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7m로 영하의 캄캄한 북극해 깊은 곳에 사는 그린란드상어. 150살이 넘어야 첫 번식에 나설 만큼 느리게 자라고 400살까지 산다. 게티이미지뱅크
“뭉툭한 주둥이와 한쪽이 먼 창백한 푸른 눈…마치 길게 늘인 둥근 돌에 생명을 불어놓은 듯한 고대 물고기 같았어요.”
올봄 중미 벨리즈 연안 산호초에서 현지 어부와 함께 뱀상어를 포획해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던 드밴시 카사나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 박사과정생은 그린란드상어를 포획한 순간을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2시간의 줄다리기 끝에 배 옆으로 끌어낸 길이 3.5m의 상어는 카리브 해의 열대바다에서 볼 수 있는 상어가 아니었다.
카리브 해 벨리즈 해안에서 포획된 그린란드상어. 드밴시 카사나 제공.
그가 지도교수인 데미안 채프먼 교수에게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내 이후 전문가들로부터 확인한 결과 그린란드상어 또는 그린란드상어가 가까운 친척인 태평양잠꾸러기상어와 잡종을 이룬 개체라는 결론을 얻었다. 과학저널 ‘해양 생물학’ 최근호에 실린 이들의 논문은 수수께끼의 상어인 그린란드상어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널리 분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린란드상어는 북극해와 북대서양 등 북극의 차고 깊은 바다에 사는 종으로 물고기와 오징어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대형 포유류의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로 알려져 있다. 물범, 순록은 물론이고 2008년에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잡힌 그린란드상어의 뱃속에서 북극곰의 턱뼈가 나오기도 했다.
심해에서 영하의 찬물에 적응한 이 상어는 부동액 비슷한 화학물질을 고농도로 분비해 조직에 얼음 결정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 이 물질 때문에 상어의 살은 독성을 띠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여러 차례 끓이고 발효시키는 처리 과정을 거쳐 별미의 먹거리로 삼는다.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린란드상어의 독을 처리해 별미 요리 재료로 쓴다. 그린란드상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지정돼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길이 7m 무게 1.5t까지 자라 북극해에서 가장 큰 물고기이자 그곳에 상주하는 유일한 상어인 그린란드상어는 찬물에서 신진대사를 최대한 늦춰 장수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2016년 국제 연구진은 눈 수정체 안에 켜켜이 쌓인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이 상어의 수명이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오랜 400년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400살 넘게 사는 그린란드상어, 척추동물 최장수 동물 등극).
대사가 느리고 오래 사는 이 상어는 동작도 느려 헤엄치는 속도는 시속 1.22㎞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어는 수천㎞ 떨어진 북극에서 카리브 해 산호초까지 왔을까.
그린란드상어의 눈에는 요각류의 일종이 기생해 종종 시력을 잃기도 한다. 이번에 발견된 카리브 해의 개체도 눈 한쪽을 잃은 상태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한 쪽 눈을 잃은 것은 이유가 아니다. 캄캄한 심해에 사는 이 상어는 주로 시각보다는 후각과 청각에 의존해 헤엄친다. 또 이 상어의 눈에는 요각류의 일종이 기생해 종종 눈을 잃지만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이 그린란드상어가 심해의 찬물을 따라 열대바다까지 널리 분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찬물이 흐르는 깊은 수심의 바다라면 세계 어디서라도 그린란드상어가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상어를 포획한 글로버스 산호초도 가장자리가 수심 500m 이하에서 3000m 가까운 수심으로 급히 떨어지는 해역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견에 앞서 2018년에도 그린란드상어가 카리브 해 남쪽 콜롬비아 연안 심해에서 촬영됐다. 아르투로 아세로 피 외 (2018) ‘응용어류학저널’ 제공.
이번 발견에 앞서 2018년에도 콜롬비아 연구자들이 카리브 해 남쪽 콜롬비아 해안 수심 1820m 지점에서 무인잠수정을 통해 그린란드상어를 촬영했다고 ‘응용어류학저널’에 보고한 바 있다.
인용 논문:
Marine Biology, DOI: 10.1007/s00227-022-04090-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