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남해안에서만 드물게 보던 팔색조가 중부 평야 지대와 백두대간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기회를 잡은 예이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제공.
요즘 숲이 우거져 어둑하고 축축한 계곡에서 ‘호오잇 호오잇’하는 소리를 들었다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팔색조가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주와 남해안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던 팔색조가 가평, 연천 등 중부지방은 물론 설악산 등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경석 상지대 교수팀은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전국의 보호지역 36곳을 대상으로 번식울음을 조사한 결과 22곳에서 소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번식울음이 자주 들려 번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한려해상국립공원 금산, 제주 동백동산, 무등산 국립공원 평두메습지 등이었다. 이어 번식울음이 자주 들린 곳은 조계산 선암사 사찰림, 고창 운곡습지, 계룡산국립공원 계룡대 습지, 주남저수지, 부산 금정산습지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특히 그동안 관찰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던 백두대간의 국립공원인 지리산, 속리산, 태백산, 설악산 등에서도 팔색조의 번식울음이 확인됐다. 주 저자인 최세준 대학원생은 “최북단 조사지인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설악산 각두골습지에서는 9일 동안 번식울음이 녹음됐다”며 “그러나 팔색조의 번식 시기와 울음소리가 들린 기간에 비추어 번식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팔색조의 번식울음이 관측된 곳. 원이 클수록 빈도가 잦음을 가리킨다. 최세준·기경석 (2022)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공.
연구자들은 좀처럼 관찰하기 힘든 팔색조의 전국 분포를 알기 위해 번식울음을 1시간당 1분꼴로 24시간 녹음하는 방법을 썼다. 팔색조는 개체수가 적은 데다 주 먹이인 지렁이를 확보하기 쉬운 깊고 어두운 계곡에서 은밀하게 번식하기 때문에 관찰이 어렵다.
최 씨는 “녹음 시간이 하루의 6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울음 간격이 매우 짧기 때문에 1분 안에도 여러 번 번식울음을 관측할 수 있다”며 “이 방법이 기존의 일회성 현장조사 방법보다 훨씬 정확하게 팔색조의 분포를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새벽 5시에 번식울음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해 6시에 가장 자주 울었다.
번식울음은 5월14일부터 들리기 시작해 8월6일까지 이어졌는데 절정에 이른 날은 6월3일이었다. 팔색조는 보르네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우리나라, 중국 남동부, 대만, 일본에서 번식하는데 6월 초·중순 산란한다.
습기 차고 어두운 깊은 계곡에 둥지를 트는 팔색조를 실제 관찰하기는 매우 힘들다. 소리를 이용한 조사가 활발하게 쓰이게 된 이유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제공.
성하철 전남대 교수팀은 지난해 미리 녹음한 팔색조의 번식울음 소리를 서식 예상지에서 들려준 뒤 반응하는 소리를 이용해 전국 분포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개체를 확인한 곳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팔영산으로 24마리였고 이어 거제도 두륜산이 22마리였다. 이 조사에서 내륙의 산악국립공원에서는 팔색조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조류 전문가와 탐조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전국 8개 광역지자체 모두에서 팔색조 서식을 확인했다.
성 교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따뜻한 곳에 사는 팔색조의 서식지가 늘어나고 개체수도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녹음된 번식울음을 들려주거나 24시간 녹음하는 방식으로 은밀하게 활동하는 팔색조의 분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계곡에서 잡은 지렁이를 둥지의 새끼에게 부지런히 나르는 팔색조 어미. 계곡과 거리가 먼 평지에서 먹이를 잡을 경우 번식에 지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제공.
탐조인들은 최근 팔색조가 수원, 가평, 연천, 철원 등 중부지방 평야 지대에서 번식한다고 말한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
팔색조가 경기도 가평에서 해마다 번식하고 있고 마찬가지로 남해안에서만 볼 수 있던
동박새가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에서 번식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며 “팔색조가 평야로 확산하면서 주 먹이인 지렁이를 찾기 위해 둥지에서 멀리 나가야 해 번식 성공률이 떨어지는 새로운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용 논문: 한국환경생태학회지, DOI: 10.13047/KJEE.2022.36.2.139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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