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체르노빌 청개구리는 왜 까매졌나…방사선 막아 준 멜라닌 색소

등록 2022-10-04 11:28수정 2022-10-04 19:44

[애니멀피플]
출입금지구역 안 연못 8곳 조사
사고 때 강한 방사선 구역일수록 색 진해
현 방사선 수준과 무관…“과거 피폭 결과”
‘공업암화’의 검은 나방처럼 자연 선택 작동
체르노빌 원전 출입금지구역 안 연못에서 발견된 검은 청개구리(왼쪽)와 금지구역 밖의 같은 종 청개구리 비교. 게르만 오리사올라, 파블로 부라코 제공.
체르노빌 원전 출입금지구역 안 연못에서 발견된 검은 청개구리(왼쪽)와 금지구역 밖의 같은 종 청개구리 비교. 게르만 오리사올라, 파블로 부라코 제공.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의 노심용융과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유럽을 거쳐 세계로 퍼져나갔고 인근 30㎞가 강한 방사능에 오염돼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됐다. 이 구역에 사는 청개구리에 유독 검은 빛깔이 띠는 이유가 밝혀졌다.

파블로 부라코 스웨덴 웁살라대 동물생태학자와 게르만 오리사올라 스페인 오비에도대 생물학자는 2016년부터 3년 동안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안 청개구리를 조사한 결과 “사고 당시 방사선이 강한 곳일수록 짙은 청개구리가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멜라닌 색소가 전리방사선의 나쁜 영향으로부터 청개구리를 보호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과학저널 ‘진화적 응용’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의 체르노빌 원전 모습. 사고 원전은 금속 구조물로 봉쇄됐고 주변 녹지는 높은 방사선으로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의 체르노빌 원전 모습. 사고 원전은 금속 구조물로 봉쇄됐고 주변 녹지는 높은 방사선으로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연구자들은 “사고 원전 주변에서 이상하게 새까만 청개구리를 여러 마리 발견한 것이 연구의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 매체인 ‘컨버세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밝혔다. 카스피 해에서 북해에 걸쳐 서식하는 이 청개구리는 보통 밝은 초록 빛깔을 띠며 가끔 등이 짙은 빛깔을 띤 개체가 발견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방사선이 강한 출입금지구역 안 연못 8곳과 방사선이 자연 상태와 비슷한 금지구역 밖 연못 4곳에서 청개구리 200여 마리를 채집해 분석했다. 사고가 난 지 10세대 이상이 지났지만 사고 당시 강한 방사선에 노출된 곳일수록 청개구리 빛깔은 현저히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개구리 빛깔과 현재의 방사선 수준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짙은 청개구리는 현재의 방사선 노출로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의 피폭 결과”라고 밝혔다.

사고 당시 방사선 강도에 따른 청개구리 체색의 변화. 게르만 오리사올라, 파블로 부라코 제공.
사고 당시 방사선 강도에 따른 청개구리 체색의 변화. 게르만 오리사올라, 파블로 부라코 제공.

그렇다면 왜 사고 원전 주변의 청개구리는 검게 바뀌었을까. 폭발로 배출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은 생물체에 해로운 전리방사선을 내쏜다. 이것이 생체의 디엔에이를 손상시켜 돌연변이를 유발하는데 대개 암이나 기형 등 생물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연구자들은 짙은 색 청개구리일수록 피부에 많이 든 멜라닌 색소가 전리방사선의 영향을 막아주었을 것으로 보았다.

연구자들은 “멜라닌은 전리방사선의 방사 에너지를 흡수해 소멸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 세포 안에서 방사선에 쏘여 이온화한 분자들을 청소하고 중성화하는 구실도 한다”고 밝혔다. 체르노빌의 고방사선 구역이나 국제우주정거장에서도 번성하는 검은 곰팡이에서 그런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연구자들은 “곰팡이 같은 소형 생물에서 발견된 멜라닌의 보호 기능을 이번에 전리방사선에 노출된 야생 척추동물에서도 확인한 것”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검은 청개구리가 나타난 과정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고전적 사례이기도 하다. 사고 당시 우연히 체르노빌 주변에 살던 짙은 청개구리는 주변이 강한 방사능에 오염되면서 갑자기 비교우위를 맞게 됐다. 연구자들은 “멜라닌의 보호를 받는 검은 청개구리의 생존율과 번식률이 높아졌다. 열 세대 이상이 지나면서 아주 빠르지만 고전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검은 개구리는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의 지배적 형질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은 대기오염이 극심했던 19세기 영국 공업지대에서 천적인 새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 회색가지나방이 늘어났다가 공해가 줄어들자 다시 회색 나방이 늘어난 이른바 ‘공업암화’ 현상과 비슷하다(▶나무껍질에 교묘히 숨어드는 나방 의태의 비밀 밝혀져). 이 나방을 검게 만든 것도 멜라닌 색소였다.

체르노빌 원전 주변의 ‘붉은 숲’. 사고 직후 침엽수가 붉게 타 죽어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현재 복원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체르노빌 원전 주변의 ‘붉은 숲’. 사고 직후 침엽수가 붉게 타 죽어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현재 복원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체르노빌 주변의 출입금지구역은 강한 방사선 피폭에 의한 생리적, 형태적, 유전적 영향이 지적되고 있지만 동시에 불곰, 늑대, 스라소니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동물의 피난처 구실을 하는 등 사고 뒤 30년 이상 지났는데도 피폭의 장기영향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인용 논문: Evolutionary Applications, DOI: 10.1111/eva.1347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애니멀피플] 핫클릭

추어탕 미꾸라지, 소금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 1.

추어탕 미꾸라지, 소금 비벼 죽이지 말라…세계적 윤리학자의 당부 [영상]

호수 물들인 단풍처럼…가을빛 원앙들의 ‘나는 솔로’ 2.

호수 물들인 단풍처럼…가을빛 원앙들의 ‘나는 솔로’

한국호랑이·여행비둘기·도도…‘사라진 동물들’ 화폭에 담았다 3.

한국호랑이·여행비둘기·도도…‘사라진 동물들’ 화폭에 담았다

지구 어디에나 있지만 발견 어려워…신종 4종 한국서 확인 4.

지구 어디에나 있지만 발견 어려워…신종 4종 한국서 확인

7개월 만에 40kg, ‘투르크 국견’ 알라바이 동물원행 5.

7개월 만에 40kg, ‘투르크 국견’ 알라바이 동물원행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