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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생태와진화

극단적 근친교배, ‘악마 구멍’ 물고기는 살아남을까

등록 2022-11-09 11:40수정 2022-11-10 10:30

[애니멀피플]
네바다 데스밸리의 23평 웅덩이서 적어도 수천 년 동안 고립
자식들 사이 교배 4∼5대 이어온 수준으로 유전 다양성 단순
정자 운동, 저산소 적응 유전자 이상 드러나…기후변화도 위협
세계에 263마리만 남은 일년생 담수어 ‘악마 구멍 퍼프피시’. 장기간 고립으로 인한 유전 다양성 감소가 심각한 수준으로 밝혀졌다.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세계에 263마리만 남은 일년생 담수어 ‘악마 구멍 퍼프피시’. 장기간 고립으로 인한 유전 다양성 감소가 심각한 수준으로 밝혀졌다.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미국 네바다주 모하비 사막의 작은 웅덩이에 장기간 고립된 멸종위기 물고기가 이제까지 알려진 가장 극심한 근친교배를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기후변화에 더해 해로운 돌연변이가 쌓여 200여 마리가 남은 담수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데이비드 티안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대학원생 등 이 대학 연구진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악마 구멍 퍼프피시(학명 Cyprinodon diabolis)의 게놈(유전체)을 분석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물고기의 서식지는 데스밸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의 가로 3.5m 세로 22m 직사각형 꼴 웅덩이로 지하 대수층과 연결돼 수심은 150m가 넘지만 물고기는 수심 30m 위쪽에서 생활하고 표면 가까운 선반구조에서 번식한다(▶‘악마 구멍’ 속 물고기, 기후변화와 생존 투쟁).

악마 구멍 퍼프피시의 서식지 모습. 연구원 3명이 전체 개체수 조사를 일시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 제공.
악마 구멍 퍼프피시의 서식지 모습. 연구원 3명이 전체 개체수 조사를 일시에 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 제공.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이어서 웅덩이의 수온은 연중 34도이고 겨울엔 해가 전혀 들지 않아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먹이가 부족한 데다 물속의 산소농도는 보통 물고기라면 살 수 없는 2∼3ppm의 저산소 상태다. ‘악마 구멍’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이 물고기가 얼마나 오래 고립됐는지를 둘러싸고는 논란이 벌어진다. 1만∼2만년 전 고립됐다는 주장에 대해 최근에는 사막 오아시스 사이의 소통이 알려진 것보다 활발해 그 기간이 1000∼2000년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악마 구멍 퍼프피시의 개체수 변화. 1990년대 이후 감소세를 겪고 있다. 데이비스 티안 외 (2022) ‘왕립학회보 비’ 제공.
악마 구멍 퍼프피시의 개체수 변화. 1990년대 이후 감소세를 겪고 있다. 데이비스 티안 외 (2022) ‘왕립학회보 비’ 제공.

어쨌든 이 웅덩이에 고립돼 수백 마리를 유지하던 개체수는 2014년 35마리까지 떨어졌다가 회복해 현재 263마리가 살아 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험하고 고립된 환경이 이 물고기의 유전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조사했다.

이 물고기 게놈을 분석한 결과 근친교배는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돼 8마리의 게놈 가운데 평균 58%가 동일했다. 주 저자인 티안은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악마 구멍 퍼프피시의 근친교배 수준은 자식끼리 짝짓기를 4대나 5대 동안 지속했을 때 벌어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번식지인 바위 턱에 오른 악마 구멍 퍼프피시 이곳에서 먹이를 먹고 번식한다. 혼인색에 물든 수컷의 모습이다.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번식지인 바위 턱에 오른 악마 구멍 퍼프피시 이곳에서 먹이를 먹고 번식한다. 혼인색에 물든 수컷의 모습이다.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근친교배는 생존에 해로운 열성유전자나 나쁜 돌연변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집단의 유전자에 축적되는 결과를 빚는다. 환경변화나 새로운 기생충이나 천적에 대응하지 못하고 멸종할 위험성도 커진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의 유전체에서 정자의 운동성을 떨어뜨리는 돌연변이가 ‘청소’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유전자 5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유전 다양성이 붕괴하면서 해로운 돌연변이가 쌓이거나 꼭 필요한 유전자를 상실하는 일은 로열 섬에 고립된 늑대와 산악고릴라, 일부 인도호랑이 등에서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의 근친교배 수준은 이들 사례에 견줘 동등하거나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교신저자인 크리스토퍼 마틴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유전 다양성 감소가 생존력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를 측정하지는 못했다”며 “그러나 생존능력을 현저하게 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1980년에 채집한 이 물고기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근친교배 정도는 현재의 개체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마틴 교수는 “이건 물고기에게 좋은 소식일지 모른다. 35마리까지 줄어든 최근의 유전자 병목현상이 그리 큰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야생 서식지에서 멸종하는 사태에 대비해 악마 구멍 퍼프피시를 기르는 피난처의 모습.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야생 서식지에서 멸종하는 사태에 대비해 악마 구멍 퍼프피시를 기르는 피난처의 모습. 올린 포이에르바허, 미 국립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청 제공.

그러나 유전 다양성 감소에 더해 기후변화와 인위적 서식지 교란의 위험은 현재 ‘위급’ 상태인 이 물고기의 생존 가능성을 더 위협하고 있다. 네바다주에는 2013년 애쉬 메도우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을 설치하고 이 물고기의 야생 서식지를 본뜬 피난처를 만들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피난처의 개체수는 야생 집단을 웃도는 400마리에 이른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2.156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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