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반려동물

‘털갑옷’ 깎는 가위소리…보호소의 여름이 시작됐다

등록 2020-07-02 12:59수정 2020-07-02 14:18

[애니멀피플] 통신원 칼럼
달봉이네 보호소 ‘생존 미용’하던 날…땅굴견과 감정을 나누다
털이 자라 엉망으로 엉킨 개 ‘타리’는 앞발로 활동가의 손을 자꾸 밀어냈다. 미용을 받을 때 봉사자가 목을 꼭 안아줘, 무사히 털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털이 자라 엉망으로 엉킨 개 ‘타리’는 앞발로 활동가의 손을 자꾸 밀어냈다. 미용을 받을 때 봉사자가 목을 꼭 안아줘, 무사히 털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저 개는 소장님이 머리를 땋아주신 거예요?”

사설보호소에 봉사를 처음 온 봉사자의 질문이었다. 그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긴 털이 엉키고 뭉쳐, 마치 벼 머리를 땋은 것 같은 유기견이 있었다.

“아니에요, 그냥 털이 길어서 엉킨 거예요.”

우리 앞에 놓인 그 개는 평소에 워낙 사람 손을 무서워하는 겁쟁이였다. 소장님이 개를 쉽게 만질 수 있었다면 털을 땋아주는 게 아니라 빗질을 했을 것이다.

사설 동물보호소 ‘달봉이네’의 130마리 개들은 모조리 그런 겁쟁이들이다. 대부분 잡는 것도 어려운 개들이라 결국 이번 여름에 이르러서는 털갑옷을 두르게 된 개들이 여럿 생겨났다. 엉키고 뭉친 털 아래로 다리가 간신히 보였고, 시야가 가려 앞이 보이기나 하나 싶은 모습이었다.

개들을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털이 엉키고 뭉쳤을 때 피부가 땅기는 불편함도 문제이지만, 통풍이 되지 않아 피부병이 발생할 수 있었고 진드기 등이 대거 달라붙을 가능성이 컸다. 무엇보다도 선풍기 바람조차 못 쐬고 여름을 나야 할 유기견들에겐 너무 더운 계절이었다.

_______
땅굴견도 생존을 위해선 해야 한다

달봉이네 개들을 위하여 카라의 활동가들과 시민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한 미용봉사대가 조직되었다. 다른 봉사와 차별점이 있다면 야생성 강한 개를 다룰 줄 아는 구조 전문 활동가가 동원됐다는 점이다. 구조 활동가가 미용 대상인 개를 어르고 달래 입마개나 넥카라를 씌우면, 그다음에 개는 미용 테이블 위로 올려졌다. 사람 손을 두려워하는 개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두 명 이상의 미용봉사자가 붙어 털을 쭉쭉 밀었다.

타리(왼쪽) ‘빡빡이 미용’을 받고 시원해졌다!
타리(왼쪽) ‘빡빡이 미용’을 받고 시원해졌다!

9번 견사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개들의 은신처인 ‘땅굴’을 깨부수는 작업이 진행된 것이다. 달봉이네 개들에게 땅굴은 무서운 사람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되어주곤 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존중한 봉사자들도 땅굴에 숨은 개들에게는 간식을 던져주는 것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2년째 털을 깎지 못해 더벅머리가 된 개들 세 마리가 나란히 땅굴 끝에 숨어있었고,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까닭에 결국 봉사자가 곡괭이를 잡았다.

봉사자가 구슬땀을 흘리며 조심해서 땅굴을 부수고, 또 개가 땅에 묻히지 않도록 흙을 퍼냈다. 땅굴의 끝은 견사 끝에서부터 입구까지였다. 견사 바닥의 반을 다 부쉈을 때야 겨우 숨어있던 개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유독 사람을 무서워하는 그 개들을 위해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붙어 테이블 위에 개를 고정하고, 네 명이 털을 깎아냈다.

개는 미용을 받는 내내 계속 스트레스 시그널을 보냈다. 이 개에게 당장의 손길을 도움이나 다정함, 사랑으로 이해시키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개를 배척해왔고 개는 그 손길을 피해 와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였다. 누군가 개를 버리고 외면해온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 오늘날의 봉사자들이 되어버린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유기견 ‘철수’는 사람을 피해 개집 꼭대기로 올라가곤 한다.
유기견 ‘철수’는 사람을 피해 개집 꼭대기로 올라가곤 한다.

세 명의 봉사자에게 붙잡혀서 미용을 받게 된 철수.
세 명의 봉사자에게 붙잡혀서 미용을 받게 된 철수.

빡빡이 미용 후 다시 개집 꼭대기로 올라간 철수.
빡빡이 미용 후 다시 개집 꼭대기로 올라간 철수.

_______
갑옷 벗었더니, 새로운 위협이…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봉사는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이 한껏 고생해준 덕에 모두 10마리의 개들이 털갑옷을 벗었다. 개들로서도 대단히 고생했을 시간이었는데, 미안하게도 최선의 위로는 간식을 많이 주는 것뿐이었다. 개들은 눈치를 보면서도 간식을 물고 갔다.

한편, 털을 빡빡 밀어 더위를 덜 타게 만들어놓자,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다. 바로 모기다. 달봉이네 보호소는 특히 산 아래 있는 터라 여름이 시작하면서 모기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기는 개들에게 치명적인 심장사상충을 옮긴다. 보통 반려견들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 심장사상충을 예방하지만, 달봉이네 개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미용봉사가 끝나고서 소장님은 ‘미안한데…’ 라며 말을 꺼냈다. 모기향을 좀 사다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보호소 환경이 열악해 전기로 된 것은 많이 쓰지 못하고, 여름이면 모기향을 피워 130여 마리 개들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결국 시민들의 후원으로 모기향과 연소기를 잔뜩 모아 전달하고서야 소장님의 얼굴이 좀 펴졌다. 개들은 이제 모기향에 기대 여름을 보내게 된다.

땅굴을 파고 들어간 개들. 봉사자들은 이 개들을 ‘유물’이라고 불렀다.
땅굴을 파고 들어간 개들. 봉사자들은 이 개들을 ‘유물’이라고 불렀다.

땅굴 속에서 숨어있던 아이. 2년 동안 미용을 받지 못해 엉망이었다.
땅굴 속에서 숨어있던 아이. 2년 동안 미용을 받지 못해 엉망이었다.

_______
개들의 여름나기, 건투를 빌며!

버려진 개들의 삶은 참 고단하다. 모기향에 의존해야 하는 여름과 가을이 끝나면 한숨 돌릴 만하다가도, 금방 겨울이 되면 개들은 연탄불에 의존해 추위를 견뎌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며 나이를 먹는다. 고단한 사이클 속에서 보호소를 안전히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다.

달봉이네 개들은 대체로 사람 손길을 피해왔다. 하지만 봉사대가 거듭 다녀갈수록 아주 조금씩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달봉이네 보호소에서 데려와 입양을 보낸 개 ‘수지’도 좋은 가족을 만나 처음으로 에어컨 바람 밑에서 여름을 보내게 됐다.

달봉이네 보호소의 다른 개들에게도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혹여 누군가가 개들에게 손 내밀 수 있을까 싶어, 사람들이 버리고 사회가 외면한 개들의 사진과 명단을 정리했다. 우리는 개들의 여름나기를 함께 해줄 사람을 항상 기다리는 중이다. 문의 info@ekara.org

글·사진 김나연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푸른 뱀의 해 2025년…그런데 뱀이 무섭다고요? 1.

푸른 뱀의 해 2025년…그런데 뱀이 무섭다고요?

“산책하려면 개, 안 하려면 고양이를 키워라” 2.

“산책하려면 개, 안 하려면 고양이를 키워라”

사람 약 만드는데 왜 토끼를 쓰나요…“동물실험, 이미 대체 가능” 3.

사람 약 만드는데 왜 토끼를 쓰나요…“동물실험, 이미 대체 가능”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4.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수달, 일본 간다…“동물 상호 기증”

타고난 사냥개? “원래 그런” 진돗개는 없다 5.

타고난 사냥개? “원래 그런” 진돗개는 없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