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피플] ‘친환경 어업’ 위해 등불로 게·랍스터 유인 실험 게·랍스터 대신 참가리비 줄줄이 그물안 ‘점프’ 해저생태계 망치는 바닥긁는 어획 대안으로 주목
엘이디 등을 단 통발 안으로 들어오는 참가리비 모습. 가리비가 이동성이 뛰어난 것은 알려졌지만 왜 불빛으로 꼬이는지 이유는 불확실하다. 피시테크 마린 동영상 갈무리.
친환경 어업기술을 개발하는 영국의 한 기업은 해저 생태계를 망치는 저인망 대신 통발에 엘이디 등을 켜면 값비싼 게나 랍스터를 유인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어민에게 시험을 요청한 뒤 받은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등불을 켜나 안 켜나 게와 랍스터 어획량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민은 “전에는 일 년 동안 통발에 들어오는 가리비가 한두 마리였는데 등불을 켜니 수십 마리나 들어왔다”고 말했다. 피시테크 마린의 과학자 로버트 에네버 박사 등이 등불을 켜 참가리비(큰가리비)를 어획할 수 있는지 현장시험에 나선 계기였다.
시험조업에 쓴 엘이디 등이 달린 통발. AA형 배터리 2개를 장착하면 5∼10년 동안 쓸 수 있다. 피시테크 마린 제공.
결과는 놀라웠다. 알려진 가리비 어장이 아닌 곳에 석 달 동안 1886개의 통발을 놓았다. 엘이디 등을 켠 985개의 통발에는 518마리의 참가리비가 들었지만 등불을 켜지 않은 901개의 통발에는 2마리가 잡혔을 뿐이다. 통발에 들어온 가리비의 99.6%가 등불을 택했다.
‘귀’가 달린 패각의 형태가 독특한 가리비는 바닥에 박혀있지 않고 종종 돌아다닌다. 성게 등 포식자가 오면 두 패각을 열었다 갑자기 닫으며 뛰어오르고 패각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흡입한 물을 뒤로 뿜어내면서 제법 먼 거리를 ‘헤엄쳐’ 이동하기도 한다.
이번 시험에서도 연구자들은 참가리비가 엘이디 등불이 켜진 통발로 다가와 안으로 줄지어 뛰어드는 모습을 관찰했다. 에네버 박사는 “처음 통발을 끌어올리고 그 속에 가리비가 잔뜩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등불이 켜지지 않은 곳에는 가리비가 거의 없었지만 등불을 켠 통발에는 최고 24마리까지 들었다”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패각에 ‘귀’가 달린 가리비의 모습. 참가리비는 폭 21㎝까지 자란다. 맨 프레드 하이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가리비는 왜 등불에 몰려들까. 연구자들은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가리비의 시각 자극 때문으로 보인다”고 과학저널 ‘어업 연구’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가리비는 조개 가운데서도 시력이 뛰어난 편이다. 패각 밖으로 드러난 외투막 가장자리를 빙 둘러 최고 200개가량의 좁쌀만 한 작은 눈이 달려 있다. 렌즈 대신 거울이 달린 이들 눈으로 물체의 움직임과 빛 강도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 먹이가 많은 곳으로 가거나 포식자를 회피한다.
가리비의 눈. 외투막에 좁쌀처럼 작은 눈이 수십∼수십 개 나 먹이와 천적을 감지한다. 매슈 커민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통발에 등불을 밝히면 불을 따라 (플랑크톤 등) 생물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가리비가 먹이터를 향해 이동해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폭풍이 닥쳐 물이 탁해졌을 때 가리비가 덜 잡힌다는 시험에 참여한 어민의 증언도 시력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논문에 적었다. 그러나 “등불을 밝힌 통발에 딱총새우가 많이 잡힌 데 비춰 딱총새우가 내는 큰 소리에 기절한 동물플랑크톤 먹이를 찾아 왔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참가리비 양식 모습. 활가리비는 주로 일본 홋카이도에서 수입한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참가리비는 영국 등 대서양 국가의 주요 어획 대상이며 주로 바닥을 긁어 자루에 담는 형망 어업으로 잡는다. 이 어획 방법은 해저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어 문제가 돼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참가리비와 해만가리비를 주로 양식하며 수입산 참가리비는 대부분 일본 홋카이도 산이다.
연구자들은 “등불을 이용한 새로운 통발이 환경파괴를 줄이기는 하겠지만 무분별한 남획을 막기 위한 관리도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Fisheries Research, DOI: 10.1016/j.fishres.2022.10633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