맞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구조된 20여 마리의 개들은 위탁처와 동물병원으로 이동해 당분간 안정을 취할 예정이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새 소유주가 나타난 모견을 진찰했던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원장은 “출산이 임박한 스탠더드 푸들이었다. 깡마른 몸에 배만 볼록하고 털이 뒤엉켜 거북이 등껍질처럼 굳어있는 아이를 다시 공무원들에게 보내야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박 원장은 “동물은 새끼를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털이 갑옷처럼 엉켜서 피부를 썩게 하고 발가락 사이가 짓무르도록 뜬장에 둔다면 반려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구조는 생명권보다 우선되는 개인의 소유권 문제와 여전한 동물보호법의 한계를 실감하게 한 사례였다. 미허가 영업장에 대한 가벼운 처벌과 불법 동물생산판매업에 대한 등록, 허가 취소 조항이 부재하는 현행 법은 앞으로 반드시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무허가로 동물을 생산·판매하더라도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치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