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달봉이네 보호소 ‘생존 미용’하던 날…땅굴견과 감정을 나누다
달봉이네 보호소 ‘생존 미용’하던 날…땅굴견과 감정을 나누다
털이 자라 엉망으로 엉킨 개 ‘타리’는 앞발로 활동가의 손을 자꾸 밀어냈다. 미용을 받을 때 봉사자가 목을 꼭 안아줘, 무사히 털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땅굴견도 생존을 위해선 해야 한다 달봉이네 개들을 위하여 카라의 활동가들과 시민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한 미용봉사대가 조직되었다. 다른 봉사와 차별점이 있다면 야생성 강한 개를 다룰 줄 아는 구조 전문 활동가가 동원됐다는 점이다. 구조 활동가가 미용 대상인 개를 어르고 달래 입마개나 넥카라를 씌우면, 그다음에 개는 미용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사람 손을 두려워하는 개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두 명 이상의 미용봉사자가 붙어 털을 쭉쭉 밀었다.
타리(왼쪽) ‘빡빡이 미용’을 받고 시원해졌다!
유기견 ‘철수’는 사람을 피해 개집 꼭대기로 올라가곤 한다.
세 명의 봉사자에게 붙잡혀서 미용을 받게 된 철수.
빡빡이 미용 후 다시 개집 꼭대기로 올라간 철수.
갑옷 벗었더니, 새로운 위협이…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봉사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이 한껏 고생해준 덕에 모두 10마리의 개들이 털갑옷을 벗었다. 개들로서도 대단히 고생했을 시간이었는데, 미안하게도 최선의 위로는 간식을 많이 주는 것뿐이었다. 개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간식을 물고 갔다. 한편, 털을 빡빡 밀어 더위를 덜 타게 만들어놓자,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다. 바로 모기다. 달봉이네 보호소는 특히 산 아래 있는 터라 여름이 시작하면서 모기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기는 개들에게 치명적인 심장사상충을 옮긴다. 보통 반려견들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 심장사상충을 예방하지만, 달봉이네 개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미용봉사가 끝나고서 소장님은 ‘미안한데…’ 라며 말을 꺼냈다. 모기향을 좀 사다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소 환경이 열악해 전기로 된 것은 많이 쓰지 못하고, 여름이면 모기향을 피워 130여 마리 개들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결국 시민들의 후원으로 모기향과 연소기를 잔뜩 모아 전달하고서야 소장님의 얼굴이 좀 펴졌다. 개들은 이제 모기향에 기대 여름을 보내게 된다.
땅굴을 파고 들어간 개들. 봉사자들은 이 개들을 ‘유물’이라고 불렀다.
땅굴 속에서 숨어있던 아이. 2년 동안 미용을 받지 못해 엉망이었다.
개들의 여름나기, 건투를 빌며! 버려진 개들의 삶은 참 고단하다. 모기향에 의존해야 하는 여름과 가을이 끝나면 한숨 돌릴 만하다가도, 금방 겨울이 되면 개들은 연탄불에 의존해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나이를 먹는다. 고단한 사이클 속에서 보호소를 안전히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다. 달봉이네 개들은 대체로 사람 손길을 피해왔다. 하지만 봉사대가 거듭 다녀갈수록 아주 조금씩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달봉이네 보호소에서 데려와 입양을 보낸 개 ‘수지’도 좋은 가족을 만나 처음으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됐다. 달봉이네 보호소의 다른 개들에게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혹여 누군가가 개들에게 손 내밀 수 있을까 싶어, 사람들이 버리고 사회가 외면한 개들의 사진과 명단을 정리했다. 우리는 개들의 여름나기를 함께 해줄 사람을 항상 기다리는 중이다. 문의 info@ekara.org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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