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찍은 허리케인 플로렌스의 눈. 폭풍이 없고 주변보다 따뜻한 이곳에 새들이 머무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2003년 정찰기를 타고 초강력 허리케인 이사벨의 ‘눈’을 직접 비행한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 제프 핼버슨은 과학저널 ‘웨더와이즈’에 이런 관찰기를 남겼다.
“귀를 찢는 바람 소리와 선체를 때리는 빗소리가 갑자기 완벽한 고요에 가깝게 줄어들었다. ‘눈’ 속의 공기 기둥은 영하 9∼7도로 주변보다 따뜻했다. 가끔 새떼가 구름 벽으로 둘러싸인 성채 주위를 빙빙 돌았다. ‘눈’ 안에 여러 날 갇힌 새들은 탈진해 수백 마일 떨어진 곳까지 떠밀려 갈 것이다.”
바닷새는 물론이고 수많은 철새가 바다 위로 장거리 이동한다. 이들이 열대폭풍(사이클론, 태풍, 허리케인)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그러나 최신 레이더 기술 덕분에 많은 새떼가 비교적 안전한 열대폭풍의 눈 안에 머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매슈 반 덴 브로크 미국 네브래스카대 링컨 캠퍼스 교수는 과학저널 ‘생태학과 보전을 위한 원격탐사 ’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2011 ∼2020년 동안 북미로 향한 허리케인 42개의 눈을 관측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모든 눈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 새 (또는 곤충 ) 떼의 반사파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폭풍의 눈에 새떼가 갇히는 일이 광범한 현상임을 가리킨다 .
반 덴 브로크 교수는 “1800년대 허리케인의 눈을 통과하던 선원이 배에 내려앉는 새들을 기록한 관찰기를 흥미롭게 읽었다”며 “우리는 그런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러나 열대폭풍과 새떼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하게 된 것은 최근 10년 사이 발전한 기상레이더 기술 덕분이다. 2세대 도플러레이더에 이어 출현한 3세대 이중 편파 레이더는 입체적인 기상 관측이 가능하다. 비와 눈, 우박을 구분하기 때문에 당연히 빗방울과 새떼의 차이를 가려낸다.
미국 텍사스에 상륙한 직후의 열대폭풍 베타의 이중 편파 레이더 사진. 타원 안이 대규모 새떼를 가리킨다. 매슈 반 덴 브로크 (2021) ‘생태학과 보전을 위한 원격탐사’ 제공.
반 덴 브로크 교수가 이 기술로 관측한 최근 10년 동안의 주요한 허리케인 자료를 분석했더니 풍속이 강한 폭풍일수록 새떼의 크기가 크고 밀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폭풍의 눈이 분명할수록, 다시 말해 평온한 중심부 주변을 맹렬한 폭풍우가 감싸고 있을수록 더 많은 새가 눈에서 발견됐다.
그는 “거센 폭풍일수록 새들이 비교적 안전한 눈을 포기하기 힘들 것”이라며 “하지만 그 대가로 한 주일 내 하늘을 날면서 수천㎞를 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풍의 눈은 피난처이지만 동시에 덫이기도 한 이유이다. 끝없는 비행 중에 발견한 선박에 내려앉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눈을 항공기에서 촬영한 모습. 미 해양대기청(NOAA)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또 온대지역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열대지역으로 이동하는 7∼10월 사이의 허리케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철새 떼가 폭풍의 눈에 갇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검은눈썹제비갈매기처럼 일부 철새는 태풍의 경로와 시기를 예측해 이를 회피하는 사례도 밝혀지고 있다(
‘태풍 1번지’로 이동하는 제비갈매기만의 비법).
반 덴 브로크 교수는 “기후변화로 열대폭풍이 더 강해지고 잦아져 철새들이 힘들게 적응한 강도를 넘어선 폭풍이 엉뚱한 시기에 오면서 생태적 악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의 철새 이동 경로. 상당수가 열대폭풍의 길목과 겹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태풍의 눈에 머무르는 새들의 행동은 폭풍 강도 변화를 예측하는 새로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태풍의 눈에서는 바다의 덥고 습한 공기가 상승해 상층의 건조한 공기와 만나 역전층을 이룬다.
이번 연구에서 새들은 강한 허리케인일수록 눈에서 더 높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 덴 브로크 교수는 “역전층과 새들의 비행 고도 사이의 관계를 안다면 태풍의 눈에 비행기로 관측장비를 낙하산에 달아 떨어뜨리는 대신 새들의 움직임에서 태풍의 변화를 읽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인용 논문:
Remote Sensing in Ecology and Conservation, DOI: 10.1002/rse2.22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